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재 - 두타산 - 박달령 - 청옥산 - 연칠성령 - 사원터 - 무릉계 05. 4. 13 08시 산오름 시작 - 16시30분 하산 (8시간 30분) 뜻밖의 산행이였다. 다음 주 잡혀져 있는 북한산행을 앞두고 한번 더 산에 오르자는 나의 즉흥적인 발언에 오붓하게 8명이 합류하여 산에 오르게 되었다. 동토의 제국은 따스한 기운 속에 녹아 벌써부터 봄에 취해 있었다. 그 취기에 힘든 줄 모르고 오르내렸던 몇번의 산행이 지칠줄 모르는 힘을 발산시킨다. 원동력이 무엇일까 데체 무엇에 심취되어 그리 산 속으로 들어가려는 것일까. 자연의 오묘한 신비... 수십년 살아오면서 보고 느꼈던 그 신비로움이 왜 지금에서야 마음과 눈이 열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대상으로 자리매김 되어가고 있다. '그런걸 들여다볼 여유가 어디 있냐'고 반문하겠지만 병아리 물 한모금 마시고 하늘 한번 쳐다보듯 잠시동안이라도 파란 하늘보며 유리알처럼 투명하다는 말한마디 내뱉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삶의 여유는 어느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는다. 자기 자신만이 그 여유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인지하여야 한다. 아무리 지친 삶이라 하더라도 쉬어갈 수 있는 안락한 쉼터 하나쯤 준비해 두어야 하지 않을까. 마음은 파절이가 되도록 지치더라도 나는 자연을 바라보며 잠시 쉼터에 앉아 쉴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내려고 무던히 노력을 한다. 산들머리에서부터 빠른 보폭으로 걸어온 첫 쉼터에서 입었던 겉옷을 벗어 배낭속에 집어 넣는다. 이제부터 오름길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눈이 두텁게 쌓여있을 것 같은 예감은 빗나가고 마른 잎들이 물기안으며 눅눅한 냄새를 풍겨주고 있었다. 얇게 입은 티셔츠 속으로 스며드는 바람에 한기를 느끼며 날씨는 오락가락 변죽이 심하다. 연기처럼 하얀 구름들이 우리와 함께 산 위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름과 해 그리고 비가 내기싸움을 하는지 기온의 변화가 무척 심하다. 해발 1300고지여서인지 아직도 봄이 오지 않은 두타산.... 허리숙여 들여다보는 작은 생명들은 잡초같은 그늘사초와 빨갛게 오므리고 땅을 뚫고 나오는 어린 싹들 뿐이였다. 이곳에도 내려가는 양지쪽에 알지못할 수많은 환호가 기다리고 있을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힘들게 두타산을 올랐다. 거의 매일 얕은 산을 다니면서도 오늘따라 오르는 두타산이 힘겹게 느껴진다. 마음의 병 탓일까 싶기도 하였지만 묵묵히 뒤쫓아 오르는 나에게 있어 윤활유는 새롭게 선뵈이는 야생화인데 전혀 보이질 않으니 실망감만 인다. 뒷산에 불난것처럼 하얀 구름떼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산을 타고 오르는 모습에 기함을 터트린다. 기온의 변화가 심한 산에서 얼마든지 볼수 있는 그림이지만 두껍게 드리운 구름이 산에 오를수록 풀어지는 광경이 또 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나타나는 이정표를 보면서 거리를 측정하며 커피한잔이 주는 달콤한 유혹에 피곤함은 사라진다. 8시에 출발하여 부지런히 올라간 시각... 두타산 정상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반이다. 멀리뵈는 산야가 흰구름에 휩싸여 있다. 구간구간 눈쌓여 아직도 겨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두타산의 봄은 언제쯤 찾아올 것인가. 과일 몇조각 대신하고 서둘러 박달령으로 향하여 내려간다. 미끄러워 안전하게 로프를 잡고 내려가는 길은 질퍽하니 녹아 내딛는 발마다 쭉쭉 미끄러질 뿐이였다. 하늘말나리와 수많은 야생화들로 시선 모았던 두타산의 푸름이 얼른 보고 싶었다. 벌써 찾아온 봄이 산정상에는 왜이리 더디오는지 .... 박달령까지 내려가 다시 오르는 청옥산은 두타산 보다 산세가 더 가파랐지만 힘은 덜 들었다. 익히 알고 있는 산의 형세였기에 단단히 각오를 하고 오르니 어렵지 않게 청옥산 정상에 도착한다. 산괭이눈 먼저 샘터쪽으로 방향을 돌려 100여미터 내려가니 파이프를 통해 물이 졸졸 흘러 내리고 있었다 조롱박에 받아 마시니 시원하기 그지없다. 물 한모금 마시고 주변을 바라보다 물이끼낀 바위벽에 다닥 붙어있는 야생초를 보았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생명 하나에 관심기울여 카메라에 촛점을 맞춘다. 양지바른 곳, 최적의 위치에 자리잡은 샘터... 명당같은 자리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정성들여 준비해 온 먹거리에 너도나도 한입씩 배불리 먹고 매실주 몇잔 또 곁들이며 빠질수 없는 농과 함께 여유있는 시간을 갖는다. 해바른 양지에 진눈깨비와 해가 들락날락거리며 우리를 놀리고 있다. 졸졸 흐르는 샘물 아깝다고 빨리 잠그라는 회원의 위트와 재치들이 번뜩이는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정상을 알리는 돌탑쪽으로 방향 돌린다. 청옥이라는 식물이 많이 자생한다 하여 붙여진 청옥산.. 이름이 주는 이미지가 무척 귀하디귀한 보석같은 산인줄 알았는데 '청옥'이라는 식물이 있다는 것에 다시한번 의미를 되새겨보는 청옥산 정상이였다. 몇명 되지 않는 회원들의 모습을 사진속에 담고 하산길 준비완료한다. 연칠성령까지의 길이야 능선이라 별 어려움 없이 걸어갔지만 그곳에서부터 사원터까지 내려가는 길은 눈이 많이 쌓여있었고 가파른 내림길이기에 안심할수 없었다. 조심스레 내려가지만 눈길이 무척 미끄러워 엉덩방아 찧는 일이 속출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눈과 얼음 사이같은 알갱이로 변해 자꾸 우리들을 노리고 있던 미끄럼판은 신중하게 내려가는 조심성 앞에 자리를 내어주며 눕혀놓고 만든다. 우렁차게 들려오고 있는 칠성폭포의 물소리는 장쾌한 기상의 남아처럼 그 우렁참이 산을 뒤흔드는 듯 들려오고 그 속에서도 휘파람소리와 흡사한 새들의 지저귐이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든다. 간간히 아주 작게 피어난 노루귀가 몇개 있을 뿐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채 내려가고 있었다. 계곡으로 다가가 돌다리 건너면서 나타난 키 작은 꽃들이 기대치를 훨씬 웃돌면서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하더니 줄을 이어 모습 드러내고 있었다. 제비꽃들과 노루귀 그리고 별모양의 개별꽃, 현호색이 주를 이루고 있어 연신 사진속에 담기 바빴다. 꽃은 노루귀이나 잎은 현호색이었던 두개의 식물이 나뭇잎 속에 숨어있어 감쪽같이 눈속임을 하고있다. 앙증맞은 개별꽃, 노루귀와 현호색 왜 이렇게 키작은 꽃들에게 반한 것일까. 큰 꽃 한송이가 주는 이미지보다는 작은 꽃이 올망졸망 피어 군락을 이루는 그 모습이 더욱 아름답고 보이지 않는 힘이 주는 이끌림이랄까. 자꾸 시선머무는 들꽃들과 산속의 야생화에게 흠뻑 빠져 이름 하나하나 터득해 나가는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 산행하면서 덤으로 얻은 작은 행복인 것이었다. 얼 레 지 최고의 수확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얼레지의 개화였다. 덕항산에서 보았던 얼레지 새순, 사진으로만 보았던 그 매혹적인 꽃모양에 보기를 간절히 원했던 소원을 들어주었는지 앞서가던 대장의 '얼레지다'라는 소리와 함께 내 발은 반사적으로 빨라짐을 느낄수 있었다. 줄기가 땅속깊이 숨어있고 먼저 잎이 나와 수평으로 퍼진다는 얼레지.. 잎은 나물로 먹을수 있다고 하며 녹색바탕에 자주색 무늬가 베어 있었다. 잎이 두개가 펼쳐져야 줄기가 올라온다는 얼레지꽃은 6개의 꽃잎이 뒤로 말리어 수술과 암술을 모두 드러내고 있었다. 사방에서 얼레지 모습을 담아내면서 그 미모에 찬사를 보낸다. 원 추 리 이제는 야생화가 지천이다. 사원터 주변에 망우초라 불리우는 원추리밭이 논에 심어놓은 모처럼 싹이 나와 있고 사이사이 이름모를 나물들이 우후죽순 올라오고 있었다. 미 치 광 이 풀 흐르는 냇물 사이로 또 다른 군락을 이루고 있는 자주색 모양의 꽃이 달린 연초록빛 밭이 눈에 들어와 얼른 다가가본다. 종 모양의 꽃들은 모두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색의 조화 또한 신비롭다. 자주빛 종을 달고 있던 그 야생화의 이름이 무엇일까 궁금해하며 찾을볼수 있는 숙제를 안고 가는 내가 왜 이리 부자가 된듯한 느낌이 드는지 알수가 없다. 집에 도착하여 열심히 숙제하는 모범생은 소가 뜯어먹고 미쳤다 하여 미치광이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너른 암반들 사이로 흘러가는 계곡물 따라 하산하는 발길이 무척이나 들떠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담고자 하지만 그 포만감에 터져버릴 지경이었다. 계곡물도, 이끼들도, 바위를 집고 올라가다 바위틈사이 열지어 서있는 무리를 보고 한참을 들여다 본다. 어쩜 이리도 이쁘게 서 있을까 싶은 것이 '너희들도 서열이 있는거니' 하고 물어보고 싶었다. 스쳐 지나가기엔 너무 미안해 보일 정도로 앙증맞고 귀여운 꽃들이다. 그들 앞에 나는 자꾸만 허리숙여 눈맞추고 싶어 안달해 보지만 어쩌랴 업어갈 수 없는 야생화들에게 이별을 고하고 그 자리를 떠날수 밖에...... 큰언니처럼 포근하고 키 큰 진달래들이 산길을 수놓으며 생강나무와 어울려 고운 색을 만들어 놓고 있다. 누가 뭐라해도 봄을 대표하는 진달래꽃은 언제봐도 수줍은 새색시같기만 하다. 여느꽃보다 더 진달래 앞에선 포르르 떨리는 설레임이 일어나곤 하는데 그것은 어린 날에 대한 향수가 짙게 베어나기 때문인가 싶다. 하산말미 용추폭포를 지나 내려오는 길 옆에 얼레지의 군락이 또한번 입 쩍 벌어지게 만든다. 산책코스라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며 그 아름다움을 얼레지는 보여주고 있던 것이었다. 갑자기 뭔가의 움직임에 시선이 멈춘다. 귀여운 다람쥐 한마리가 도망갈듯 말듯 눈치를 보고 있다. 경계를 두면서도 멀리 가지 않고 혹시 먹이를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는 것 같았다. 바삐 내려가니 찬밥신세된 듯 다람쥐는 쪼르르 다른 곳을 향하여 내달음친다. 총 8시간 30분 도보산행으로 발의 피로가 밀려온다. 그래도 활기찬 발걸음이 신기하기만 하다. 걸음도 누가 뒤쫓아오는지 속도또한 발빨라 늦은시간 올라오는 사람들이 흘깃 훔쳐보는 것 같았다. 시원한 막걸리 한잔씩 마시고 가자는 대장님의 말씀에 모두가 오케이한다. 식당 앞 화단에 하얗게 핀 돌단풍과 금낭화 매발톱 등 갖가지 야생화를 키우고 있는 주인아저씨의 세세함이 엿보였다. 막걸리 한 잔에 곁들인 도토리묵 한접시 얼른 비우고 돌아오니 하루가 꽉 찼다. 두타산까지 올라 두타산성으로 내려올 4시간여의 산행계획을 세우고 올라간 것이 행선지를 청옥산까지 늘리느라 시간이 배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뿌듯하고 기억에 남을 산행으로 만든 내 하루에 행복지수 100점 매기고 뜨거운 물로 피로 한겹한겹 벗겨 내린다. 남 산 제 비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