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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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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BY 남풍 2004-07-13

지각을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훌쩍 거리며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아이를 태운채, 차를 돌린다.

차 안 시계는 여덟시 오십분, 지각이라는 듯 깜빡거린다.

월요일 아침, 학교 가지 않겠다고 우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나 그 아이를 태우고

바닷가를 향해 차를 모는 엄마나 다 정상은 아닌듯 느껴진다.

차가 시내를 빠져나가  송악산 이정표 앞을 지나자, 학교가 멀어지고 있어 안심이 된 탓일까 아이의 숨소리가 평온해 진다.

 

바다는 옅은 안개 속에 묻혀있다.

휴게소 앞에 차를 대고,

피곤하다는 아이를 위해 초코바 하나를 사고 그 앞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뽑았다.

아이는 며칠째 합주대회다 통계경진대회다 하며 지쳤나보다.

착하고, 차분하고, 공부 잘하고, 바이올린에 합주부, 수학 잘하고....

운동만 빼고는 다 잘하는 모범학생...엄마가 옆에 없어도 꾸준히 1등하는 아이...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성취를 즐기는 아이라 생각해 왔는데, 돌연 의심스러워 진다.

이 아이가 보여준 모습들은 정녕 억지 춘향이었던가?

 

...아니,아무리 그래도 안되겠다.

" 다 먹었니?"

아이는 조금 남은 '자유시간'쵸코바 끝을 입 안으로 밀어 넣으며 끄덕인다.

" 미래야, 이걸로 우리의 자유시간도 끝. 가자.

엄마도 아침에 일어 나서 정말 일 하기 싫은 날 있거든. 그런데, 그럴 때마다 일을 그만둘 수는 없잖아.

참고 다시 돌아가서 해보자."

 

하루 쉬라 하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아무래도, 나는 소심해서인지, 초등학교 5학년이 월요일 아침에 피곤하다는 이유로 학교 가지 않는 걸 허용하기가 어렵다.

나는 내 아이가 모범생이듯, 나 역시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엄마라 여겼는데,

아이와 눈 마주치기가 겁난다.

내게 뭔가를 따져 올까 두렵다.

 

뒤에서 훌쩍훌쩍 아이가 다시 울기 시작 하는 걸 보니, 학교앞이다.

하는 수 없이 아이의 손을 잡고 담장 옆을 함께 걷는다.

"후박나무, 녹나무, 대나무, 벗나무...."

할말이 없어 울타리 밖으로 뻗어 나온 나무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아이는 듣는지 마는지, 여전히 울며 걷는다.

 

"교실에 데려다 줄까?"

"......."

 

월요일 아침, 애국조회가 끝난는지, 교실로 돌아가는 아이들과  신발을 갈아 신는 선생님들

곧 수업시간을 앞두고 모두 분주하다.

아이를 안고 달래 주는데, 마침 아이의 담임 선생님과 마주쳤다.

놀란 선생님은 아이의 얼굴 가까이 고개를 숙여 한참을 얘기하다 내게 돌아왔고,

아이는 교실로 들어 갔다.

내가 한시간도 더 해서 못한 일을 몇분 사이에 끝낸 것이다.

게다가,

"저희 주말 동안에 해야할 숙제가 좀 많았거든요.

아마 여러가지 대회에 참가하는라 하지 못했나 봅니다. 학교 대표로 대회에 가느라 못한거니까 괜찮다고 했습니다...."라고 한다.

그리고는 걱정말고 돌아가라 했다.

 

갑자기 머리가 띵했다.

그게! 내 딸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숙제 생각이 났고, 워낙 많아서 그 때는 하려고 해야 늦어 버린 것,

친구들 앞에서 숙제 안해왔다고 혼날 생각에 학교 가기 싫은 아이..

...게다가 아무런 강짜도 없이 은근슬쩍 면책특권을 따낸 아이.

 

숙제도 다 하지 않은 아이가

학원도 다 쉬고,

엄마와 함께 놀이터에 가서 놀 시간을, 한 마디 말없이, 얻어내는 것

그것도 내 딸이었다.

그런 것을,

 나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을까봐

공연히 걱정하며

월요일 상쾌한 아침 다 보냈다.

쬐금 억울하다.

 

아이들은 언제나,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자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