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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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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질 수없는 사랑


BY 인 연 2004-10-09

    이루어질 수없는 사랑
    
    설마,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20여 년 전만해도.
    애써 현실을 외면하고도 싶었지만 또다시 이런 일은 없을 거라며 단정하고 말았다. 
    1980년대 초 내가 근무하는 군부대에서 사건은 터졌다.
    사건의 주인공은 나의 군 입대동기였다. 신병훈련을 받을 때만해도 서로의 얼굴조차 
    인식하지 못했는데 8주간의 훈련이 끝나고 자대 배치를 받고 훈련소를 떠나던 날 
    그와 나는 처음 인사를 나눴고 서로의 고향이 같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생면부지生面不知가 절친한 친구의 관계가 된 순간이었다. 
    이어 인솔 하사관으로부터 둘은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게 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도 
    접할 수 있었다.
    둘은 너무나 좋아서 신병의 본분도 망각한 채 한참동안을 얼싸안고 팔짝팔짝 뛰었다.
    도열堵列를 무너뜨린 우리를 본 하사관의 눈치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서야  
    둘은 자세를 바로 잡았고 그 날 오후 친구는 대대본부에 나는 5중대에 편입되었다.
    서로의 막사는 연병장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때문에 우리는 하루에도 한 두 번씩은 
    서로를 볼 수가 있었고 그 때마다 애인을 만난 것처럼 늘 반가웠다.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한걸음에 달려가 만날 수도 있었는데 신병이라는 신분 때문에 
    어찌할 수도 없었고 밤이 되면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늘 궁금해 하였다.
    이심전심이라 했던가. 아침에 눈 뜨기가 무섭게 점호를 마치면 우리 둘은 연병장으로 
    뛰어나가 서로를 확인하곤 했었다.
    
    "어젯밤 점호시간에는 별일없었니?"
    "응. 난 외웠던 전투수칙이 갑자기 생각이 나질 않아서 무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주번사관이 내 앞을 그냥 지나쳤어. 휴! 얼마나 가슴이 떨리던지...."
    "그래. 나도 지난번에 그런 적 있었어. 시껍했었다. 하하."
    
    같은 부대에서 근무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서로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웃을 수 있어서 서로에게는 힘든 병영생활을 견디는 큰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꿈에 그리던 첫 휴가를 나가게 되었다.
    고참병들이 칼처럼 다려 준 군복에다 찬란하게 빛나는 일등병 계급장을 달고
    부대를 나설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레어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는 꿈속에서도 일등병 계급장이 달린 모자를 수없이 만지작거렸다. 친구도 그랬다.
    십여일 간의 꿈같은 휴가가 끝나고 나는 부대에 복귀했고 친구가 보고 싶었다.
    중대장님께 부대 복귀 신고가 끝나자 마자 나는 연병장을 가로질러 친구의 막사로 
    달려갔다. 
    막사에 도착한 나는 친구가 부대에 복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접했고 대대 사령실은 
    벌집을 건드린 것처럼 소란스러웠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사단헌병대에서 수사를 담당한 장교와 헌병이 들이 닥쳤다. 
    주번사령은 밤이 늦도록 친구가 부대에 복귀하지 않아 사단사령부에 탈영보고를 한 
    것이었다. 그 날의 두근거림은 평생동안의 두근거림을 합한 것보다 많을 것 같았다.
    밤새 뒤척이며 친구가 별일없이 복귀하기를 간절히 기도했지만 그의 모습은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부대에서 볼 수가 없었다.
    일주일 후, 나는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중대 소식통인 한 고참병을 통해 들을 수가 
    있었다. 그 죽음도 사고 아니라 자실이었단다. 
    소총을 맨 어깨가 허리까지 내려 앉은 듯이 허탈했다. 
    처음엔 친구의 죽음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어 현기증이 나도록 고개를 내 저었다.
    
    친구는 군 입대 전 1년 동안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가끔 내게도 손가락에 낀 반지를 보여 주고 사진도 보여 주며 여자친구 얘기를 
    하곤 했는데 그 때마다 그 표정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고 그 모습에 나는 질투를 느낄 
    정도였다. 휴가를 받기 전에도 여자친구는 한두 번 가량 면회도 다녀갔다.
    휴가를 떠나던 날 친구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고 행복해 보였다.
    친구는 여자친구를 만났고 약속한 대로 여자친구의 부모님께 인사를 갔다. 
    비록 어린 나이지만 부모로부터 결혼약속을 받아 낼 참이었는데 부모를 상면한 친구는 
    뜻밖의 사실에 경악하고 말았다. 둘은 이종사촌간이었던 것이다.
    더 놀라운 일은 여지친구가 임신 3개월에 접어 들었다는 사실이었다.
    사소한 대립으로 십여 년을 남보다 못한 관계를 유지하고 살았던 양가집안은 그 때서야 
    발칵 뒤집혔고 원하지 않았던 비극적인 만남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다.
    객지에서 우연한 인연으로 젊은 남녀가 사랑을 하게 된 대가로는 너무나 혹독했다.
    사태는 걷잡을 수없이 커졌고 친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절망적이었으며 마음이 여린 
    친구는 결국 죽음을 선택하고 말았다.
    발견된 친구의 유서에는 자신은 하늘의 뜻을 저버린 패륜悖倫자라고 그 때의 심정을 
    표현했고 그간의 사연들을 소설처럼 피력해 놓았다고 하였다.
    하지만 사건은 삶을 비관한 젊은 사람의 자살로 종결지었고 부대에서도 친구의 죽음을
    작은 회오리바람정도로 치부했으며 사회 어느 곳에서도 회자膾炙되지 않고 잊혀져 
    버렸다.
    
    며칠 전 나는 모 신문사 인터넷판에서 이룰 수없는 사랑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봤다. 
    기사의 내용은 짧고 다분히 추측성이었지만 기사를 읽는 동안 나는 20여 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져 버렸다.
    [이종사촌 사이인 남녀가 이뤄질 수없는 사랑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된다. 0일 오후5시 30분에서 7시 사이에 전남 00시 00동의 한 모텔에서 A씨와 
    B여인이 함께 숨져 있는 것을 모텔 종업원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이 남녀의 부모와 친인척들을 불러 조사한 결과 이들이 이모의 아들과 딸 사이인 
    이종사촌지간이었다고 밝혔다.
    남녀가 숨진 모텔 근처에 있는 또 다른 모텔이름이 적힌 1회용 면도기가 B여인의 
    가방에서 나온 것으로 볼 때 00시내 모텔을 전전하며 서로의 안타까운 처지를 위로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A씨의 유류품인 자동차열쇠고리에는 '영원한 사랑...2004. 8.1'이란 파란색 액세서리가 
    달려 있어 이들의 관계를 짐작 케 했다.
    경찰은 발견당시 현금과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수첩같은 소지품이 그대로 남아있었던 
    데다 자살도구를 미리 치밀하게 준비한 점 등으로 미뤄 타살흔적을 배제하고 동반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자는 확신이 없었던 탓인지 유서가 나오지 않아 정확한 자살동기를 밝히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는 기사도 덧붙였다.
    
    사랑은 어떤 형태이던지 고귀한 가치가 있기 마련이며 눈부시게 아름답다. 
    특히 청춘 남녀간의 사랑은 더욱 빛을 발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듯이 사랑도 하지 않아야 할 경우가 있다.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사랑은 가능할지라도 인륜을 저버리는 사랑은 있을 수가 없으며 
    결코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애초에 이러한 사랑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우리 부모들의 몫이며 사회가 짊어질 
    책임이다. 
    작가 제임스 패터슨은 인생이란 양손으로 다섯 개의 공을 던지고 받는 게임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다섯 개의 공은 일, 가족, 건강, 친구,자기자신인데 우리는 끊임없이 
    다섯 개의 공을 던지고 받으며 산다고 하였다. 
    그 중에서 "일"이라는 공은 고무공이라서 땅에 떨어뜨려도 다시 튀어 올라오지만 건강, 
    친구, 가족, 자기자신이라는 나머지 네 개의 공은 유리공이라서 단 한 번 떨어뜨려도 
    돌이킬 수없을 정도로 흠집이 생기거나 완전히 깨질 수 밖에 없다고 하였다. 
    친구의 부모는 제임스 패터슨의 말처럼 가족이라는 공을 단 한 번 떨어뜨려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입게 된 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는 가족의 소중함을 망각하고 살아간다. 가까운 친인척이라도 
    남보다 멀게만 느껴진다. 대가족사회가 무너지면서 발생한 폐해弊害중에 하나이다.
    친인척을 비롯한 이웃간에도 마음의 문을 닫고 산다면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있는 
    사건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건을 보면서 슬픈 사랑이라며 혹 감상적으로 바라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건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사랑을 죽음으로서 용서받기를 원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살아가면서 사랑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은 더 없이 벅찬 일이다. 
    벅찬 감정은 우리의 인생에 희열과 행복을 안겨 주며 또한 삶의 의미가 된다.
    따라서 누구나 한 번쯤은 환상 속의 사랑을 꿈꾸며 일상을 서성일 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늘 곁에 있어 익숙해진 사람과의 사랑이 가장 멋지고 행복한
    사랑이라는 것을 쉽게 깨닫게 된다.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 중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이지만 진정 아름다운 사랑은 가족, 
    친지 그리고 이웃을 향한 열린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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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저지 포트 리에서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