사람들이, 아이고 어머니이~를 외칠 때... 나는 아버지이~를 외친다.
사람들이 모두 어머니만 부르니 나는 공평을 위해 아버지를 부르겠다고 어려서 장난삼아 한 말이 습관처럼 굳어진 것이다.
어려운 순간에 어머니보다는 아버지가 더 도움이 되고 믿을 만한 존재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도 어머니보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더 많이 떠올리는 사람이다.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외숙모는 그랬다.
난 아버지를 좋아하니까 괜찮을 거라고...
왜 아버지가 더 좋았을까?
어머니도 사랑이 넘치는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잔소리가 없고, 긍정적인 성품이 좋아서?
아무튼 난 아버지가 더 좋았다.
산에 나무할 때도 따라가고, 논에도 밭에도 강아지처럼 쫄랑거리고 따라 다녔다.
아버지도 날 데리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여 싫다는 날 같이 가자고 사정사정 하기도 하였다.
우린 참으로 사이좋은 부녀라고 누구라도 알 수 있을 만큼 잘 지냈다.
중학교 때 백일장 제목이 아버지였다.
길게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 나는 짧게 몇줄 써내고 말았는데 그것이 뜻밖에 좋은 글이라고 상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내용은 언니는 아버지를 미남이라고 하는데 난 뭔지 모를 벽을 느낀다... 뭐 이런 것이었는데...
왜 그랬을까?
그리 사이가 좋은 아버지하고의 사이에 뭔지 모를 벽이 느껴진다고 쓴 이유가 뭐였을까...
난 아들과 딸을 차별하는 사람은 아니다.
첫아들을 기다리는 남편이 밉살스러워 첫애가 딸이라고 우겼었다.
내 뱃속에 있는 아이니 내가 더 잘 안다면서...
그래서 아들은 어려서 분홍색 이불과 베개를 베고 자랐다.
목욕통도 분홍색이었다.
내 말을 듣고 시외숙모랑 같이 출산용품을 사러갔던 남편이 온통 분홍으로 사온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들과 딸을 두고 나는 딸에게 가끔 미안하다.
속으로 아들을 더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딸은 남편의 성품을 아들은 내 성품을 닮아서일까... 난 솔직히 딸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때론 딸의 끝없는 욕심이 싫기도 하다.
물론 내딸이니까 양보도 하고 딸을 통해 다른 사람까지 이해하는 폭을 넓히기도 하지만 그래도 딸에게 미안하다.
진심으로 딸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어서다.
아들은 날 닮아서일까...애교가 많고 가끔 너스레를 떨 줄도 안다.
제 아빠를 안고 등을 뚜덕거리며 사랑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 아들이 날보고 엄마도 안아주겠다고 하면 난 그만 두라고 한다.
이제 커서 장가갈 때가 되었으니 엄마하고 그런 것은 그만 두는 것이 좋다고 한다.
나중에 며느리가 보고 싫어할 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딸은 잘 안아주고 등도 두드려 주는데...
난 오빠가 없고 남동생만 있어서일까, 남자들하고 사이좋게 잘 지내지 못한다.
어느땐 지나치게 딱딱해서 무례를 범하기도 한다.
오만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내가 근무하던 학교 교감이 난로가에서 불을 쬐는 내게 말했다.
'강선생, 오늘 옷이 멋있어요...'
'전 옷차림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하는 말 듣는 것이 싫은데요...'
그 말에 무자르듯 대꾸한 말이다.
멋적어 하는 교감을 보고 내 말이 지나쳤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여선생들과 장난을 잘 치는 체육선생이 있었다.
진한 농담도 주고 받고 껴안는 시늉도 하고...
그 선생도 나랑은 깍뜻했다.
내가 별 난 여자임을 알고 있었을까...
나랑 같은 학교를 다닌 여자동창과 남자동창들은 서로 반말을 한다.
하지만 육년을 같은 교실에서 공부한 남자동창과 나는 서로 경어를 사용한다.
혹여라도 반말을 하자고 하는 남자동창이 있어도 나는 깍뜻이 경어를 사용하여 그들을 멋적게 한다.
그들과 나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싶지 않은 때문이다.
아줌마 닷컴에도 가끔 남자들이 있다.
글을 쓰다보면 그런 사람의 댓글도 어쩌다 올라온다.
그럴 때 나는 솔직히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나도 모르게 경계하는 마음이 솟는 때문이다.
물론 과민인 줄 안다.
과민인 줄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한다.
엊그제도 꽁방에 글을 올린 분이 남자인 것을 알고 편안한 마음으로 댓글을 달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댓글이 내가 읽어봐도 좀 우습다.
무례하게 보이기도 하고 오만하게 보이기도 하고...
그 분의 선의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왜 남자들과 스스럼없이 대하는 것이 안될까?
내아버지도, 아들도 거리를 두게 하는 남자와 여자 사이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