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여편은 서로 감탄하며 살 때가 많다.
어찌 그리도 두 사람의 생각과 습성이 다를 수 있는지, 세상에 그런 두 사람이 어찌 사랑한다고 착각을 하고 같은 지붕아래 살게 되었는지,...
여편은 초저녁 잠이 많고 남편은 새벽잠이 많다.
천정이 얕으막하고 조그만 집을 여편은 아늑하다고 좋아하고, 천정이 높고 널직한 집이 시원하다고 남편은 좋아한다.
남편은 여행지에서 기념품 하나쯤 사고 싶어하고 여편은 기념품 같은 것은 질색이다.
외식을 가도 의견의 일치를 보기가 쉽지 않다.
여편은 신기하고 새로운 음식을 좋아하고, 남편은 낯선 음식을 맛보는 것이 두렵다.
여편의 옷차림도 남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편은 바지에 티셔츠를 좋아하고, 새옷을 사도 몇년 입어 낡은 듯한 느낌을 주는 편안한 옷을 좋아한다.
남편은 하늘하늘 여성스러운 옷이나 새옷임을 한눈에 알수 있는 단정한 느낌의 옷을 여편에게 입히고 싶어한다.
하지만 가끔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이 바로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이 들게 할 때도 있긴 하다.
서로 다른 점이 꼭 맞물려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미국에 공부하러 온 남편 친구들이 부부동반으로 한 집에 모였다.
저녁준비를 할 동안 여편은 주인여자를 거들고 있다.
남편은 두어시간의 운전에 지쳤는지 한숨 자겠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것 저것 준비한다고 왔다갔다 하던 주인 여편이 말했다.
"아니, **엄마, 시끄러워서 어떻게 잠을 자?"
여편은 순간 이해를 못해서 되물었다.
"아니, 무슨 말이야?"
"**아빠 코 고는 소리가 저리 요란한데 괜찮아?"
"우리 애 아빠가 코를 곤다고? 몰라, 난 모르는 일인데..."
"아니, 같이 살면서 저렇게 큰 소리로 코를 고는데 어떻게 모르고 살 수가 있어?"
"글쎄, 난 정말 모르고 살았는데..., 내가 좀 둔하잖아."
"아무리 둔해도 그렇지. 저 소리가 안들려?"
여편이 귀를 기울이니 정말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제법 크다.
스스로 예민하다고 하는 집주인 여편이 좀 과장하긴 했지만 적은 소리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결혼하고 오년이 넘도록 같이 살았어도 여편은 남편이 코고는 소리를 들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곰곰 그 이유를 생각하던 여편은 '아하!'하고 그 이유를 깨달았다.
둘이 서로 다른 습성 때문이다.
초저녁 잠이 많은 여편은 한번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른다.
천둥번개가 아무리 요란해도 모른다.
신혼 초에도 귀가가 늦어지는 남편을 기다려 본 적이 별로 없다.
새벽에 눈을 떠 옆에서 자고 있는 남편을 발견할 때도 많았다.
코고는 사람들은 주로 막 잠이 들었을 때 코를 심하게 곤다.
초저녁 잠이 많은 여편은 남편보다 일찍 잠들어 깊은 잠에 빠지기 때문에 남편의 코고는 소리를 들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저녁을 먹고 남자들이 고스톱 판을 벌였다.
남편은 잡기에 능한 사람이 아니다.
일찌기 놀음으로 패가망신한 할아버지를 둔 덕에 내기라면 무조건 피하고 싫어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판이 어울어지기 위해서는 남편도 끼어야 하기에 마지못해 끼어 고스톱을 했다.
그러니 돈을 잃을 수 밖에 없다.
가난한 유학생 살림에 적지 않은 돈이다.
옆에서 구경하던 여편들도 심심하니 한번 판을 벌여보자고 하였다.
여편은 남편과 달리 화투라면 조기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어려서 여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밤마다 둘이서 육백을 쳤다.
여편은 옆에서 구경도 하고 할머니를 도와 점수 계산도 하여 주었다.
고스톱이야 익숙한 놀이는 아니지만 화투라는 것이 게임의 룰만 알면 그게 그거 아닌가.
여편이 어렸을 때 도리지꼬땡이라는 놀음이 유행이었다.
어른들이 하는 옆에서 아이들끼리 장난 삼아 판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여편은 번번이 판돈을 쓸었다.
판돈이래야 싹쓸어 봐도 성냥개피 몇개에 불과했지만...
그날밤도 여편은 연신 '고!'를 외쳤다.
남편과 달리 여편은 싹쓸이를 하다시피하였다.
남편들이 먼저 고스톱 판을 접었다.
여편들도 따라 접었다.
그날밤의 손익계산에 들어갔다.
남편은 점당 일불씩 계산해서 50불을 잃었다.
실력대로 라면 여편은 남편이 잃은 돈을 만회하고도 남을 만큼 돈을 땄다.
하지만 여편은 자기가 여자로 태어난 것에 울분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여편들의 고스톱 판돈은 남편들의 고스톱 판돈 크기의 이십분의 일이었던 것이다.
여편이 남자였더라면 140불이 될 돈이 단 돈 7불밖에 되지 않았다.
'에구, 천생연분은 좋은디, 남성상위로 여러모로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