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는 내게 아는 언니가 일거리를 물어다줬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나름대로 워낙 스트레스를 받은 터라 끼니만 굶지 않으면 올해 만큼은 일을 안나가고 애들 뒷바라지만 해야지 하던 터였다.
그래서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한달에 두세 번 정도만 하면 된다기에 받아들였다.
거기서 일하는 정식 직원이 쉬는 날만 내가 대타로 일하는 거였다.
24시 영업이라 야간에 해줄 사람이 필요하단다. 저녁 8시부터 아침 8시까지 꼬박 12시간 일하고 일당은 5만원이었다. 거리가 멀어 출퇴근 왕복 3시간을 합하면 15~16 시간을 들여서 하루 일당을 버는 셈이다.
홀서빙은 처음이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그 식당 책임자인 실장님이 아는 언니의 친구라 좀은 편한 마음으로 일을 배웠던 것 같다.
식당일이란게 한가할 때는 문제가 안된다. 그런데 점심이나 저녁, 그야말로 그 밥 때가 되면 정말 전쟁이다.
아직도 한참 바쁜데 저녁 10시 정도면 주방 언니랑 나만 남겨두고 다들 퇴근을 해버린다.
밤에는 손님이 없을 것 같지만 웬걸 새벽까지도 꾸준히 손님은 이어진다.
한꺼번데 떼지어 오지만 않으면 그것도 할만하다.
손님이 좀 끊어진다 싶으면 얼른 방석을 모두 상에 올리고 쓸고 닦고 청소를 한다.
밤이 깊어지면 손님도 뜸하고 주방언니랑 둘이 앉아 신문도 보고 도란도란 얘기하는 재미도 괜찮다. 이도저도 시들해지면 멍청하게 텔레비젼 보는 것도 좋다. 어쨌든 시간만 죽이면 되는 것이다.
일나온 첫날은 한참 바쁘게 나르고 있는데 아들 전화가 왔었다. 조금 있다 화장실 가서 다시 했더니 지금 잘 시간인데 엄마는 왜 안오시냐고 아들이 묻는다.
엄마는 지금 일하고 아침에 들어갈거야, 아빠랑 동생이랑 같이 자...라고 설명은 했지만 일곱살 아들이 밤에 일하러 나간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까?
주책맞게 눈물이 흘렀다.
얼마전 그만둔 직장은 2년을 다녔었다. 너무 익숙한 일이 지겹고 내 시간을 갖고 싶다는 이유로 그만뒀는데, 이 일에 비하면 온실 속이었다 싶은 생각에 얼마나 후회가 머리를 치던지...
그 다음 떠오른 사람은 남편이었다.
남편은 줄곧 만화만 그리던 사람이다. 나보다 더 손이 가늘고 여성스러웠다.
하지만 계속되는 출판계의 침체로 더이상 만화를 그려서는 우리 식구 먹고 살기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남편은 작년부터 노동일을 나가고 있다. 손이 금방 마디가 생기고 거칠어졌음은 물론이다.
철없는 나는 그가 꼬박꼬박 가져오는 돈에 눈이 먼 나머지 그의 육체적 고통이나 정신적인 아픔을 모른 척 했다. 가장이니까 그 정도 책임은 져야 한다고 쉽게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어린 애들 떼놓고 그동안 직장에 나갔으니 할 만큼은 했다고 오만을 떨었다.
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내가 몸소 온몸으로 일을 하고 그 피같은 돈을 받아 보니, 정말 십원 하나도 헛되이 써서는 안되겠다는 생각, 세상이란 게 내 맘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생각 등등으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하룻밤 꼬박 새고 나면 머리가 띵하고 눈은 저절로 감긴다.
하지만 피로에 젖을 틈도 없이 얼른 전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집으로 와야한다.
남편은 출근하고 애들만 깨어나서 내가 오는 동안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애들을 얼른 챙겨서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나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다.
저녁에 일을 나갈때도 애들 어린이집에서 오기 전에 나는 나가버리고 그럼 애들은 아빠가 퇴근하기까지 2시간 정도를 둘이서 기다려야 한다.
애들끼리만 두기가 마음이 꺼림칙해 우리는 번갈아 몇번이고 전화해서 안전하게 있는지 확인한다. 나중에는 애들이 이제 그만 전화하라고 할 정도로.
남편은 007 작전보다 더 땀나는 일이라며 일을 그만 두라고 했다.
근데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한달이면 두세 번 밖에 안하는데다 바로 현금을 받기 때문에 푼돈이 아쉬울 때 요긴하게 쓸 수 있어 거절을 못한다.
그리고 돈도 돈이지만 일을 한번씩 다녀올 때마다 난 나 스스로 많이 단련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돈 벌기가 이토록 힘들다는 걸 잊을 때쯤 항상 깨우치게 되고, 매일 일하는 남편의 노고가 더 값지게 다가오고, 하룻밤 떨어지는 건데도 애틋하게 보고 싶은 우리 애들한테는 함께 있는 시간을 정말 소중하게 보내야지 하는 다짐을 하고 또 하게 되니 말이다.
그런데 순조롭게 적응돼 간다 싶던 이 일도 어느 날 풍랑을 만났다.
사연이 너무 길어 이 이야기는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