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음
켜켜이 쌓인 대지를 뚫고 생명의 끈질김을 알리는 파란 작은 풀잎들이 다시 태어났다고 환호의 함성을 지를 때 유난히도 길었던 지난겨울 꺼져가는 생명의 끝자락을 붙들겠다고 한웅큼씩 약을 억지로 삼키던 병원시트에 앉았던 그녀가 새봄을 맞아 자연의 이치를 따르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에 편안한 곳으로 갔다는 한 옛 이웃의 부음을 친구가 알려준다.
살다 소설 같은 삶을간 그녀, 꿈 많던 소녀시절도 힘들었던 남편과 자식에 뒷바라지를 하던
중년의 세월도 그녀에게는 없었다. 한 남자를 만나 자식을 낳아 기르는 보통사람이 겪는 세상사를 단 한 순간이라도 살아봤으면 하던 평소 푸념을 듣는 그녀의 가까운 사람들은 안타까워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능력 없는 어머니와 언니 댁에 얹혀살았던 어린시절, 형부눈치와 매를 들지 않았어도 언니의 채찍은 매웠다. 그 힘든 상황에서 고칠 수없었던 피부에 흩어진 작은 망울덩어리는 어린 또래의 놀림감으로 충분했다. 식모와 다름없는 생활, 같이 자라는 질녀와 조카들은 병신 몸인 이모와 함께 생활하는 게 못마땅해 했다.
나이가 들어 어머니와 살림을 나온 그녀는 생활전선에 나섰다. 정직함과 부지런함을 인정받아 일하러 가는 곳마다 처음 대할 때와는 달리 그녀의 능력을 높이 평가 해주었다.
교회에 다니면서 하느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세상파도 와 맞섰다. 어머니도 딸의 노력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위해 무엇이든지 다치는 대로 일을 하셨다. 어머니를 맡긴 형제들은 돌보아 주지를 않았지만 둘이서 돈을 모으는 재미는 세월을 건너 뛸 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결혼을 포기하고 한평생 어머니와 함께 살기로 맘먹은 그녀에게 한 남자가 나타났다. 따뜻한 심성, 아름다운 목소리, 성실함이 그녀를 사랑한 동기라고 했다. 늦게 찾아온 사랑은 불륜이라는 멍에를 안고 찾아왔다. 유부남, 아내가 있는 남자를 사랑한다는 건 하느님 뜻을 거역하는 거라고 성서에도 나와 있다. 안된다고 머리를 흔들 때는 그 남자는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결혼시기를 넘긴 그녀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사람, 언젠가 떠나 갈 때는 그 사랑의 흔적이라도 남겨두고 싶었다. 임신! 모든 사람이 돌팔매질을 해도 생명을 안고 있는 그녀는 행복했다. 아기를 못 낳는 본부인께 다가가 자기의 진심을 털어놓으면서 함께 아기를 키우면 살자고 얘기 했을 때 남편의 청과 시앗의 청을 거부하지 않았다고 한다. 열심히 벌은 돈으로 본부인이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사다 날랐다고 한다. 이혼하는 것 보다 낫겠지 싶은 심정으로
받아드리는 본부인과의 문제가 해결될 즈음 이 사실을 안 어머니와 형제간들이 난리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그녀의 엄마와 형제간들이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일이니 절대로 만나지 말라고 남자를 불러 족쳤다. 동생에게 무관심하던 형제들은 목사님을 부르고 어머니는 죽는다고 난리다. 본부인이 와서 내가 허락하고 남자가 원하는 아기를 낳게 해 달라고 빌어도 소용이 없었다.
시기를 넘긴 아이의 낙태, 엄마의 소중한 자리를 물러날 때 그녀는 자살을 염두에 두었다.
하느님의 진리는 그녀 앞엔 악마였다. 삼십을 훨씬 넘어서 찾아온 한 남자와의 소중한 인연과 어머니와 피붙이들 둘 중에 하나의 선택, 한 여자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된다는 어머니의 절절한 애원을 이해하는 데는 얼마 후 교통사고로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유언처럼 남기고 간 말씀을 거역하는 불효를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하느님은 한 가지 복은 주셨는지 하는 일마다 잘 풀려 원하는 이상의 돈을 모을 수 있었다 . 아파트와 통장에 모아지는 돈은 그녀가 살아가는 용기와 힘을 주었다. 그녀의 알뜰함은 보는 이가 딱할 정도로 구두쇠 노릇을 하였다.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빈곳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돈 뿐이라는 그녀의 철학은 요지부동 이였다.
어느 날 병이 왔다. 그녀의 피붙이 들은 누워있는 환자보다 재산에 눈독에 열을 올렸다.
어머니가 가시고 남자가 떠난 빈자리는 너무도 외로웠다. 오직 돈만이 나를 지켜주는 방패로 생각한 그녀, 마지막엔 그녀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고 살아남아 있는 자에 싸움거리 일 뿐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녀에게 온갖 감언이설은 푼푼이 모은 돈과 자산은 숨을 거두기 전에 정리해야 된다는 발 빠른 자에 임자다. 그녀의 재산은 통장과 서류에서 사라졌다. 불우한 사람에게 좋은 일을 가기 전에 좀 하라는 가까운 친구들이 권유했지만 말했던 사람이 무안 할 정도로 나 같은 병신도 돈 모았는데 어떤 놈들 좋은 일 시켜려고 불우이웃돕기 성금이 직접전달이 안된다는 말만했다. 서류에 빈 털털이는 마지막엔 생활보호 대상자로 국가에서 저 세상길을 도왔다.
떠나는 그녀는 남은 사람에게 많은 교훈을 남기고 갔다. 돈의 역할과 가족이라는 울타리, 싸우고 고민하고 이혼녀의 고민도 그녀에겐 부러움의 대상이다. 엄마라고 부르는 자식은 세상에 나온 나의 흔적이며 몸의 일부분이다. 자식을 얻을 수만 있다면 얼굴에 철판을 깔 자신이 있다는 평소에 푸념, 얼마나 많은 불평을 하면서 살아 온 나가 아닌가? 평소에 가슴에 쌓여 있는 내 불만이 그녀의 소원인 것을 나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