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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야기] 선녀와 나무꾼


BY 명랑맘 2004-09-17

   유난히 눈에 띠는 외모도 아니고 너무나 잘 빠진 몸매를 가지지도 못한 내게 딱한가지 있었다면 자존심! 스물아홉이 될때까지 선도 무지무지 많이 봤고 도대체 어디에서 매력을 찾은 건지 따라 다닌 남자도 많았건만 그다지 신통찮은 결과만을 남긴 채 세월은 흘러가고 있었다.(물론 필이 꽂힌 남자도 몇 있긴 있었는데...)

  그날도 영등포의 롯데 백화점에서 선을 보았다. 사월이었던걸로 기억한다. 농협에 다닌다는 그남자를 딱 보는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밥값 몇천원에 부들부들 떠는 그모습을 보며 정이 확 떨어졌다. 차한잔 더 하자는 그의 말을 뒤로 한 채 난 여동생의 재촉하는 삐삐를 받고 정신없이 전철을 탔다.

  동생집으로 들어서자마자 과자 부스러기를 보며 한마디 던졌다. "야! 무슨 이런 과자를 애를 사주니?(그때 동생은 이미 결혼해서 애가 세살이었다.)  부스러기가 너무 많잖아?"  그러자 동생은 둘째 손가락을 코앞으로 가져다 대며 눈치를 주었다. 방안에 손님이 있었다. 그러나 워낙에 활달했던 난 할말 다하고 연신 수다를 떨어댔다. 그때 우리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며 그남자가 일어섰다. 어디로 가면 좋냐기에 대뜸 난 해물탕집으로 가자고 했다. 고기를 싫어하고 해산물을 너무도 좋아하는 내취향때문에 결국 해물탕집으로 갔다.

  나는 내앞의 한남자는 의식도 하지 않고 꽃게를 양손으로 잡고 맛있게 뜯어 먹으며 반주로 청하까지 마시며 동생부부와 주거니받거니 하며 있었다. 맛있게 다 먹은 후 모보험회사에서 직원이 준 휴대용 이쑤시게를 꺼내 이까지 쑤셨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주책이었던것 같다. 그때를 기억하며 나중에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난 웬 여자가 그렇게 수다스러운지 놀랬고 이쑤시게를 꺼내기에 무슨 보험회사 직원인줄 알았어. 그리고 여행사 다닌다기에 쫙 빠지고 얼굴도 엄청 예쁜줄 알았는데..."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게 그당시 남편은 너무도 조용하고 하얀 피부에 정숙한 여인마냥 너무도 얌전했다.(원래 성격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해물탕집에서 나오며 그당시엔 제철이 아니라 꽤 비싼 수박을 한통 사서 여동생에게 남편은 주었다.그리고는 저녁 잘 먹었다며 동생부부와 난 인사치레를 하고 그냥 싱겁게 헤어졌다.

  그당시 난 남편에게 아무런 필도 없었고 그냥 마음씨 좋은 제부의 선배일 뿐이었다. 그러나 여동생은 나를 닥달하기 시작했다. 술담배도 안하고 막내아들에다 경제력도 웬만큼 있고 분재를 해서 자기일이라 직장에 얽매이지도 않아 언니가 좋아하는 여행을 실컷 할 수 있을 거라고. 더구나 어찌나 자상한지 자기 생일날 화장품을 선물했다며 남편도 안사다준 화장품이라서인지 감동의 연발이었다. 그리고 항상 지갑속엔 십만원짜리 수표가 기본으로 들어 있다며  언니는 자기처럼 고생하지 말고 여유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난리였다. 더구나 성당에 다니고 자기가 몇번 봤는데 저녁 여섯시쯤이면 꼭 부모님께 전화를 해서 집에 간다고 알린다는 것이었다. 동생은 어떻게든 나와 남편을 엮어 보려고 노력을 했는데 솔직히 난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그사람이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을 자주 다닌다는 얘기만 솔깃했다. 그러나 더이상 만나볼 생각도 않고 몇개월이 흐르는 동안 그사람도 나도 서로를 잊어 먹고 있었다.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나는 나대로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나이가 꽉 찬 탓인지 여러사람의 관심덕에 선도 몇번 더 보았다. 그러던 어느날 동생은 필요한 데가 있으니 제일 괜찮은 사진으로 한장만 달라 하였다. 그래서 별 생각없이 한장 주고... 또 시간은 흘러 무척이나 추웠던 11월 어느날 밤 11시가 넘어 난데없이 전화를 한 동생은 대뜸 제주도에 갈 생각이 없느냐고 하였다. 생각이야 있지만 돈도 많이 들고 어쩌구 하는데 그남자가(남편) 자기부부랑 내것까지 비행기표를 다 댄다고 했으니 마음만 있으면 된다 하였다. 이유는 그때까지 비행기 한번을 안타봐서 한번 타기 위한 것이라는 거였다. 이유같지도 않은 이유였다. 그래서 토요일날 여행의논도 해야 하니 동생집으로 오라 하였다. 그날따라 부시시한 모습으로 동생집으로 갔다. 이런저런 의논을 하고 그당시 동생부부와 난 만나면 술을 한잔씩 했는데 남편은 늘 얌전한 새색시마냥 술을 전혀 못하니 안주만 축내고 있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남편과 난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차로 십여분 거리였다. 그래서 집까지 바래다 준다기에 함께 차를 탔다. 우리집에 거의 다와 남편은 내일 시간 있어요? 하기에 난 뭐좀 할게 있어서(그당시 공부를 하나 하고 있어서) 하자 남편은 그럼 말고요. 하는게 아닌가? 황당하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하고... 결국 다음날 산정호수에 가게 됐다. 생각지도 않은 데이트를 한 셈이다. 그리고 제주도에 가기전날 동생부부와 남편과 난 여행가방을 사기 위해 쇼핑을 하는데 숙녀옷가게앞에서 가만히 서있는 것이 아마도 옷도 한벌 사주려는 모양이었다. 그땐 거절을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받을걸 그랬나 보다.

  아무튼 여행준비는 끝나고 다음날 김포공항에 갔는데 안개가 얼마나 심한지 대략 두시간정도 비행기가 딜레이 된것 같았다. 그때가 12월14일로 기억하는데 무척 추웠었다. 제주바람은 또 얼마나 날카롭던지 ... 그래도 사박오일동안 렌트카를 빌려 제주에 갈만한 곳은 다 가보고 사진도 대략 열 한통은 찍은것 같다. 중간에 내 손톱이 부러지는 바람에 남편이 약국에 가서 약사다 발라주고 여행경비도 거의 남편이 다 대면서 뒤치다꺼리까지 다 하고 너무 재미있었다.제주도여행은 남편과 나를 가깝게 하는 좋은 계기였던것 같다. 신나게 사박오일을 즐기고 다시 김포공항에 도착해서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탔는데 남편은 어찌 그리 말이 없는지, 나역시 말은 붙이고 싶은데 할 말이 없고 다시 만나자는 약속도 못한 채 우린 또 그렇게 헤어졌다.

  어찌 된건지 사진이 나올때도 됐건만 도통 연락이 없었다. 무려 열한통이나 찍었는데... 진짜 비행기 한번 타보려고 했나? 그럼 나한테 잘해준건 무엇 때문이었지? 정말 자존심이 상했다. 이날 이때껏 그리 높지 않은 코지만 콧대높게 살아 왔는데... 동생에게 전화해 혹시 사진 나왔다고 안하냐고 하자 연락이 없었단다. 핑게거리가 없나 생각하니 마침 그사람 손수건을 갖고 있었다. 정말 자존심이란 자존심은 다 버리고 삐삐를 쳤다. 그것도 몇번을 치자 그때 연락이 왔다. 난 대뜸 사진 나왔어요? 그리고 손수건도 돌려 주어야 하는데... 하자 그사람은 실실 웃으면서 사진 아주 자알 나왔어요. 하며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다. 되도록 예쁘게 하고 나갔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제주도에서도 맘껏 망가졌는데 갑자기 요조숙녀라도 된듯 내자신이 얌전해 지는게 아닌가? 필이 꽂히기 시작하는 것인가? 무슨 얘길 했는지 기억은 안나는데 사진을 받고 고맙다고 한것 같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것 같다.

  한 육개월 데이트를 했는데 어쩌다 일요일 빼고 매일 만났다. 술담배를 안하니 우리의 데이트 코스는 정해졌다.만원지하철을 타고 퇴근해 부평역에 내리면 그가 사는 동네 커피숍이나 부평역옆 커피숍에서 차를 한잔 마시고 저녁을 먹는데 거의 리치라는 철판 볶음밥집에서 새우 볶음밥을 먹었다. 그다음이  영화감상, 그러면 시간이 거의 11시가 넘기 마련, 집까지 천천히 걸어서 데려다 주거나 차로 데려다 주거나였다. 아무튼 그때 한 육개월동안 영화감상 한번 진짜 잘했다. 나중에 결혼해서 한다는 말이 정말 데이트자금 무지 많이 썼다나? 남편은 어릴때부터 거의 금전 출납부를 써 왔기에 증거가 다 있었다.선물은 많이 받진 않았지만 뭘 하나 사면 화끈하게 사주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나때문에 남편이 고생이라 해야 하나 수고를 했다고 해야 하나??? 그당시 난 여행사에 이틀에 한번씩 출근을 했는데 여행사일이 너무 바빴다. 각 대사관 쫓아 다녀야지 공항에 나가 여행손님 가이드 해야지 항공사들 다녀야지, 아무튼 엄청 바쁜데 자가용이 없는 탓에  항상 시간에 쫓겨 버스나 택시를 타고 다녔다. 그런데 남편과 연인이 된 후론 아주 편하게 다녔다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분재가 자기가 하는 사업이라지만 (거의 팽개치고...^^) 나의 운전기사가 된 것이다. 그러니 난 너무 편해지고 일도 더 능률적으로 할 수 있었다. 거의 나와 같이 출근해서 같이 퇴근했다고 해야 하나?  시댁엔 농장에 나가는 것처럼 하고 나와선 나랑 하루종일 지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점심까지 사줘가며  ... 그렇게 지내다 드디어 1996년 5월 26일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결혼날짜를 잡아 놓고 우린 신혼여행을 어디로 갈건지 의논을 했다.남들이 다가는 괌이나 사이판? 아님 하와이? 여기저기 다 생각해 보다 베트남을 가기로 했는데 비행기가 5월 27일 아침에 있다 해서 포기하고 잡은 것이 중국이었다. 그런데 분명히 5월 26일 있다고 한 비행기가 사실은 실수였다며 자유항공사 직원이 얘기하는 바람에 아무튼 그때 복잡했다. 결국 다음날 가기로 하고 신혼 첫날밤은 구기동인지 정릉인지 정확히 동네는 모르겠고 거기 모텔에서 자고 다음날 제부 친구가 우릴 픽업을 해서 공항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는 것이었다. 결국 기다리다 지쳐 잘 다니지도 않는 택시를 잡느라 무지 고생했다. 뭐 어쨋든 여행의 설레임은 그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김포공항에서 다섯시간정도 지나 중국에 도착했는데 마치 TV에서 본 평양의 모습처럼 조용하고 어딘지 모르게 썰렁한 느낌, 조선족 가이드가 나와 우릴 반겨 주었다. 삼박사일동안 벤츠(거긴 흔하다)를 타고 다니며 즐겁게 지냈다. 우린 편안히 있는 것보단 서로 구경하고 다니는 걸 좋아해 딱 맞는 여행이었다. 너무도 긴 만리장성, 천안문광장 이화원 자금성등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풍부하지만 내입맛엔 안 맞고... 호텔안에서 밤에 남편이 술을 못마시니 나혼자 11도짜리 맥주마시며 기분 내고 달밤에 체조라도 하듯 밤에 나와 여기저기 돌아 다니며 이것저것 사먹는 재미또한 즐거웠다. 그것도 벌써 팔년전의 일이니 세월은 정말 빠르다. 그시절과 같은 감정이 돌아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젠 너무 메마르고 고목나무처럼 빡빡해진 내자신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