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여행을 좋아하는 모임에서 강원도로 단체 여행을 가게 되었다.
안 그래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는데 이게 왠 횡재냐 싶어
두말 않고 간다고 약속을 했다.
마음은 벌써부터 두둥실 들떠서 뭘 입고 갈꺼나~
먹을껀 얼마나 가져갈까~
고심 하느라 밤 잠 을 설치기까지 했다.
드디어 가기 전 날 필요한거 살 겸해서 남편을 살살 꼬드겨 까르푸에갔다.
내심 멋진 모자도 하나 사고 화사한 티셔츠가 있으면 살 작정 이었다.
남편만 믿고 지갑도 안 들고 빈 손 으로 집 을 나서니 몇번 당 한 경험이
있는지라 남편의 눈꼬리가 곱지가 않타.
그러거나 말거나 나 얼굴 두꺼운거 여직 몰랐수?
하는 베짱으로 밀어부쳤다.
먼저 모자를 파는 코너로 가서 이것저것 써 보는데 당최 어울리는게 없다.
처녀적에는 모자를 쓰면 잘 어울린다고 해서 즐겨 쓰고 다녔는데
나이가 들어가니 얼굴이 달라져서 그런가 영 폼 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벙거지가 있길래 무심코 머리에 얹었더니 옆에서
물끄름히 쳐다보던 남편이 갑자기 크큭 거리며 웃음을 참느라 야단이다.
난 모자를 쓴 채로 이 남자가 갑자기 왜 이려 하는 표정으로 눈 을 홀기자
손짓으로 거울을 보라고 가르킨다.
참 내 어떻다는것이여 해가며 거울을 보다가 민망스러워서
얼릉 모자를 벗어버렸다.
"아이구 배야~ 아니 그 모자 쓰니 사람 꼴 이 왜 그러냐. 나는 아줌마들
멋있는줄 알고 벙거지 쓰고 다니는거 정말 봐주기 괴로운 사람이여
영락 없는 각설이 폼 이지 그게 어디 하하~~아이구."
" 뭐이? 각설이? 품바 타령에 그 각설이?
하이구 마누라가 각설이랑 똑 같다 이거지?
알았수 그래... 그러는 당신은 얼마나 멋있나 한번 써 보라구!."
모자를 휙 벗어 잽싸게 남편 머리에 푹 눌러 씌우니
내가 봐도 폼 이 영 우스꽝스럽다.
우리 둘 은 모자를 가지고 한참동안 실랑이를 벌이다가 그 중에서 그래도
봐 줄만한 모자 하나를 골라서 다른 매장으로 갔다.
돌아 다니면서 사다보니 어느새 카트에 물건이 수북히 쌓였다.
남편은 내가 더 살까봐 얼른 계산대 쪽으로 카트를 밀고 먼저 가 버린다.
그동안 필요 했던것 들 거진 샀기에 내심 흐뭇한 표정으로 뒤따라 가니
계산서를 받아든 남편 마치 바가지라도 쓴 사람 마냥 놀란 눈 으로
물건들과 계산서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연신 확인을 해댄다.
앞으로 당분간은 입 을 봉하고 뭐 사러 가자는 말 말아야 할것 같다.
그렇타고 내가 뭐 쓰잘데기 없는 거 사느라고 낭비를 한게 아니니
필요 이상으로 눈치 볼 필요야 없지뭐,
다 사랑하는 가족이 먹고 쓸 물건 들이니 어쩔것인가.
간만에 고기도 좀 사고, 휴지도 모처럼 제일 큰 걸로 사 버렸지.
평소에 비싸서 외면했던 올리브기름도 큰걸로 샀더니
마음이 이렇게 뿌듯 할수가 없네
어떤 이는 그 돈 이 그 돈 이지뭐 하겠지만 그래도 기분이 다르다.
카드로 긁었으니 외상이지만 그건 남편이 알아서 할 부분이다.
마누라 몰래 숨겨둔 비상금으로 해결 하던가
난 모른척 하기만 하면 되는것이여.
아흐~ 가끔 남편한테 바가지 씌우는 이 재미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노.
울 남편 다 알고도 그러려니 넘어 가 주는 바보처럼 착한 남자다.
마누라가 하는 일 은 그저 두말 안 하고
들어주니 마누라가 이 모양이잖어.
앞으로는 크게 화 내고 그래봐봐 내가 무서워서 못 그러지.
그날 집 에 와서 생선 굽고, 찌개 맛있게해서 밥 먹을때
이미 기분 다 풀어졌다.
부부 사는거 별건가요? 미운정 고운정 범벅으로 사는거지 안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