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리 있소.
새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요.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고등학교 도서실 벽에 걸려 있던 시다.
마음에 들어 절로 외워졌다.
가장 마음에 들던 구절은 '왜 사냐건 웃지요...'였다.
살면서 가끔 그 구절을 떠올렸다.
특히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때, 그 구절을 떠올리고 허허...웃었다.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무의미하고 어렵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내 삶이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와 다를 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였다.
우리가 꽃밭을 가꾸는 곳에서 자주 만나는 미친 여자가 있다.
모자를 쓴 아담하고 자태가 고운 여자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모르나, 날마다 삿대질을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도 목이 괜찮을까, 신기할 만큼 몇 시간씩 하루도 빼지 않았다.
지나쳐도 서로 눈길을 피했다.
그냥 나 혼자 생각으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여자가 안쓰러웠다.
그러던 여자가 어제는 날보고 눈을 맞추고 웃으며 '헬로우~'를 했다.
'뷰우티플!'도 했다.
마주 웃으며 '하이!' '땡큐!'를 하고 마음이 환해지도록 기뻣다.
그리고 보니 요새 며칠은 그 여자가 소리지르는 것을 들은 기억이 없다.
혹시..., 혹시..., 우리가 가꾸는 꽃밭이 그녀의 마음에 조그만 위로가 되었던 것일까...
아무러나, 그녀가 웃는 모습을 몇 달만에 처음으로 보면서 신이 났다.
자주 마주치는 경찰아저씨 하나가 말했다.
자기 하루 중 가장 좋은 부분은 우리 꽃밭 사이를 걸어가는 것이란다.
조용하고 수줍어 보이는 아저씨다.
같이 수줍게 웃으며 '땡큐...땡큐...'했다.
우리가 가꾸는 꽃밭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다.
자기를 '크라이'라고 소개하는 술에 취한 남자가 있었다.
허리를 깊숙이 숙여 합장한 자세로 '땡큐!'를 했다.
자기는 패랭이 꽃이 제일 좋으니 이담에는 패랭이를 더 많이 심어 달라고 주문도 하였다.
술에 취한 남자랑 같이 수다를 떨면서 그도 고마웠다.
술주정뱅이건, 미친여자건, 경찰아저씨건, 우리 꽃밭을 바라보고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 고맙다.
내 삶을 의미있게 해 주는 사람들이다.
"얼굴이 새까매졌네... 여기 저기 기미도 생기고..."
우박 맞은 자동차 수리비용 견적을 받으러 가서 기다리며 남편이 말했다.
얼굴을 이리저리 쓰다듬으며 안쓰럽다는 표정이다.
"기미, 죽은 깨, 안 생긴 얼굴로 죽으면 죽어서도 그 얼굴은 안 썩나..."
남편의 손을 치우며 멋대가리 없이 대꾸했다.
꽃밭 가꾸는 일이 힘들다고, 자꾸 말리고 싶어하는 심사가 느껴져서다.
왜 사냐건 웃지요...
예전에는 이 귀절을 떠올리며 허허... 웃을 때 삶의 의미를 몰라서였다.
지금은 이 귀절을 떠올리며 가슴 가득 번지는 미소를 느낀다.
......
왜 사냐구?
......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데...,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