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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06

진달래꽃이 피었습니다.


BY 예운 2005-04-07

 

  진달래가 곱게 피었습니다.

옛생각에 손으로 한웅큼 따서 입에 넣었습니다.

울컥 치미는 뜨거움.

친정엄마 생각이 납니다. 큰언니 생각이 납니다.

산나물 바구니에 진달래 꺾어 담고 오는 큰언니 모

이 보입니다.

진달래꽃 꺼내 빈병에 꽂으라 하고 물이 잘오른 새순소

나무도 몇자루 꺼내면 이쁘고 통통하게 잘생긴 드릅들

보입니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참나물에 아무데고 자라는 취나물이건만 깨끗한 곳에서만 뜯는 큰언니 모습이 보입니다.

소나무밭에서 잘 자라는 굵고 곧은 시커멓고 퉁퉁한 고

리도 보입니다. 우리 큰언니 나물 바구니는 언제나 그

렇게 싱싱하고 물좋은 것들만 담는 요술 바구니입니다.

시원한 방 한가득 나물을 쏟아 놓고 잡티를 고르고 추한

것을 골라낸 상품만을 시들지 않게 오일동안 모으고 있

습니다. 드릅은 가지런히 비슷한 놈들끼리 엮어서 잘 눕

혀 놓고 고사리는 가마솥에 물을 끓여 삶아서 말리기도

하고 생놈으로 잘 간수를 합니다.

장날이 왔습니다.

산더미 같은 산나물 보따리 이고 장에 가는 우리 엄마가

보입니다. 생산과 유통의 체계가 확실한 우리집입니다.

우리엄마 산더미는 항상 제일 먼저 없어 집니다.

그렇게 모은돈 중학교 다니는 우리 속없는 둘째언니 똥구녕으로 다 들어 갑니다.

줄줄이 달린 동생들 입성 추하면 우리 아버지 엄마 욕먹

인다고 철철이 옷사입혀 새 신발 신기느라 정작에 우리

큰언니는 손크림 하나 제대로 된거 없습니다.

자주색 주름잡힌 원피스 치마에 하얀 양말에 책보자기

대신 빨강색 책가방 들고, 한여름 껌정 고무신 뒷축 까집어 슬리퍼 만들던 친구들 속에서 빨간 샌들 신고 있는 내모습도 보입니다.

하늘색 원피스 밑단에 자잘한 꽃 수놓아진 옷을 입은 내동생도 같이 서 있습니다.

장날이면 동생과 책보따리 차지하려고 늦잠도 마다합니

다. 나물들 싸느라 보자기가 부족해 서로 보자기 차지하

느라 토닥거리는 우리를 바라보는 큰언니의 흐뭇한 미소와 복에 겹다며 웃는 엄마가 보입니다.

보따리에 책을 돌돌말아 허리에 딱 붙게 메고 온 산을 헤집으며 진달래 꽃을 한웅큼씩 따먹는 내 모습이 보입니다. 산으로 다닐때 책가방이 불편하다는 우리의 행복에

운 투정을 보며 눈흘기는 큰언니의 마음이 이제사 완

하게 이해가 됩니다.

얼마나 행복했을지.

자기의 노동으로 동생들에게 베풀어 준 뒤에야 자신도

행복했을 큰언니의 마음이 이제사 보입니다.

진달래꽃이 온산을 뒤덮었을때도 우리 큰언니 산나물 한줌이라도 더 뜯을 욕심에 꽃구경 한번 맘 놓고 하지 못합니다. 이 한줌이 내 동생 양말 한컬레, 또 한줌이 내 동생들 팬티 한장인데....

그렇게 땅만 쳐다보다가 어스럼 날이 지면 그때사 허리

를 펴고 진달래꽃을 봅니다.

아쉬움에 진달래 한줌 꺾어 나물 바구니에 꽂는 큰 언니

가 보입니다.

스물하나에서 스물여섯 일곱 여덟까지 그렇게 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진달래꽃도 여전히 큰언니 산나물 바구니따라 그렇게 피고 있습니다.

진달래가 곱게 피던날.

키가 작은 총각남자가 우리집 사랖문으로 들어옵니다.

육촌 올케가 큰언니 중매를 한다더니 그 총각인가 봅니

다. 심통이 난 둘째 언니와 나는 입이 한자는 나와 있습

니다. 괜시리 참하게 생긴 그 올케가 미워집니다.

키가 작아서 마땅찮다며 어거지 부리는 나를 두고 셋째

동생을 사이에 넣고 손에 손을 잡고 뒷길로 배웅을 가는

큰언니가 밉습니다. 배웅을 받으며 걸어가는 키가 작은

총각남자가 더 작게 보입니다.

키가 커고 이쁜 우리 큰언니 한테는 영 아니올시다 인데

우리 엄마와 큰언니는 마음에 드는 모양입니다.

엄마는 밥을 잘먹어서 마음에 든다하고 사람이 선하게

보여서 좋다고 합니다.

큰언니는 웃기만 합니다.

내가 아무렇게가 해가지고 가도 흉 안될 사람이라고 합

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큰 언니는 그래서 시집가겠다고 합니다.

큰언니가 시집을 갑니다.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여러개의 백원짜리 동전을 세며긴장하던 키가 작은 총각남자는 지금도 큰언니와 우리집에 옵니다.

우리 아버지 엄마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우리들의 기

둥이 되어 큰아들처럼 친정집을 지킵니다.

진달래꽃이 피었습니다.

우리 큰 언니 이제 산나물 이름도 잘 모르겠답니다.

그러면서 웃기만 하는 우리 큰언니를 오늘은 실컷 보았

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