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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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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졸업


BY 개망초꽃 2005-02-21

교정밖엔 꽃다발 장사들이 알록달록한 노점이 되어 있었다.

딸아이는 메뉴판도 없는데 꽃다발 주문을 넣었다.
될 수 있는 대로 작고 간단한 거로 사 와.
색깔은 노란색이나 보라색으로...

친정엄마는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아파트 상가 꽃집에서 노란색 후리지아를 동그랗게 만들어
가지고 잠이 잔뜩 묻은 내 눈앞에 바짝 들이대고 날 보여 주었다.

교정 밖 꽃다발 노점을 지나면서 친정엄마는 그러신다
“내가 사 온 꽃이 제일 이쁘다.”

졸업할 아이들은 좁은 체육관에 들어가서 눈물 없는 졸업식을 하고
부모님들은 운동장에서 꽃다발을 하나씩 가슴에 품고 자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친정엄마도 꽃다발을 내 가슴에 안겨 주고서
“에고...맨날 아파서 골골대던 것이 졸업을 하네.”
그 말이 내 가슴에 스며들어 눈물이 고였다.
딸아이는 허약하게 태어났다.
밤마다 코피를 흘려 하루도 편한 잠을 자기 힘들었다.
백혈병이 아닌가 하고 혈액 검사를 해 보기도 했는데
체질이 허약해서 그런다고 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눈물을 말리려 하늘을 보았다.

딸아이는 한창 공부해야할 시기인 고등학교 때 사춘기가 들어왔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냐고 했다.
아빠는 책임도 못 질 결혼을 왜 했냐고 했다.
그러더니 3학년이 되면서 정신이 바짝 들더니 공부도 하고
착한 딸이 되어 아빠는 자기가 모시고 산다고 했다.

졸업식을 끝내고 교실로 들어갔다.
졸업장을 받으면서 담임선생님과 뭔 말을 주고 받으며 웃는 딸.
딸아인 졸업 하루 전에 편지를 써서 담임선생님을 뵈러 학교를 다녀왔다.
선생님을 만난 건 저에게 행운이었어요로 시작하던 편지.
딸아이는 선생님에게 쓴 편지를 내게 먼저 보여 주었었다.
마지막으로 쓴 말도 선생님은 나의 행운이었다고 끝인사를 대신한 편지.

담임선생님은 남자셨다.
공부를 그리 잘하지 않은 딸아이를 유별나게 예뻐하셨고 관심을 자주 보이셨나보다.
토껭이(토끼)라는 별명을 붙혀 주었고 먹을 것도 챙겨주시고 농담도 잘 하시면서
공부하라는 말보다는 관심을 보여 주어서 아이 스스로가 공부를 하게 만드신 분이시다.
딸아인 선생님과 코드가 잘 맞아서 스스로  공부를 하게 되었고
학교생활이 즐겁다고 했다.

담임선생님께 쥬스라도 들고 가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어야 했지만
이리 밀리고 저리 미루다 보니 졸업식에서 처음 선생님을 뵙게 되었다.
선생님 덕분에 대학 편히 가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말밖엔 죄송해서 뭐라 할말이 없었다.

딸아이는 미술을 전공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가정형편으로 인해 중도에 포기를 해 버렸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 것이 국어 쪽이었다. 공부를 안 해도 잘하던 과목이 국어였으니까
국문과나 국어교육과를 나와 딸아이는 원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1~2학년 때 공부를 안 해서 내신이 좋지를 못 해 다시 포기를 했다.
그러다가 3학년 때 공부를 해서 내신이 좋아졌고 갑자기 일어유학과를 선택하게 되었다.
일어에 흥미있다는 것과 애완견에 관한 일을 하려면 일본으로 유학을 가야하는데
개인적으로 가려면 비용이 많이 드니까 일복유학과를 가면 대학교에서 의무적으로
보내준다고 하니 딸아이로서는 원하던 대학이었다.
다행이 3학년 내신으로 수시를 모집했고 딸아이는 무사하게 합격을 해서
수능시험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후리지아를 품에 안고 딸아이는 남자와 남자 친구 사이에 끼어 사진을 찍는 걸
교실밖 복도에서 보았다. 요즘은 남녀 합반이라 남녀 구별이 없구나
시절이 이렇게 판판하게 변했구나 했다.

밖에 나와서 할머니랑 찍고 나랑 찍고 아빠랑 사진을 찍었다.
참...늦게 밝히지만 딸아이 점심 사준다면서 얘들 아빠가 왔다.

"담임 선생님 인상이 좋지?"
“엄마? 쟤 쌍까풀 수술했어.”
“아까 뚱뚱한 친구, 일학년 때 친군데 공부를 참 잘 해. 좋은 대학 들어갔어.”
그러더니 갑자기 어떤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더니 키가 높이뛰기 할 때 쓰는 나무처럼 긴
남자 아이랑 사진을 찍는다고 난리다. 그러면서 키 낮추라고 잔소리를 해 대며...
순간 딸아이 짝꿍이겠구나 했다.
딸아이는 학교생활 이야기를 주절주절 털어 놓기를 잘 했다.
그 중에 귀에 담아 들어 있던 이야기 중에 짝꿍이 키가 아주 크다고 했었다.
“짝꿍이니?”
“엉? 어떻게 알았어?”
“니가 키 크다고 맨날 얘기 했잖아. 느낌이 오더라.”

날씨가 따듯했다.
손도 시리지 않아 준비해 간 장갑을 끼지 않았다.
교복만 입은 아이들이 안 추워서 다행이다.
딸아이는 메이크업베이스를 발란나보다 햇볕에 반사되는 얼굴이 유달리 뽀얗다.
어떤 아이는 붉게 화장을 하고 어떤 아이는 돋보이게 염색을 하고
어떤 아이는 요즘 유행하는 파마를 구불거리게 했다.

딸아이는 수시 합격이 된 후부터 외출할 때 얼굴에 화장을 하고 다녔다.
눈가엔  빤짝이는 샤도우를 그리고, 입술엔 맑은 빛이 도는 립그로스를 발랐다.
수능이 끝나고 학교를 가지 않게 된 이후로 가끔씩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날은 술 한잔을 걸친 듯 했다.
“술 먹었니? 조금씩 마시고 다녀라.”
그럼 딸아이는 미안한 듯 살짝 웃어 준다.
그래 참 좋을 때다 친구들이랑 잘 놀고 술도 마시고 네 인생을 즐겨라.
엄마처럼 숙맥으로 살아봤자 누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뒤늦게 세상살이가 재미없다고 한탄하게 된다.

반 친구들 단합이 있다고 점심을 먹은 뒤 딸아이는 짧은 골덴 치마를 입고 화장을 하고 나갔다.
졸업식에 갔던 후리지아는 꽃병에 꽂아 식탁에 놓았다.
친정엄마는 꽃을 보며 자꾸 그러신다.
“내 등에 업혀 있던 것이 졸업을 했네. 잘 먹이지도 못하고...불쌍한 것.
뒷바라지도 못했는데 대학을 가고...대견한 것."
나는 장사를 하러 버스 정류장으로 가면서 자꾸 눈앞이 흐려졌다.
눈물을 말리려 먼 곳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