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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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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모르는데


BY 후지 2005-01-18

가끔씩 안부를 주고 받는 여고때 친구의 전화였다.

 

수화기를 귀에 대기도 전에 그녀의 목소리가 왕왕거리며 들려온다.

 

"있잖아, 너 잘 생각 해봐.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말이야,...휴... 고등학교 때 쉬는 시간만

 

되면 젓가락들고 설쳤었니? 그랬었어?"

 

숨을 헐떡이다 못해 곧 까무라쳐 들어 누을 기세다.

 

"뭐라는 소리야? 알아듣게 말해야지."

 

그녀의 급한 목소리에 뭔가가 있다는 걸 감지했슴에도 우뭉스레 더 점잖을 떨며 차근히

 

설명해보라고 속을 긁었다.

 

"그러니까 xx이, 너 걔 알지? 3학년 때 우리 반 였었잖아. 알아 몰라?"

 

뭐라 답하기도 전에 제 풀에 짜증을 내며 지랄이다.

 

"안다, 왜?"

 

"아 글쎄, 걔가...걔가 나하고 같은 대학, 같은 과 나왔잖니? 알지? 근데 그 기지배가

 

대학동창 모임에서 글쎄...그것도 남자 동창들 있는데서 그런 말을 하잖니.

 

내가 쉬는 시간만 되면 젓가락 들고 친구들 도시락 반찬 빼앗아 먹고 다녔다고.

 

걔 정말 이상한 얘 아니니? 참나, 기가 막혀서.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러나저러나 넌 고등학교 때의 나를 어찌 기억해? 잘 생각해봐. 얼른...내가 챙피해서...

 

미쳐."

 

앞뒷 말이 뒤섞인 말을 숨도 쉬지 않고 뱉아 낸다.

 

"너? 너 말이야?"

 

생각해보고 자시고도 없다.

 

나는 그녀를 공부만 하던 범생이로 기억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녀를 위로하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녀는 쉬는 시간에도 늘 제자리에 앉아 공부를 했었다. 내 기억 속에서는.

 

그녀의 노력에 비해 성적이 오르지 않는걸 이상하게 여겼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있는 나로써는 그 친구의 모습이 내 기억과는 180도 다르게 다른 친구에게 각인되었다

 

는 사실이 더 놀라울 따름이었다.

 

갑자기  "너는 나를 어찌 기억하고 있는데?" 라고 묻고 싶어졌으나 입을 막았다.

 

그녀에게서 어떤 경악할 말들이 쏟아져 나올지 몰라 지레 겁이 났던 까닭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기가 보고자 하는 것만 보고 사는 지도 모를 일이다.

 

지극히 작은 한 부분을 보고 그 사람 전체를 알았노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고 때 친구들의 소식을 여러 경로로 듣고 있다.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여고 때의 그 친구들이 아니란 것이다. 내 기억 속에 있는 그녀들은

 

지금과는 다른 성격의 친구들이었다.

 

조용하게 살겠다 생각했던 친구들은 적극적인 사회 생활을 하는 친구들로 변해 있었고,

 

한 가닥할 것 같던 친구들은 의외로 조용하게 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변한 부분도 많겠으나 어쩌면 내가 그들을 한 부분만 보고 미리

 

판단해 버리고 기억하지 않았나 자문해본다.

 

"내 기억 속에서의 넌 말이야, 공부만 하던 친구였어. 일명 범생이. 됐냐?"

 

"설마... 난 열심히 공부한 기억 없는데? 너 지금 날 위로한답시고 소설 쓰냐?

 

사실을 말하라니까 기지배는..."

 

네 기억에도 없는 네 모습을 네 모습이라고 기억하고 있는 내가 있으니, 내 기억에 없는

 

내 모습을 내 모습이라고 기억하는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아주 많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