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나 같으면 안 살아요! 안 살아!
애비가 아버지처럼 그리 말했으면 전 벌써 도망갔지 안 살아요."
"도망가면 어디 갈 데가 있다냐?
갈 곳만 있었으면 나도 벌써 도망갔다."
"......"
시어머니와 내가 가끔 나누던 대화다.
그만큼 시아버지의 말투는 무뚝뚝하고 상대방을 무시할 때가 많다.
전화를 해도 자기 할 말이 끝나면 뚝 끊어버린다.
잘있으라는 말도, 전화를 끊겠다는 말도 없어, 갑자기 끊긴 전화에 당황해서 전화기를 들고 멍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오죽하면 우리 동서는 시아버지와 전화를 하고나서 엉엉 울었다고 한다.
도대체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그리 무뚝뚝하게 말을 하고 잘있으라는 말도 없이 갑자기 전화를 끊었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았단다.
어느날 식탁에서 시아버지는 시어머니에게 퉁명스레 말을 했다.
그래도 시아버지에게 가장 만만한 것은 역시 시어머니다.
시어머니는 그런 말투를 평생 들어서인지 무시하는 말을 들어도 심상한 얼굴이다.
화가 난 것은 시어머니보다 오히려 며느리인 나다.
나는 화를 감추고 샐샐 웃으면서 말했다.
"아버지는 머리가 나쁜가 봐요..."
며느리 노릇도 오래하면 이런 말이 술술 나온다.
스스로를 엄청 머리 좋은 사람으로 착각하고 사는 시아버지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간단한 이치도 모르시잖아요..."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 말을 받아 남편이 얼른 말했다.
"맞아요..."
대책없는 여자랑 살다보니 남편도 때론 순발력을 발휘할 줄도 안다.
남편까지 맞장구를 치니 시아버지는 고스란히 당하고 만다.
시어머니야 자기 편들어 주는 소리에 불만이 있을리 없고...
자기 아버지의 말투에 불만이 있는 남편도 어쩔 수 없는 시아버지의 아들이다.
말을 곱게 할 줄을 모른다.
불쑥 화를 내거나, 빈정거리거나, 속마음과 다른 어깃장 놓는 소리를 잘 한다.
남편의 말투는 우리 부부싸움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그런 남편의 말투에 길들 때도 되었건만 지금도 들으면 여전히 화가 난다.
난 시어머니와 달리 쉽게 길들지 않는 사람인가보다.
길들여지긴 고사하고 묵은 감정까지 살아나 남편을 꼬집고 때려주고 발로 뻥뻥차기도 한다.
하지만 말처럼 쉽게 도망을 간다거나, 이혼을 하지는 못하고 날마다 싸우면서도 같이 산다.
그래도 남편이 시아버지에 비하면 훨씬 낫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가며 산다.
아들 녀석은 날 닮아 웃기를 잘 한다.
애교도 많다.
외모를 제외하고, 여러모로 남편보다는 날 닮아 볼 때마다 흡족하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부전자전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나만 닮은 줄 알았더니 남편을 닮은 구석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나이가 들 수록 더욱 그렇다.
요즘에 보니 말투까지 그럴 때가 더러 있다.
엊그제 같이 자동차를 타고 가다 아들녀석하고 티각거렸다.
"......"
"너, 말을 그리하면 나중에 어느 여자가 붙어 살겠냐?"
"걱정마, 엄마!"
내 말에 아들 녀석이 히쭉 웃으며 이리 말했다.
"......"
"아빠같은 사람하고 붙어 사는 여자도 있는데..."
아들은 재미있다는 표정이다.
한 대 맞은 기분이다.
"뭐야?, 임마! ...아빠보다 니 말투가 더 듣기 싫은 줄 몰라?..."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한마디 해주었지만 영 떨떠름하다.
"어? 그래? 알써... 조심할께..."
아들녀석은 이리 선선히 대답했지만 내 마음은 편하지가 않다.
'어떡하지?...내가 울시어머니에게 한 말, 며느리에게 들으면 뭐라고 대답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