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로 하여 세상의 모든것이 아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꽃잎의 하늘거림에도 나비의 날개짓에도 가슴을 쓸어안고
쪼그려 앉아 아픔을 달랬던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그아이를 처음만난건 아마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이였습니다.
산골에서 엄마를 따라 마을에 내려오면 가끔 전 그아이집에
맡겨지곤 했었습니다.
같은 나이는 아니였지만 전 그아이와 함께 초등학교에 입학해
반장과 부반장으로 늘 그아이 보호를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 그애는 전학을 갔습니다.
짖궂은 선생님이 얼마나 절 놀리시던지 하마터면 울음보가
터질뻔한것을 아이들 놀림이 무서워 꾹꾹 참았습니다.
저도 육학년때 이사를 오며 잠시 우리들은 헤여졌지요.
사람사는 것 어디고 비슷비슷한 풍경이지만 느낌만은 어찌그리도
다르던지요.
붉게 붉게 물들던 고향에봄 추수끝난 가을들녘의 그 평화로움
반짝이는 포풀러 나무위에 정열적인 매미의 세레나데
신우대위에 소복소복 올려진 하얀눈 그 절절한 고향의 그림속엔
언제나 그애모습이 있었답니다.
다행히 결혼한 언니가 고향에 시집을 갔고 저는 언니를 핑계삼아
일년이면 한두번씩 고향을 방문했고 고향에서 멀지않은 그애집을
꼬박꼬박 들려오곤 했었습니다.
참 이상한건 한번도 서로 연락을 주고 받지 않았는데도 자취하며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던 그애는 내가 고향을 갈때마다 꼭 집에
있었습니다.
제가 그애를 마지막 만난건 햇쌀이 무지좋던 여름방학 저수지 뚝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애가 저를 언니집에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길에 번개를 맞아 죽을뻔 했다는 이야기를 20년 세월이
흐른뒤에 알았습니다.
그다음 그애가 R O T C 장교로 군복무를 할때 제가 그애집을
방문했고 그때도 검게 그을린 그애는 휴가를 나와 있었습니다.
고향을 떠나올때 거지와 다름없던 우리 처지 때문인지 이제 처녀
티가 나기 시작한 저를 그아이 엄마는 혹시 당신아들을 어찌할까
미리 못박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도시에서 도시사람 만나 시집가거라 시골로는 시집오지 말라시며....
인기척에 다락방에서 나온 그애 어쩌면 그리도 냉정하든지요.
아는척도 안하고 어디론지 휙 가버리는데 그 차거운눈빛이 저를
그 토록그리웠든 고향을 찾지못하게 해버린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월흘러 23년 그래도 그 애를 향한 분홍빛 그리움은
마음깊은곳에 늘 그렇게 피어있었답니다.
하지만 그 차거웠던 눈빛을 생각하면 연락해볼 용기가
없었답니다.
작년 우연히 찾게된 고향 동창들 꼭 30년 만이였는데 그 속에 그애가
있었습니다.
옛일을 하나도 기억못한다며 그리움을 가득담아 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무슨말을 어찌했는지 기억도 없고 동창회 카페에서 그애를 만났을땐
오타만 두드리다 나와버렸죠.
숨이 멎는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먼길달려 동창회에 처음 참석을하든날 끈적끈적 그녀석 눈길이
자꾸만 내몸에 붙어다니는 느낌을 받았지만 난 그녀석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유난히도 더웠던 작년여름 서로의 못다한 이야기가 폰으로 날아들며
초등친구라는 미명아래 우리는
태양보다 더 뜨거운 여름을 보냈든거 같습니다.
얼굴보면 하지못할 이야기가 너무쉽게 오고가고 한술더뜬 그아이의 대담함에
제 가슴이 많이도 아팠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만남이 있던날 마음을 모두들켜버린 그 만남은 너무나 어색해서
이번엔 둘이서로 얼굴도 바로보질 못했답니다.
다른친구들 서로 끌어안고 춤도추고 노래도 부르고 취한 모습으로 비틀거리기도
하는데.똑바로 앉아 옷깃만 여미다 그렇게 또 돌아왔습니다.
미친척 한번 안아 보고 싶었습니다.
따뜻한 차 한잔쯤 마주보고 마시고 싶었습니다.
돌아오는길 그날따라 하늘은 티없이 드넓은데,푸른하늘에 은빛배를 드러내고
소심하게 하얀선 하나만 그리며가는 저 비행기가 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4월 셋째주
동창회 입니다.
저는 제마음을 다 잡기위해 이곳에 글을씁니다.
남편을 만나기전 이미 내 마음에 들어온 친구라고 아무리 정당화 시키려 해도
스스로 들여다본 내 마음은 이건아닌거같습니다.
그 녀석은 제고향이며 제 유년의 추억이며 첫사랑입니다.
첫아이를 임신한 몸으로 고령성주에 시골방을얻어 신혼살림을 차렸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여니 크지도 작지도 않은 참외가 가지런히 문앞에
있었습니다.
건설회사에 근무했던남편이 출근길에 첫수확이라며 참외를 따는 모습에
제에게 제일먼저 주고싶어 혹여깰까 문밖에 조용히두고 다시 출근을 했다더군요.
아직도 제가슴에 그때 선명한 노란 빛깔의 남편사랑이 향기가 가슴에 가득 남아있습니다.
당신이 기쁜일이면 나도 기쁘고 당신이 신나는 일이면 나도신난다며 예쁘게
하고 동창회 다녀오라는 남편입니다.
혹여 그런 남편이 내 마음을 알고 마음아파할까봐 저는 친구로도 그녀석을
거절합니다.꼭 그 녀석을 기억하는 그 부분만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싶습니다.
그 녀석이 상처받지않고 나에게 얼마나 고운사람으로 기억되 있는지 알았으면합니다.
30년만에 찾은 그리운 친구들 다시 만나지 못해도 모두 행복했음 좋겠습니다.
모두들 남편도 내 사랑을 알아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