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돌......
먼동이 터오는 새벽무렵 키큰 아궁이 작은 솥단지에 딸그락 딸그락 마지막 숨을 들이쉬는 고디(다슬기)가 김을 훅훅 뿜어대고 있다.. 스르르 솥뚜껑 새로 흘러내리는 국물.. 아이쿠..엄마손이 바쁘다..
타다닥...불꽃을 일으키는 작은 삭다리가(작은나뭇가지 땔감) 뻘건 재로 남겨질 즈음에 엄마는 ... 쎄 딸래미 이름을 번갈아 부르신다. 수가.. 경아... 중아...
아...기지개를 몇번씩 켜면서도 눈꺼풀이 떨어지지 않아 얇은 이불 다리사이에 끼어 이리뒹굴 저리뒹굴... 이제 귀에 들리는 엄마목소리가 자꾸 힘이 실려간다.. 지금 일어나야 혼나지 않을텐데 무지 어렵기만하다..... 털커덕 문여는 소리와 함께 엉금엉금 기어나오는 아이들눈엔 두손이 쓰쓱쓰슥....
히...그렇지... 싸리문앞 아이 침대같은 작은 호박돌이 새벽부터 땀을 뻘뻘흘리고 있다... 옆집할머닌 어제 해질녘 함께 잡아온 삶은 고디를 슬슬슬...드르륵드르륵 반질반질한 호박돌위에 올려 놓고 갈아 동그란 박바가지로 일고또일어 알맹와 국물만 담아 부엌으로 향하신다..
체에 받혀 따끈따끈한 고디가 바늘과 함께 마루위로 올려지면 똥글똥글 돌려가며 정신을 빼앗기고 까는동안 엄만 울타리에 칭칭감겨 올라간 호박넝쿨에서 파랗고 야들야들한 잎만 따 팍팍 문질러 거품을 쭉 빼놓는다 속이 탁 트일만큼 시원한 국맛에 밥한사발이 눈깜짝할새 비워진다..
나무몸통에 두팔벌린듯 자리한 오른쪽은 할머니집.. 왼쪽은 우리집... 눈만뜨면 삽작에 (대문앞) 턱하니 보이는 손때묻은 반질반질한 호박돌.. 삐덕삐덕 설마른 붉은고추 한사발. 하얗게 옷벗긴 마늘 한웅큼. 노란 속살드러낸 생강몇쪽.. 푹 삶은 밥한덩이.. 콩밭에 듬성듬성 심었던 열무 소금에 절여 한바구니.
덜덜덜덜... 쿵쿵쿵...찧어서 떠그럭떠그럭 양념된 빨간 고춧가루에 버무린 열무김치.. 할머니 손에 한사발 들려주고 침꼴까닥 삼키고 바지가랭이 옆에 붙어선 꼬맹이에게 한입.. 호호호호.. 찔끔하는 눈물속에 매운맛이 흘러내린다.
플라타너스 노란잎이 한잎두잎 떨어지는 수도옆 움푹하게 들어간 동그란 호박돌.. 한여름 파란 물때만이 짙게 더덕더덕 붙어 언젠가 씻고 닦았던 손이 무색하게 내손을 기다리고 있다 퍽퍽 물을 퍼내면서 어린날 엄마가 덕덕 갈아 만들어준 김치맛이 그리워 마음으로 만든 김치 한사발 게눈감추듯 먹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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