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것이 없다.
냉장고를 열면 가득하건만 먹고 싶은 것이 없다는 뜻이다.
갈비찜, 야채찜닭, 샐러드도 있고, 어린상추잎을 강된장에 비벼 먹을 수도 있고, 월남쌈과 김밥 재료도 준비되어 있다.
밥도 잡곡밥, 옥수수와 완두콩을 넣고 한 밥, 까만쌀을 넣고 한 밥, 세가지 종류나 있다.
아, 옥수수도 쪄 먹을 수 있고, 비빔국수도 재료가 준비되어 있구나...
음식점 열 날이 가까워 메뉴 사진을 찍느라 이것 저것 준비해 둔 것이 냉장고에 가득하다.
사과, 배, 오렌지, 키위가 있고 요구르트도 있다.
우유가 있으니 시리얼을 먹을 수도 있다.
그런데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냥 닫았다.
한참을 살펴도 먹고 싶은 것이 없어서다.
입이 까다로운 사람이냐고?...
그것은 아니다.
평소라면 가리는 음식이 없다.
'나는 뭐든 왜 이리 맛있지?...'하면서 먹는 사람이다.
아프냐고?...
사실 아픈 것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왼쪽 새끼 발가락 사이에 무좀이 있었지만 그것도 나은 지 오래고, 차멀미를 좀 하지만 버스탈 일만 없으면 그도 괜찮다.
오십이 넘었지만 충치니 풍치니 그런 것도 없다.
다시 컴 앞에 앉아 이리저리 다녀보지만 배가 고파서 그런지 재미가 없다.
다시 냉장고 문을 열었다.
까만쌀을 넣고 지은 밥을 꺼냈다.
잡곡밥이 좋은 줄 알지만, 까실한 목에 잡곡밥은 넘기기가 더 힘들 것 같아서다.
반찬은 김치만 달랑 하나 꺼냈다.
밥을 물에 끓여 김치하고 먹을 요량으로...
밥을 끓여 식탁에 김치랑 올려놓고 먹으려다 다시 일어나 컴 앞으로 왔다.
배는 고픈데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다.
남편이 서울에 가고 혼자서 먹는 밥이 고역이다.
혼자 잠드는 것은 괜찮은데, 혼자 먹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수다 그만 떨고 밥을 먹어야겠다.
사실은 어제 저녁도 건너 뛰었다.
남편이 없어서 먹다 말다 했더니 몸무게도 5파운드가 줄었다.
표준체중을 밑도는 몸무게라 줄지 않아도 괜찮은데...
허리도 줄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에서는 맞는 사이즈 찾기가 어렵게 가는 허린데...
날마다 혼자 먹는 사람은 어찌 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