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백두산이라 불리는 영암 월출산의 아름다운 비
경에 입이 절로 벌어진다. 밤새 눈이 내리더니 월출산을 하얀 산으로 만들어 놓았다. 와! 좋다.
운전하는 남편은 상관없이 나는 딸아이와 신나하며 산새
를 구경하는 호사를 누렸다.
여행은 이래서 좋은거구나. 월출산을 지나 놓고도 나는
한참을 월출산 줄기를 훑으며 산야를 둘러보고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다. 참 아름답다. 참 좋다를 연발한다.
"자네도 운전 좀 배우소!" 볼멘 소리하는 남편을 향해 언
제는 운전하지 말래더니 평생기사 데리고 살건데 뭐하러
나 기계치라 운전 못할 것 같다. 생뚱 맞은 내 대답이 영
마땅찮은지 인상이 구겨진다.
섬으로 오는 길이 언제부턴가 싫지가 않다.
내가 섬에 살아서 공기 좋은 곳에 살아서 우리 가족들이
건강하게 산다는 생각을 하면서 부터다.
잔병치레 잦던 아이들 겨울내 감기약 한번 안먹어도 지
나 갈 수 있는거, 누구보다 막내가 건강해 주는게 너무
고마워 나는 아예 섬사람으로 살기로 작정을 해버렸다.
저수지에 노니는 하얀 새떼들을 남편은 지나갈 때마다
아이를 불러 보라고 한다.
새이름이 뭐냐고 물으면 백로란다.
모양새는 백로네. 진짜 이름이 뭐냐고 물어도 그냥 백로
라 생각하란다.
황토흙이 눈 사이로 보인다. 황토흙은 언제 보아도 좋다.
짚을 넣고 물과 짓이겨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황토흙으로 집을 짓고 이까리 깎고 남은 자투리 소나무
로 군불을 때고 그 방에 한지 깔고 말린 구절초꽃차와 산
야초차. 햇빛 좋고 통풍 좋은 곳에 장독을 놓고 산야초효
소를 만들고, 메주를 띄워 된장을 만들며 살고 싶게 한다
"나 올해는 흙집 지을 수 있으까? 나도 내집 한번 가지고
살고 싶다. 광주에서는 엄두도 못냈는데 그때는 그래도
다들 그러고 사니까 했는데 이제 서서히 욕심이 생기네.
지금 사는 집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그라세! 짓지 뭐" 대답은 쉽다.
괜한 소리 했다 싶고 대책없이 대답만 쉬운 남편이 고맙
고 싫은 두마음을 숨긴체 "말은..." 머뭇거렸다.
땅끝. 탁트인 바다를 왼쪽으로 끼고 한참을 달린다.
짭쪼롬한 해풍이 반갑다.
비릿한 냄새보다 향긋함으로 점점 익숙해져 간다.
도시로 가려는 안달을 잠재우는 바다에 나를 맡기고 수
평선으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에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 나는 짓다 만 흙집을 짓는다. 허물고 짓기를
수십번 한 덕에 나는 금새 집 한채를 지어낸다.
배타는 시간 삼십분 동안 지은 내 집.
커다란 창문이 있고, 한지로 만든 등과 통나무로 만든 앉
은뱅이 길다란 탁자와 창으로 보이는 장독대. 그리고 답
답하지 않고도 땀을 뺄 수 있는 구절초와 솔나무 찜질방.
거실 한쪽을 오만가지 산야초차와 꽃차를 놓고, 구절초
베개며 차를 만드는 공방(?) 한개와 언젠가 막내 동생이
내려와 글을 쓰고 싶다면 내 줄수 있는 글방하나까지.
선착장에 도착하고 남편이 차에 시동을 걸고 나는 눈을
뜨면서 다 지어놓은 집을 다시 허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