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개미라는 책을 16살때 쓰기 시작해 30살때 완성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150번이나 고쳐쓰며 하나의 집, 하나의 건물과도 같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했단다.
그의 글들은 읽기 쉽고 간단명료하며 군더더기가 없는 투명한 문체로 쓰여 읽고 이해하기가 매우 쉽다.
그의 소설에는 103683호라는 소심하고 겁이 많으나 호기심이 많고 매우 영리한 개미가 등장한다.
그 개미는 심각하게 "사고" 할줄 아는고로 다른 "생각" 없는 개미들하고는 확연히 구분이 된다.
그 개미의 모험을 그려나가며 작가는 다음의 문장을 쓴다.
아주 영리하고 민첩한 개미가 인간세계에 던져지면 그것은 그저 서투르고 겁많은 하챦은 곤충밖에 안된다.
무식하고 어리석은 한 인간이 개미사회에 떨어지면 전지전능한 신이 된다.
그래도 인간들과 접촉을 했던 개미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개미 사회로 돌아 갔을 때 그 개미는 더 우수한 시공을 경험한 덕분에 어떤 권위를 갖게 된 것이라.
보다 우수한 차원에서 최하층의 상태를 경험해 보고 원래의 차원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은 진정한 진보를 이해하는 하나의 훌륭한 방법이다.
인간세계는 개미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두려움을 안겨다 주는 미지의 차원높은 세계이다.
실제로 개미들은 우리 인간들을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들은 땅에 무리를 지어 다니는 개미들을 한눈으로 대번에 알아본다.
혼자 굴에서 기어나와 쓸데없이 돌아다니다가 장난끼 많은 어린이들의 손가락에 갈기갈기 찢어 지기도 한다.
그래서 소리없이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다.
죽어있는 개미의 처참한 시체사이로 동료 개미들이 정신없이 뱅뱅돈다.
어린이 손가락에 찢어진 개미의 동료들은 자기네들의 동료가 왜 저토록 처참한 몰골로 죽어 있는지를 모를터이다.
나도 가끔 개미들처럼 우리 인간세계들보다 높은 차원이 진실로 존재하는 가에 많은 시간을 들여 명상해 본다.
우리가 보지도, 만지지도, 듣지도 못하는 고차원의 세계...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만이 시공의 한계라고 단정짓는 확신에 찬 사람들을 보면 그래서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어떻게 저렇게 확신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저리도 자신감에 차 있을까?
인간 모두가 죽어야 할 운명이라는 것을 잊고 안하무인 격으로 거칠게 삶을 사는 거만한 사람들 보면 그래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러나, 인간이 의식할 수 있는 차원을 초월해 죽음 후의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끊이없이 명상하고 공부하며 자신들의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감사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년 9월에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항상 피곤해 하시기는 했지만 죽을 병에 걸려있는 줄은 식구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우리가 어머니에게 무심했었는 지도 모른다.
돌아가시기 4개월 전에 간암 말기 7개월 선고받고, 7개월에서 3개월 모자란 4개월만 살다가 그렇게 허무하게 우리 곁을 떠나 버렸다.
돌아가시기 전 서울대학 병원에 입원하고 계시던, 무신교자였던 어머니가 내게,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걸까?
진짜 영혼이라는 것이 있는걸까?
라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대답을 해 드릴 수 없었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로 부쩍 거기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된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더더구나 내가 죽으면 영혼이 살아 남아 떠돌아 다닌다고 믿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우리가 죽고나면 그냥 끝이라는 생각은 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세계보다 더 높고, 숭고한 고차원의 세계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니,지금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일하고 배우고 생각하고 좋은 일 많이 하며 내 스스로의 영혼을 맑고 깨끗하게 닦아놓고 죽음 뒤 더 차원이 높은 곳으로 가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 본다.
그래야, 내가 사랑했던 우리 어머니, 너무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소유했던 우리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