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440

가보지 않은길...


BY Dream 2004-10-26

지난 일요일
친정에 가느라  지하철을 탔습니다.


제가 앉아있는 앞에 얼굴이 부시시 피곤에 절고 키가 손잡이위로 훌쩍
올라가는 허여멀건한 남자고등학생 서너명이  서있었습니다.
저네들끼리 하는 얘기로 보아 대학교 수시입학 면접을 보고 오는 길인가
보았습니다.


"야, 나는 인성으로 밀었어야 되는데.."

"너 성적 되잖아."

"아냐.. 안돼.."

 

또 다른  아이가 말했습니다.

 

"야, 영어 진짜 어렵더라.
짧은건데, 짧은걸수록 정확하게 해석해야 되잖냐.
막 쓰는데,
다시 읽어보구 쓰라는거야...
그때부터 당황돼서 더 모르겠더라구."

 

아이들은 면접본 이런저런 얘기로 시작해서
대학의 등급을 놓고 따지게 됐습니다.

한아이가 자기가 원하는 과를 가야되나
원하진 않지만 이름이 알려진 대학을 가야되느냐 고민이었습니다.
친구들이 조언을 하더군요.

 

"야야, 00대학은 입사할때 아예 서류전형에서 밀어버린다는데
00대학이 낳지."

"야, 너 생각해봐.
니네 친척들 모였을때 00大보다 00大다닌다는게 낳지."

"에이, 뭐 친척들이 무슨상관야."

"야, 너, 니네 친척중에 너랑 나이 똑 같은애 있어봐라.
그애는 00다닌다는데 너는 00다닌다구 그래봐라..."

 

아이들은 대학의 등급 얘기를 나누더니 입사얘기로 옮겨갔습니다.

 

 "근데 요새는 38땡이니 사오정이니 그러잖냐."

"38땡이면 서른여덟에 땡치는건가부지?
그럼 사오정은 뭐야. 사십오세에 정년퇴직하는거 아냐."

"야, 땡치는거하구 정년퇴직하구 다르냐? 킥킥"

"그럼 그담엔 뭐하구 사니?"

"벌어논걸루 먹구 살아야지."

"야, 어떻게 사십전에 평생먹구 살걸 버냐?"

"못버냐?
벌어야지. 땅투기라두 해서 벌어야지."

"야, 그런건 하믄 안되지이......"

 

아아, 여기까지 듣고나니
갑자기 세상이 아득하게 느껴졌습니다.

저아이들,  

저 한참 푸르름을 더해가는 청년들과
내아이들의 인생이

갑자기
막막하게 느껴졌습니다.
구만리같은 자신들의 인생을 손바닥에 얹어놓고 들여다보듯
너무 뻔한 기정사실로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이제 막 대학입시를 치룬 아이들.
사십전에 평생 먹고 살걸 벌어놓아야 하는 보통의 평범한 아이들 인생.....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나무한그루 없는 뙤약볕아래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걷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힘겹지만 쉬지 말고 걸어야 되느니
여차 주춤거리고 쉬다보면
대열에서 뒤쳐지고
뒤쳐지고보면 걷는게 더 힘들어지고
어쩌면 길을 잃게 되어
영영 낙오된 인생이 될지도 모르나니
뻔히 보이는 길 재미없고 힘겹지만
어쨌든 걸어야 되느니....

그렇게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길을 무리지어 걷는 아이들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어떡할까요?
다른길도 분명히 있다고
무책임하고도
무모한 조언을 한번 아이들에게 해볼까요?

"얘들아,,,
모든 사람이 앞으로 걷는다고 너도 꼭 그무리의 한점이 될 필요는 없어.
옆을 봐봐.
그리고 숲속이든 산속이든 거친들판이든 헤집고 들어가 보렴.
거기 독뱀도 있고  식인초도 있을거고 빠지면 못나오는 늪도 있겠지만...
아름다운 깃털을 부비며 노래하는 새도 있을거구
울긋불긋 향기로운 꽃과 팔랑팔랑 날개짓이 고운 나비도 만날 수 있을걸....

 

얘들아...
사실, 나는 겁이 많고 생각이 짧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길, 지도에 나오지 않은길은
슬쩍 흘겨볼 요량도 없었다만......

얘들아! 너희들은 우리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 돼.
너희들은 사십전에 평생먹구 살걸 벌어야 하는
그런 눈에 뻔한 세상이 아닌 다른길을 찾아봐봐..."

 

라며
어디로 뻗어 닿아있는지도 모르는 길을 향해 한번 걸어보라고
말해볼까요?

 

아!

때는 눈부신 가을날,
빨간 단풍잎과 노란 은행잎위로

맑은 가을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