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신정연휴에 집안 가구 배치를 시작했다. 연중 행사가 되어버린 가구 배치만으로 좁은집안이 넓어질리 없지만 키 큰 가구를 창문에서 떼어내고 나니 전망이 툭 티여서 집안이 훤해지면서 한두평쯤은 넓어진 것 같다.
“엄마? 아빠랑 오빠 있을때 하시지 힘들잖아요.”
“가구를 옮기는건 힘이 필요한게 아니야 꾀만 있음 된다.”
마법의 양탄자도 아닌 담요를 들고 이것이면 된다는 엄마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딸아이가 자꾸 어지러지는 집안 분위기에 은근히 겁이 나는 모양이다.
“화장대 서랍 열고 모두 꺼내서 한쪽에 잘 쌓아 놔라.”
이번에는 화장대를 옮겨 볼 생각에 서랍속을 비우라고 말하려다 아니다 싶어 다른일을 시키고 내가 직접 물건을 꺼냈다.
화장대 미니장 속엔 몇년째 내 손길 닿기를 기다리고 있는 귀한 물건이 숨겨져있다.
청소년시절 서예가가 되는게 꿈이였다. 이십대때 꿈을 실현해볼 욕심에 회사를 드나들던 책 할부장사에게 지필묵 한셋트를 구입해서 한달동안 지정 서예학원을 다닌 기억이 있었다.
결혼 날짜를 정해 놓고 요리학원이 아닌 서예학원 다니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남편 때문에 결혼을 앞두고 학원 다니는걸 멈춰야했다. 그 후로 책10권과 벼루, 먹과 붓은 혼수품이 되어 화장대에 자리를 잡아 지금까지 묵히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때 담임선생님께 차출이 되면서 붓을 잡게 되었다. 방과후 서예반을 하고 있던 선배들 사이에 끼여 선생님의 지도를 받았던 것이 소질이 있었던지 곧잘 썼고, 교내 경연대회에서 선배들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너 붓 글씨 쓰냐?”
중학생이 되어 한문시간 숙제 검사를 하시던 선생님께서 내게 기분 좋은 질문을 하셨다.
“초등학교때 서예부였어요.”
그때는 서예학원이 있는줄도 몰랐던 나는 어릴때 붓을 잡은 덕분에, 필체가 잡혀 글씨를 잘 쓴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처음 본 한문선생님께서 해 주신 칭찬으로 장래 나의 꿈은 유명한 서예가가 되어야겠다 결심했다.
그러나 중학교에는 서예부가 없었고 교습학원이 있는것도 몰라 차츰 붓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말았다. 고등학교는 여상을 지원하면서 주산 자격증을 따기 위해 온힘을 쏟아야했다.
이미 꿈은 바뀌었고 좋은곳에 취직해서 가난한 집안 살림에 보탬을 주야했던 어깨가 무거운 큰딸이였다.
직장인이 되면서 손아래 남동생 고등학교 학비를 책임졌고 여동생들을 데리고 살면서 삶과 치열한 전쟁을 했던 청년시절이였다.
언제나 맘 한구석에 서예에 대한 그리움이 살아 있어 회사를 방문한 책장사에게 서예도구를 구입했고, 결혼하면 아무리 좁은집이라도 한쪽 구석에 작은책상 하나 준비해서 진열해 놓고 매일 아침 30분씩이라도 붓을 잡고 연습한 후 일과를 시작하리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결혼에 대한 막연한 환상속에 그런 공간쯤은 내게 배려될 줄 알았는데, 시댁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면서 방 한칸이 우리부부의 공간이 되었고 시어른들 눈치 보느라 나만의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였다.
꼬박 3년을 시댁에서 지내다 분가를 한것이 자영업을 하던 남편을 따라 가게에 딸린 4평짜리 방으로 이사를 나왔다. 취미를 살린다는 것은 호사였고 잠자는 시간 빼고는 손님 맞는게 급선무였으며 틈틈이 개구쟁이 같은 두아이 챙기느라 눈코뜰새 없는 나날을 보냈다.
한곳에서 장사를 하는동안 아이들은 중.고등학생이 되었고 함께 장사를 하던 남편에게 새로운 직업을 갖게 하는 밑거름이 된채 살다보니 벌써 45세 중년이다.
2004년 1월 31일 18년간 소중했던 내 직업에 관객없는 졸업식을 했다.
“집에서 뭘 할까? 일하던 사람은 심심하다던데.”
주변사람들의 염려를 받으며 난 당당한 은퇴를 선언했고 넘쳐날 시간을 책임질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학년에 등록을 해둔 늦깎이 신입생이였다.
가게를 그만 두기 3년전부터는 IMF 여파에 경기가 나뻐지더니 인터넷 구매가 활성화되면서 소매점이 가뭄에 시들어가는 꽃나무처럼 힘을 잃고 말았다. 하루종일 가게를 지켰지만 손님이 뜸했고 난 넘치는 시간을 감당하는 방편으로 라디오방송을 듣게 되었다. 주부상대로 하는 프로그램을 즐겨 듣기만 하다가 편지 한통씩 보내기 시작했다. 가끔 내 편지가 채택이 되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습작 노트가 몇권 쌓여갔다.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의도하는 만큼 표현이 되지 않는 다는걸 깨닫고 책 대여점을 통해 책을 빌려다 읽기 시작했다. 학창시절 소설책 보는 재미에 밤잠을 설치던 그 모습 그대로 돌아가는 느낌이였다. 그때부터 내 꿈은 글을 써보는 것이였고, 체계적인 글쓰기 공부를 해보고 싶어 대학교를 선택했던 것이다. 1년간 학생 신분으로 열심히 공부했고 학교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이십대 젊은이 못지 않은 알찬 한해를 보냈다.
“그 나이에 공부해서 뭘 할라고. 이제는 집에서 쉬는 줄 알았더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사서 고생하는 내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이다.
평소에도 백화점 쇼핑은 엄두도 못내고 살았지만 교과서 한쪽이라도 더 보려면 늘 시간이 부족한 하루다.
2004 수능을 치룬 아들녀석의 대학교 합격통지서를 받았고, 날 똑 닮은 딸내미도 고등학교 등록금을 납부한채 한 학년씩 올라갈 준비중인 새해다.
아들녀석이 고등학교 내내 공부하며 쌓아뒀던 책을 치우고 책상을 한개 줄였더니 작은공간이 생겼다.
이곳에 뭘 놔야 허전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중에 화장대 물건을 꺼내다가 무릎을 탁 쳤다.
가게에서 썼던 2인용 밥상을 펴고 벼루 셋트를 옮겼다. 그리고 일년동안 모아둔 통신대 학보(학교신문)를 꺼내왔다.
20년만에 내 꿈이였던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내친김에 벼루에 물을 붓고 먹을 갈기 시작했다. 내 모습을 지켜보던 딸아이가 신기한 듯 먹을 갈아 주겠다고 나섰다.
오랜만에 붓을 잡고 보니 손은 떨렸고 얼마나 힘을 줬는지 어깨가 뻐근해 왔다. 한참 먹물 향기에 취한채 붓글씨를 쓰다 뒤를 돌아보니 집안은 아수라장인 채 그대로 있다.
올해는 일상생활을 하기전에 30분을 붓을 잡는 시간으로 할애하고 싶다. 글쓰는 공부는 학교 생활을 하면서 서서히 소양을 쌓아가고 아울러 어릴때 가졌던 서예가가 되고 싶었던 큰꿈도 함께 펼쳐 가고 싶은 소망을 갖고 새해를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