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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원 가는 날(1)


BY 개망초꽃 2005-04-14

며칠전에 머리를 썩뚝 자르고 요즘 유행한다는 구불거리는 웨이브 파마를 했어.
사는 일에 큰 변화가 생겼냐고 묻겠지만 아니야
사는 것에 막다른 골목이 오면 도리어 머리를 풀어 헤치고 더  버려두게 되더라.
외출할 일이 생기면 챙 넓은 모자 눌러 쓰고 고개를 약간 숙이고 긴 머리를 치렁거리고 다녔지.
한 일년 미장원엘 안 간 적도 있어. 나 같은 여자만 있음 미장원 굶어 죽을 거라고
미장원 주인여자가 비꼬 드라고, 그러든지 말 던지 다음부턴 그 미장원에 안 갔다 뭐.

나뭇잎에 초록의 기운이 떨어지는 가을과
꽃다지 꽃이 노랑노랑 흔들리는 초봄에 미장원엘 가게 되드라.
일년에 두 번하는 행사를 치뤘을뿐이야. 버릇같이 말이야. 사실 버릇은 아니야.
미장원에 다녀 온지 6개월쯤 되면 날 보는 사람마다 잔소리를 늘어놓더라고.
머리가 그게 뭐냐, 더 말라 보인다. 나이에 안 맞게 너무 길지 않니? 산뜻하게 잘라보렴.
그런 소리를 많이 듣다보면 정말 그런가하고 자꾸 머리에 신경이 쓰여 거울을 보게 되고,
머리 손질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산뜻하게 자르고 파마한 여자들이 눈에 자꾸 알짱거리게 되더라고.
그러면 저절로 미장원에 가고 싶다는 충동이 생기는 거지.
오래도록 홀로 있다보니 연애를 하고 싶다는 동물적인 충동이랑 비교한다면 억지일까?

새로 친분을 튼, 작년 초가을에도 머리를 손질한 미장원이 있는데, 우리 가게에 오는 손님이야.
자주는 안 오지만 물건을 고를 때 까탈스럽지 않고 말이 많지 않아 가볍게 보이지 않더라.
난 처음부터 친한 척 살갑게 접근하는 사람들을 경계 하는 편이야.
그런 사람들은 필시 영업수단이거나
아님 쉽게 마음 주고 쉽게 마음을 떼어 가지고 가는 족속들이거든.

내가 다니기 시작한 미장원은 가게로 들어오는 골목에 자리하고 있어.
여자 혼자서 하드라. 내 나이쯤 됐을거야.
손님이 많지 않으니까 종업원도 구할 수가 없어서 혼자서 하는거겠지.
이 동네는 장사가 안 되기로 일산에서 유명 하다는 걸, 옆 건물 아동복 파는 여자한테 들었어.
동네가 지긋지긋하데. 싼 것만 찾고 싸게 파는데도 깍아 달라고만 해서 지긋지긋하데.
나만 보면 지긋지긋하다고 그러는거야. 하긴 나도 진절머리가 나긴 했어.
그래도 내가 장사 해 먹고 사는 동네라서 지긋지긋하다는 소리는 슬그머니 뺐지.
또 하나는 여자들 입방아는 어디로 어떻게 튀어나갈지 몰라서
속에 있는 말을 다 밷어내지 않았어.그러고 보니 나도 장사치가 다 되었나보다.
영업을 위해 뒷일을 내다볼 줄 아는 수단이 생긴걸까?
아동복 장사하는 여자는 미술 선생님이었데.
집에서 그룹으로 초등학생을 모아서 가르치는 미술선생.
아이들에 시달리고 무엇보다도 학부모에게 시달려 지긋지긋해서 아동복 장사를 하게 된 거래.
나라면 그런 재주와 학력이 있었음, 미술선생으로 머물렀을텐데 말이야.
장사라는 것이 막다른 골목에 서서는 뒤돌아 가자니 다시는 그 생활로 뛰어들어가고 싶지 않고,
앞으로 나가자니 내 설 자리는 더 이상 없는 것 같고, 이럴 때 하는 경우가 많아.
장사가 안 돼서 권리금도 받을 수 없는 동네 연립주택가에,
가정집과 붙어 있는 지상복합 가게터에서,
지상복합 아파트는 들어봤는데 지상복합 가게터는 처음이라고?
처음 들어봤을거다 내가 지금 즉흥적으로 지어낸 거니까. 히히
장사가 안 되기로 소문난 이 동네로 버려진 고양이처럼 들어온 우리는
굶어죽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거야.
보증금 다달이 까먹고 나자빠지지 않으면 천만다행이다 이거라고...
사람 대우 받는 선생님 접어 치우고 장사를 하는 것이 뭐가 나을 게 있나 이 말이야.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땐 나는 으례 미술선생님이 되겠구나 했었어.
방과 후 그림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그러셨고,
가까이 있는 친척들도 넌 서울 가서 그림 그리는 대학가라 했었으니까.
근데 정작 그림 쪽으로 날 인도해 줄 엄마는 먹고 살기에 빠듯하셔서
그런 말도 그러한 뒷받침도 생각하지 못하셨데.
고등학교만 가르치면 지 밥벌이는 하겠고 시집이나 잘 가길 기도하셨다는구만...
서울로 이사를 와서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내 그림쟁이 끼를 없앨 수 밖에 없었어.
내 속에 가늘게 흐르던 예술가의 피는 점점 쪼그라 붙어서 막힐 수 밖에 없었다나...
그래서 무작정 되지도 않는 글을 쓰기 시작했지.
쉬는 시간에도 공부시간에도 방과후 집에서도...
그러나 지금의 나는 장사를 하고 있어. 여기까지 살면서 알아낸 게 뭔 줄 알어?
앞날은 누구도 장담 못하고 뭘 하고 살지 알 수 없다는거야.
고등학교 때 공부도 제일 잘하고 날씬하니 여성스럽고 예쁜 친구가 있는데...
남자들에게 인기가 최고였어. 애교스럽기까지 했으니까.
근데 이 친구 지금 서울 변두리에서 칵테일 바를 해.
낮엔 자고 밤에만 나가서 술 파는 일을 하는거지.
술만 팔겠어? 웃음도 팔고 손목도 팔고 엉덩이도 팔고 젖꼭지도 팔고,
손해 보지 않고 이득을 남기며 팔겠지.
그 친구도 나처럼 먹고 살기 위해 좌판을 벌린 장사치니까.

미장원에 가던 날 나는...새로 산 빨간 니트를 입고 손님을 받던 내가 손님이 되어
벵벵 돌아가고 쿨덕쿨덕 올라가는 미장원 의자에 앉았을 때는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기분이 상승되더라고, 이래서 여자들이 미장원엘 자주 가는 가 보다 했어.
머리카락을 위로 치겨 올렸다가 자르고, 옆으로 잡아 당겨 잘라주고,
파스텔 색 뼈다귀에 꼼꼼하게 말아 놓으면 세련되고 우아하게 될 것 같은 그런 기분 있잖아.
사십 중반이면서도 나이만큼 늙어졌음을 알면서도 미장원에 앉아서 파마를 말고 있음
젊어질 것 같은 착각이 드는...뭐? 이런 거.

미장원 앞에는 작은 정원이 있어. 대나무가 심어져 있는 정원.
서울보다도 북쪽인 이곳에 대나무가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깜짝 놀라게 꿈을 꾸었지.
장사를 하러 이 동네로 들어올 때, 작은 정원이 딸려 있는 미장원자리가 그래서 탐이 났었어.
잎 푸른 대나무를 보면 겨울에도 살아 있는 꿈을 보게 되거든.
이미 그곳은 처음부터 미장원이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단지 한 가지 입구 쪽에 정원이 있다는 것만으로 도둑질을 하고 싶었지.
그러나 대나무만 자신의 명대로 살고 있었지 그 곳엔 아무도 꽃 한포기 심지 않았어.
근데 오늘 보니 꼬마 전등을 켜 놓은 듯 민들레가 불을 환하게 켜고 있는거 있지.
일부러 손님 발가락을 비춰 주려 심어 놓은건가 했어.
크하~~ 차라리 머리를 비춰주는 게 미장원과 맞는건데...
그렇지?  더 커다랗고 환한 목련등을 켜 놓아야 맞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