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시 하장면 댓재(810m) - 두타산정상(1352m) - 헬기장 - 쉰음산정상(688m) - 천은사
2005. 1. 25
아침공기가 사뭇 다르다.
봄바람처럼 훈훈함이 느껴질 정도로 미풍이 볼을 스친다.
두타의 백설은 아직 남아 있을까.
눈부신 광채에 힘을 잃고 모두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까.
일주일 전 태백산 눈의 요정을 만나 실컷 노닐다 왔건만 여전히 그리운 것은 무얼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만들었던 눈은 겨울이 만들어 놓은 그리움이다.
보면 볼수록 보고프고 그리운 님처럼 느껴지는 설산으로 또 빠져 들어간다.
댓재에서 출발하여 오르는 두타산행...(08:10)
오른쪽 백두대간길은 조금 위험할 듯 하여 일반 등산로로 씩씩한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다.
오후 무렵쯤 눈이 온다는 기상예보가 있어서인지 하늘은 잔뜩 인상 찡그리고 있었다.
눈내리는 광경을 기대하며 눈 위를 아이젠하지 않은 상태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백두대간 갈림길 지점에 나무로 막아놓은 모습이 보였다.
대간을 타는 사람이 일반 등산객들에게 다니지 못하도록 길을 막아놓은 듯 하였다.
잘못하면 눈쌓인 길 헤맬까 싶어 통제를 해놓지 않았나 하는 배려심 같았다.
두타산에 오르면 느끼는 칼바람이 오늘따라 조용하다.
바람이 숨어있다 어느순간 살을 찢는듯한 바람을 등장시키는 것은 아닌지....
등골사이로 땀이 주루룩 흐름을 느끼면서 주변 풍광을 눈에 담으며 서서히 걷는다.
양지와 음지....
공유하며 사는 삶처럼 산속의 양지와 음지가 마른풀과 눈으로 편을 갈라서 있었다.
하얀 눈언덕이 바람에 의해 각기 다른 모양을 보여주면서 특이한 양상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사막을 보는 것 처럼 크고 작은 바람을 맞은 눈언덕에 주름이 가 있는
광경이 우리들의 발을 또 멎게 만든다.
숨고르기 위한 잠시멈춤이 이러한 눈요기로 또한 발의 피곤함을 풀어주기도 한다.
우황청심환이라며 우스개 소리 하시는 대장의 말처럼 흰 눈위에 배설하여
떨어져 있는 산짐승들의 황금색변이 드문드문 보인다.
두어시간 오르다보니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싸라라라락......그 소리가 참으로 곱다.
어깨 위에 머리위에 떨어져 어느순간 흰머리로 변하고 만다.
점점 오를수록 시계가 짧아지고 먼산은 안개가 끼여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겨울산의 매력을 흠뻑 마시며 이왕이면 함박눈으로 변했으면 하는 조금 위험한
기대도 해 본다.
두타산의 정상에 오르니 11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11명의 일행이 잠시 숨을 고르며 목축이며 간식을 먹고는 쉰음산으로 향한다.
두타산에서 내려가는 길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넘어져도 우습고 엎어져도 우습다.
내딛을때 조금씩 미끄러져 가는 산길이 오히려 쉽다.
남이 밟지 않는 눈 위로 발을 딛여보니 쑤욱 20여센티 정도 들어간다.
쉰음산 못미쳐 헬기장에 다다르니 낯익은 일행 네명이 점심을 먹고 있다.
이웃하여 한자리 피고 점심시간을 갖는다.
싸리눈이 제법 내리고 있었다.
옷에서 나는 소리가 싸라라라락.....
눈 위에 떨어져 통통 튀는 작은 알갱이가 좁쌀처럼 너무 귀여웠다.
호 하고 부니 날아간다.
인솔자가 끓여준 라면으로 한끼 채우고 얼른 일어나는 우리들...
오후 3시20분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에 천천히 내려가도 된다고 말하였지만
쓰러지면 곧바로 일어나는 오뚜기처럼 자동적으로 툴툴 털고 일어나
하산 준비를 한다.
폭신한 눈 위를 미끄러지듯이 절로 내려가는 하산길...
내 의지와는 다르게 발이 미끄러져 웃음 자아내게 하는 하산길...
오가피주, 주치주, 산사춘 세잔으로 몸이 달아 올라 그렇지 않아도 열이 나는 몸이
훅훅 달아오른다.
쉰음산까지 재미삼아 내려온 길 그곳부터 빙판길이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인지 밟아 다져진 눈이 얼음길로 변해 있어 그 위에 내린
싸리눈으로 살짝 가려져 있어 위험하기 짝이 없다.
조심조심 발에는 아이젠을 채웠어도 조심스럽다.
2시 조금넘어 천은사 도착하여 감로수로 목을 축이고는 두타산행을 끝마쳤다.
차 시간까지 기다리기엔 너무 길기도 하여 무작정 싸락눈 내리는 아스팔트 길
위로 걸어 내려가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저 멀리 버스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피곤함이 몰려오면서 멀쩡했던 다리가 더이상 못걷겠다는 듯 그대로 멈춰서버렸다.(15:40)
* 두타산 - 강원도 삼척시, 정선군, 동해시에 걸쳐져 있는 산으로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 수행을 닦는다는 뜻을 가졌음
* 쉰음산 - 강원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에 위치해 있으며 정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앉을 만큼 넓고 편편한 반석이 있음. 그 위에 크고 작은 우물이 50개가 있어 오십정이라
부름
* 천은사 - 고려시대 문신 이승휴가 한민족의 대서사시인 제왕운기를 저술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