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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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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 하던 날.


BY 모모짱 2004-10-01

 


이런 일이 있었다.

큰 아이가 다섯살 작은 아이가 세살때니까 내 나이가 설흔을 갓 넘었을때로

기억된다.

시동생이 잡지를 가지고 와서

'형수님 이 모델이 입은 쉐타랑 똑같은 걸로 입고 싶어요.하나 짜주실래요?'

하는 바람에 나는 털실을 사서 시동생의 쉐타를 짜고 있었다.

고등학교 삼학년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시동생은 대학생이 된후에도 내게 응석이 심한 편이었고 나는 그런 시동생이 늘 귀여웠다.

 

토요일.

남편이 일찍 돌아왔다.

토요일이어도 일찍 귀가 하지않던 남편의 이른 귀가에 나는 기분이 좋았다.

'밥 안 먹었어.밥 차려와.'

나는 부지런히 밥상을 차렸다.그 당시에는 식탁이라던가 입식 부엌 같은것이 없던

그런 시절이었다.

연탄을 때던 시절이었다.

 

'이층으로 가져와.'

목소리가 잔뜩 부화가 나 있었다.

나는 밥상을 들고 이층으로 가지고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방실거리고 웃고 있었고 남편의 기분을 모른척했다.

나는 남편의 밥상 앞에서 뜨개질을 하며 곁눈으로 남편의 밥먹는 모습을 훔쳐보았다.

왜 화가 났을까...속으로 생각하면서.

'반찬이 뭐 이래.'

투정이 나왔다.

'일찍 오실줄 몰랐죠. 미리 전화 좀 해주시지...'

'내 집에 오는데도 보고 해야하나.'

'어디서 기분 나쁜 일 있었나부죠.'

'어디서 말끝마다 말대답이야.'

'어디서 바람맞고 어디서 화풀인데.'

나도 반말이 나왔다.

'밥상머리에서 뜨개질이나 하고 앉았고 말이야.'

 

남편은 밥상을 뒤엎었다.

밥과 찌개랑 반찬이 바닥에 나뒹굴어졌다.

'좋아. 엎은 사람이 치워. 나는 나갈테니까.'

내가 먼저 일어났다.

뜨개질거리를 주섬 주섬 싸들고 지갑을 들고 나오는데

시동생이 따라왔다.

'형수님 가지마요.어딜 갈려구그래요.'

'친정에 가서 쉐타 떠올려구.'

'그럼 나두 가요.'

시동생과 한참 싱갱이를 하다가 나는 택시를 잡았다.

'그럼 하루만 있다가 오시기예요.'


친정에 갔다.

전후 사정 이야기를 들으신 어머니가 남편에게 전화를 하셨다.

'이 아이가 원래 욱하는 성질이 있잖은가. 오늘 하루만 여기 있다가 내일 보냄세.'

욱하는 성질이라니...옛날 이야기하고 있네....

 나는 엄마의 태도가 못마땅했다.

상을 엎었다니까....

그것도 이층까지 힘들게 들고 온 상을 엎었다는데

엄마는 내이야기를 뭘로 들은거야.

'그사람 이제 보낼 필요 없습니다.'

남편은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친정에서 아침을 맞고 보니 아이들이 걱정도 되고 식구들은 밥을 먹었는가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전화를 했다.시동생이 받았다.

'아이들 데리고 극장앞으로 나올래요? 만화영화나 한편 봅시다.'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시동생과 시누이가 두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시동생과 시누이는 연년생으로 나하고 셋이서 극장을 자주 다녔었다.

우리 다섯명은 만화영화를 보고 점심을 먹고는 집으로 가기위해 택시를 잡았다.

작은 아이는 엄마와 떨어질까봐 내 품에서 꼭 붙어 있는데 큰 아이 태도는 달랐다.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큰 아이가 동생에게 말했다.

'이제 엄마랑 떨어져. 엄마는 외가집으로 가셔야지.'

함께 택시를 타려고 하던 나는 깜짝 놀랐다.

 

큰 아이는 내게 인사를 했다.

'엄마 안녕히 가세요. 다음 일요일에 또 만나요.'

나는 기겁을 했다.

 다섯살인 아이가 이럴수가 있는가.

앞이 캄캄했다.

내가 어영 부영 이참에 묻어서 집으로 돌아가려는 것을 아이는 막았다.

시동생이 아이를 나무라면서

'형수님 빨리 타세요.'

하는 바람에 나는 얼른 택시에 올라탔다.

그때 상황은 완전히 내가 아이한테 쫓겨나는 상황이었다.


택시 안에서 아이는 내게

'아빠한테 혼나는데...'했다.

엄마랑 함께 집에 들어올 경우에는 너희들도 못 들어 올 줄 알라고 했다고 한다.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아빠한테 야단을 맞을까봐

내가 이층 방으로 올라가는데도 층계에 앉아서 꼼짝도 안했다.

 

방으로 들어가니 남편은 아랫목에서 이불을 덮고 돌아누워 있었다.

남자가 쫀쫀하기는...

'이봐요. 나 추우니까 아랫목 좀 내놓으시지. 남자가 왜이리 아랫목을 밝히시나.'

대답이 없다.

'아 저리 좀 비키라니깐.'

나는 남편을 밀어냈다.그리고 이불을 뺏어서 내가 덮었다.

'아이고 따뜻해라. 날씨가 왜이리 추운거야.가서 연탄불 좀 보고 오세요.꺼뜨릴라.

아침에 연탄은 갈은건가. 내가 없으니 누가 갈았겠지.'

 

남편이 일어나 앉으며

'이거 순 깡패 아니야.'했다.

'그래 깡패다. 내가 깡팬줄 몰랐나.내가 왕년에 여자 깡패였다는거 얘기 안했었나.

성질 다 죽었지.계속 버티면 무서운 결과가 있을줄 알아.'

남편은 웃었다.

'아이구 이걸 그냥...'

'그냥 어쩔래.'

주먹을 휘둘렀다.

'칠려구?'

나는 얼굴을 내밀었다. 칠테면 치라는 폼으로...

남편은 옛날처럼 내 뺨을 꼬집었다.

'어쭈...꼬집기 작전이란 말이지.치사하게...'

우리의 웃음소리를 듣자 아이가 달려 들어왔다.

 

그때의 아이의 밝은 웃음...안도의 웃음...

아이는 그제서야 내 품에 안겼다.

아직도 잊을수 없다.

그날 내게 안녕히 가세요.. 하던 다섯살 아들의 모습을...

 

보고싶다....

미국으로 떠난지도 이년 반이 지나고 있구나....

이십팔년전의 일을 돌이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