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얼했는지 더듬어보면서 훌쩍 넘어버린 일년을 생각해봤다.
처음엔 어디 탈출구가 없을까 고민고민하다가 한 달만에 살
집을 알아보고 계약서를 쓰고 이사를 해야했었다.
넓은 마당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뚫리는 듯했다. 새로 바뀐 진한 자주빛의 현관문, 첨엔
너무 짙은 것이 영 맘에 들지 않았지만 선택에 있어서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 땐 남편과 나 서로의 마음에
위로를 해도 모자란 부분이 너무 많았었다. 서로의 마음에
더 이상 어두운 그늘을 만들면 안된다는 것을 우린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내의 건강에 적신호가 왔을 때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강한 남편이었다. 그런 남편의 눈에 고여있는 눈물을 볼 수
밖에 없었던.... 몇 개월동안의 숨막히는 모습을 봐야하는
것이 내겐 육신의 아픔보다 마음의 지침으로 더 힘들게 찾아왔다. 아내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머물렀던 지방에서의 삶이
아픈 아내를 바라보는 것보다도 더 힘겨웠던 남편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곳에 새로운 '삶'가운데 숨막힘의 막은 내린듯하다.
너무 미안했다. 아프지 말것을......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
인지 돌아보았다. 의사의 오진 때문에...... 그것부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가장 가까운이들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아야했던 것까지... 그 일들을 잊기 위해 차에 오르면서
울었던 눈물은 한참동안이나 마르지 못했었다.
그런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내 건강만을 염려하는 남편
에 대한 미안함이 한참동안이나 떠날 줄 몰랐었다.
이젠 적신호였던 건강은 많이 좋아졌다. 가끔 민감해지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심각할 정도는 아니니 다행이다.
항상 밝은 남편의 모습이 너무 좋다.
"다녀올께. 점심 잘 챙겨먹고..아들들아
학교 잘 다녀와라...."
출근하는 남편이 하는 말이다.
정오가 지나면 어김없이 폰이 울린다.
"나야, 뭐해? 밥 꼭 챙겨 먹어 밖에 나와서
바람좀 쏘이고..."
건강에 적신호가 왔었던 때부터 남편은 이런 염려증이
있다.
가을문턱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따가운 햇살이 아니라
푸른빛이 가득한 하늘빛은 티 하나 없는 깨끗함이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 주었다. 창밖으로 보여지는 저 하늘빛은
오늘 지나면 또 어떤 빛으로 마음에 수를 놓아 가고 있을까!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