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리 익어가고 산에는 초록 연두 새싹들이 퍼질러진
물감처럼 천지를 뒤덮었습니다.
감나무 새싹, 동백나무 새싹, 두충나무 새싹, 찔레, 청미
래 연둣빛 새싹들이 밭을 메는 제 눈을 자꾸만 잡아 끕니다.
" 날 좀 보소! 아여 누산네여 나 좀 보랑께!"
시간이 없는데 이번주말은 친정동생 결혼식에 가야하고
다음주엔 학교에 가야 되는데, 애써 외면하려니 바람이
또 붑니다.
" 까짓거 밭에 잡초들도 살라고 냅둬! 뭣한디 죽을똥 살
똥 그케 싸"
손끝마다 힘이 없어지는 찰나 오른쪽 다섯손가락도 반항
을 하기 시작합니다.
시간안에 잡풀 뽑아 내려고 안달을 했더니 손이 뻣뻣해
집니다.
일어서는 무릎에서 뚝 소리가 납니다.
어깨에 산신이 내려 앉은듯 무겁습니다.
오른손이 펴지지 않습니다.
왼쪽 다섯 손가락끝을 꾹꾹 눌러도 감각이 없습니다.
그때 또다시 바람이 휙 지나갑니다.
"긍께 대충하랑께, 너도 늙으면 저기 조 함마이처럼 허리
굽고 다리 벌어진당께"
밉살스런 바람입니다.
문득 겁이 나고 맙니다.
정말 저모습으로 늙으면 어쩐답니까
이놈의 주책맞은 바람
"대끼, 얌전한 사람 겁주는 에끼 몹쓸놈의 바람아"
두손을 주무르고 허리를 굽혔다 펴고 팔을 크고 둥글게
돌리고 고개를 숙였다 젖혔다 운동을 합니다.
개운합니다.
하늘이 참 높습니다.
구름하나 동동 정처없이 떠돕니다.
이름을 알수 없는 새들이 합창을 하며 구름 쫓아갑니다.
진달래 지고 철쭉이 자리를 메우고 있습니다.
새싹들은 여전히 저를 향해 손짓을 합니다.
오월은 제 손길을 기다리는 것들이 많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