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에 살때는 아침이면 채소차가 왔다.
동네가 시끄럽다.
아이 시끄러워...
큰소리치며 나간다.
그래도 물건을 골라 살수도 있고 싫으면 거절을 하면 그만이다.
마늘철이면 마늘차가 오고 고추철이면 고추차가 온다.
뽐내면서 물건을 탓할수도 있었다.
장사들은 참 친절했다.
하나라도 더 팔려고 굽실거린다.
장사들과 친분도 있었다.
'아저씨 오이지 오이 좋은걸로 가져와요.'
'아저씨 장아찌 마늘을 상품으로 갖다줘요.'
아저씨는 틀림없이 내마음에 드는 물건을 대령한다.
새우젓장사 아줌마가 새우젓을 이고 오는 날...
그날은 시어머님 제사날이었다.
동서들과 새우젓 한양품을 다 팔아주고 신이 난 아줌마는 우리 마당에
대추도 따주었던 일이 있었다.
제사상에 올리고 나머지는 동서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재래시장에 나가면 무우를 잘라서 속을 보자고 한다.
속이 마음에 안들면 돌아서면 그만이다.
무우가 바람이 들었구만...
무우가 물이 없구만...
내 맘이다.
단골집에서는 나의 취향을 안다.
정육점에서는 단골인 나에게 특별히 좋은 고기를 남겨두었다 준다.
그런 고기는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그곳에서는 내세상이었다.
낯선 동네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에레베타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처음에는 인사를 했다.
천구백일호에 이사왔어요...
인사를 받은 사람이 다음번에 만났는데 모른척한다.
어리둥절했다.
주택에서는 동네에 나가면 모두 아는 사람이고 모두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지곤 했었는데 아파트는 다르다.
나이 들어서는 이사를 하는게 아니라고 옛동네에 가서 푸념을 한다.
대형마트에 갔다.
물건은 편리하게 구매를 할수 있었다.
마음대로 골라서 카트에 실으면 그만이고 물건에 대해서 장사와 이야기를
나눌수는 없다.
물건을 사면서 물건에 대해서 수다를 부리는 여유는 없다.
잘난척도 할수 없다.
'아줌마 이 무우 속이 좋아요?'
물었다가 의심스러우면 안사면 그만 아니냔다.
물어보는것도 시대에 뒤떨어진것이다.
다 알아서 판단하고 결정하라는 이야기다.
대형마트에는 정이 없다.
그곳은 소비만 존재한다.
아파트는 잡상인이 들어오지 않는다.
채소차도 마늘차도 고추차도 들어오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번 장이 서지만 신에 차지 않는다.
나는 그런 차에 익숙한 생활을 삼십년 해왔기 때문에 길에서 그런차를
만나면 반갑기까지 하다.
가을이면 고추를 가득 실은 차가 와서 얼마나 마음 설레게 했던가.
올해는 고추를 몇근이나 살까...
전라도 고추는 너무 매워...
그 집에는 고추 샀어?
봄이면 장담그는 이야기로 화제를 삼는다.
좋은 메주를 사서 장을 담그어야 할텐데...
말날이 언제지?
말날에는 집집마다 장담그는 날이다.
장독에 서서 담너머 이야기를 나누던 일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이웃의 맛이란 참 좋은것이었는데...
뭐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눌 이웃이 존재하지 않는 생활권이란 삭막하기
그지없다.
이제는 장을 담그지 않는다.
고추장도 사서 먹는 신세대가 되고 말았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것처럼 항상 찝찝하다.
식구도 두식구로 줄었다.
남편이 밥을 집에서 먹지 않는 날에는 밥을 하지도 않는 생활이 되었다.
하루세끼의 시아버님 반찬을 걱정하던 시절에 비하면 편하기 그지없는
생활에 접어든것인데 왜 이렇게 쓸쓸하기 그지없는지 모르겠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모양이라고 나자신을 탓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참 멋없다는 생각에 젖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