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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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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BY 낸시 2005-04-26

밥을 먹다 남편이 그런다.

"당신은 덜 떨어지고 모자란 구석이 참 많지..."

"......"

"신기할 정도라니까..."

"......"

세상물정도, 길눈도 어두운 나를 보고 하는 말이다.

아, 참 나는 사람 얼굴을 기억하는 일에도 둔하다.

현대물에 나온 탤런트가 사극에 나오면 같은 사람인 것을 잘 모른다.

브레드 피트하고 레오나르도 디까프리오의 얼굴도 혼동하기 일쑤다. 

겉은 은색이고 안이 붉은 색인 자동차를 겉이 붉은 색이었던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도 모양이 아닌 번호판을 보아야 구분이 가능할 때가 많다.

살면서 비록 둔하다 소리를 많이 듣고 살지만 그래도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남편의 말에 이렇게 대꾸했다.

"아, 그것은 내가 천재라서 그런거야... 천재들이 그런 면이 있다잖아..."

내 말에 남편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맞장구를 친다.

"그래, 그런 것 같아... 당신이 어떤 면에서는 천재지..."

그렇게 맞장구를 치면서 웃지도 않는다.

천연덕스럽게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는 표정이다.

정말 많이 변했다.

예전의 남편이라면 어림없는 소리다.

그런 종류의 농담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마치 날 한심한 인간보듯 바라보았을 텐데...

 

대 여섯 명이 모여 이런 저런 수다를 떨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숨겨 둔 딸 이야기가 화제다.

김영삼 대통령의 여성편력도 도마에 올랐다.

더불어 역대 대통령들의 가십거리들이 입에 오르내린다.

"에구, 여자가 대통령을 했으면 그런 부끄러운 이야기가 오고가지 않았을텐데..."

내가 말했다.

"맞아, 그 뿐인가... 여자가 대통령을 했으면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을 거야. 살아보니 여자가 남자보다 여러 면으로 훨씬 낫더라고...남자는 그저 여자 말을 잘 들어야 한다니까..."

남편의 대꾸였다.

모두들 놀란 눈으로 신기한 동물 바라보듯 남편을 바라보았다.

나이 지긋한 남녀가 섞여 모인 자리에서 그리 말하는 남자는 아직은 별 난 인간인 모양이다.

남편은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모인 자리에서 아내인 내가 말하는 것을 싫어하던 사람이다.

여자란 모임에 참석하면 그저 다소곳이 남의 말을 경청하고 가끔 미소만  지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다.

내가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 끼어들어 내 의견을 말하려들면, 굳어진 얼굴로 으르렁 거리듯 날 부르곤 하였다.

"여보오..."

말하는 것을 그치라는 뜻이었다.

이제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맞장구를 칠 때가 많다.

다른 사람에게 오히려 내가 민망해질 만큼...

 

 

오늘 아침 일주일 예정으로 건강진단을 위해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자기가 없는 동안 내야 할 공과금 처리해서 봉투에 넣어 우표 붙여 놓고 잊지말고 우체통에 넣으라고 신신당부하였다.

현관 입구에 전구도 바꾸어 밝게 해놓고, 행여 자기 없는 동안 굶을까봐 시장도 봐 주고, 밀린 빨래가 없도록 밤 늦도록 세탁기를 돌렸다.

몇 년 맡아서 빨래를 하더니 나는 빨래를 할 줄 모르는 것으로 착각하나 보다.

자동차 브레이크등이 고장난 것을 수리하지 못하고 그냥 간다고 미안해 하였다.

나도 수리하는 곳에 자동차 끌고 갈 줄 알지만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나처럼 덜 떨어진 인간이 혼자 살 일을 생각하면 안쓰러워서 나 살 동안은 자기가 살아야 할텐데 결과가 어찌 나올지 모르겠다며 갔다.

다른 이 보고 자기 없는 동안 나랑 잘 놀아주라고 당부도 잊지 않았다.

 

......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

얼마나 서로 사랑했으면 그런 노랫말이 나올 수 있었을까... 그리 생각하였었다.

이제는 그보다 이렇게 생각한다.

둘이 맞추어 살기 위해 얼마나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을까...

그 힘든 과정을 다시 되풀이 하고 싶지 않겠지...

이야기들 들어보면, 처음부터 잘 맞아 사는 부부는 드물더라고...

그래,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 하리라...

내가 남편과 살면서 흘린 눈물의 양이 얼만데.....

그것이 헛되면 아깝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