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시절 친구 따라 교회에 몇 달 다녀 본 경험 외에
특별히 종교를 가져 본 기억이 없다.
별 의미도 없이 그저 따라 나갔었던 것 같다.
때로는 성경 귀절에 대한 의구심을 날카롭게 따지면서
궤변을 늘어놓던 시절이었다.
그 후 두 번째로 접하게 된 종교는 불교였다.
엄마 돌아 가시고 너무나 가슴 에이는 처절한 슬픔을 견딜 수 없어
날 위해 지성으로 불공을 들이시던 절에라도 가서
엄마를 위해 기도 드려야겠단 절실함에
산등성이의 절을 찾아 사십구제를 부탁 드렸었다.
불효했던 죄책감에 ,
산소호흡기로 인해 말씀 한 마디 못 남기고 가신 안타까움과
엄마를 향한 그리움에 예불 내내 오열을 참지 못하는 나를 따라
법당에 계신 모든 분들이 함께 눈물을 흘리시며 명복을 기원하셨다.
처음 대하는 날 마치 피붙이처럼 살갑게 대해 주시고
함께 아파해 주시는 그 분들로 인해 많은 위로를 받았고
불교의 소박함에 마음이 가기 시작한 것이
기독교에 이은 두 번째 종교와의 만남이었다.
어찌 보면 종교란 것은 자신의 신에게서 위안 받고 의지하고자
나약한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겠지만 정말 어느 순간 절실히
그 신을 필요로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난 그 때에야 처음 깨달았다.
내 어머니를 위하는 길이라면 그 무엇이 아까우랴.
내 형편에 좀 버겁긴 했지만 몇 백만원을 선뜻 비용으로 내어 놓은 것도
생전에 늘 자식들을 위해 부처님전에 불공드리시던 엄마가
저 세상에서라도 부디 평안하시고 행복하게 사실 수 있도록
부처님이 돌봐주시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였으리라.
평상시에 그런 걸 정말 우스운 짓이라고 생각해왔던 내 자신이
순식간에 정반대로 변해버릴 수 있었던 건 대체 무슨 조화였을까...
"엄마! 할머니 돌아가신 지가 벌써 일년이 넘었어???
할머니 안 계시면 못 살 거 같더니만...벌써 일 년씩이나..."
밤중에 내 침대에 나란히 누워 일일드라마를 보던 둘째녀석이
극 중 할머니를 보더니 뜬금없이 저를 키워주셨던
돌아 가신 외할머니가 떠올랐었나 보다.
"울 할머니는 저 할머니보다 훨씬 더 잘 나셨쥐이~..."
애 써 태연한 체 말을 이으면서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고 만다.
할머니가 갑자기 그리워 진 모양이다.
녀석은 '외할머니'라 부르는 걸 한사코 거부했었다.
그러면 안된다고 정확한 호칭을 써야 한다
촌수가 이렇다고 열심히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이다.
낳아서부터 할머니 살아 계시는 동안 내내 저를 길러 주셨으니
자신에겐 친할머니요
엄마네 시어머니이신 제 할머니는 '시할머니'라 해야 맞다고 박박 우겼다.
이제 엄마 가신 지 일년 반이 훌쩍 지난 시점에서
미처 그렇게 시간이 흘러 버렸단 걸 느끼지 못했던지
아니면,
그토록 슬픔에 겨워 흐느적 거리던 에미를 지켜보며 함께 울었던 자신이
어느 순간부터 돌아가신 분을 잠시 잊고 있었단 생각에 미안했던지
녀석은 목이 메이는 듯 하더니 말꼬리를 흐려버린다.
바쁜 일상에 밀려 절을 찾는 시간들이 차츰 뜸해 지면서
나도 점점 엄마를 보낸 슬픔에서 벗어 나고 있었나 보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애 써 잊고 살려고 했는 가도 모른다.
그러던 중 지난 여름 갑자기 남편은 내게 성당에 다니자고 권유해 왔다.
단호히 거절했다.
아직 엄마를 마음으로부터 보내 드리지 못하고
사망신고도 못하게 막고 있는 내 입장에서
엄마의 종교를 순간에 버리고 성당엘 가고 싶진 않았다.
권유하는 남편이 미울 정도였다.
그 후 일주기가 지나고 올 봄이 되니
남편 후배가 작정하고 성당 입교를 권유하는 모양이었다.
핸드폰으로 한시간 가량을 설득하는 그에게
내 고집대로 끝까지 버티며 심기 불편함을 말 하자니
좀 너무하는 거 아닌가 싶어 미안함도 없지 않은데 그는 끈기있게 계속해서
'배터리 이제 얼마 안 남았네. 끝장을 볼 셈인가...입교하자구'하며
애원하는그에게 마지 못해 '좀 더 생각해볼께...'하고 말았다.
사실 나도 종교는 가지고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해 오고 있는 터였지만
작년에 카톨릭 신자라는 어떤 여자와 안 좋은 일이 있던 게
늘 염두에 있었기에 더 거부 의사를 가지게 된 것 같다.
그 종교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의 언행만을 보고
평가하는 게 아니란 걸 알고는 있지만...
입교 원서인가를 제출하고 나서부터
매 주 목요일 밤마다 교리 공부를 하러 간단다.
그 때 마다 애시당초 더 단호하게 끊어버릴걸...
하는 후회를 얼마나 하는지 모른다.
일요일 아침이면 대미사 참석한다고 늦잠도 못 자게 되니 더더욱 불만이다.
"내게 종교를 일방적으로 강요 하지마!!!
내가 원해서 가는 거 절대 아니니깐."
뾰루퉁한 모습으로 마지못해 따라 나서는 나를
남편은 묵묵히 달래고 얼르며 기어코 성당으로 데리고 가곤 한다.
지난 일요일엔 눈을 뜨니 열시가 다 된 시간이다.
눈은 떴으나 몸은 아직 반취침 상태인지라
침대 위에서 꼼지락대며 조심스럽게 텔레비젼을 켰다.
오늘은 성당엘 안 가도록 어찌 해 봐야지...
어서어서 시간이 지나 가 버렸으면 좋겠다...하는 마음으로
행여 남편이 잠에서 깰세라 부스럭 소리가 나지 않게 몸을 사리고 있는데,
"어? 지금 몇시야??"
남편이 그 새에 눈을 떴는지 시간부터 묻는다.
하도 속이 상해서 일부러 대답을 하지 않았다.
"벌~써 열시네~?? 당신도 얼른 준비하지. 성당 가게..."
벌떡 일어 나며 남편이 날 툭 건드렸다.
에그그...뭐하러 내가 오늘따라 텔레비젼을 켰을꼬...
평상시엔 텔레비젼 잘 보지도 않았으면서...
분명히 텔레비젼 소리 때문에 깨고 말았을거야...
혼자 맘 속으로만 궁시렁 대며
"오늘은 자기 혼자 성당 가!!! 난 가기 싫어!!!"
툭 쏘고 몸을 더 웅크리며 이불을 끌어 당겼다.
그 때 텔레비젼에선 드라마 '파리의 연인'이 재방송되고 있었다.
평상시에 드라마를 볼 시간도 거의 없지만
그것이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여 또 보게 되는
묘한 흡인력이 있어 애 써 외면하던 터에
모처럼 한가해 진 시기라 주말에 한 번 보았는데 꽤나 재미있었다.
특히나 김정은의 놀란 토끼눈에 어우러진 제스츄어가
웃음을 자아내게 하여 귀엽기 그지없어
다음에 또 한 번 꼭 봐야지 했던 드라마이다.
그런데 때 마침 그 드라마를 재방영하는 게 아닌가.
남편이 엉거주춤 침대에서 일어나는 그 시간에,
극중 박신양인가 하는 텔런트가 곤경에 처한 김정은을 향해
"애기야~ 우리 애기 어디 안 다쳤어??"
"아니~우리 애기 놀랜 거 안 보여요???"
어쩌고... 하는 순간이었다.
그 장면을 유심히 바라 보던 남편이 뒤에서 쿡~하고 웃더니
목소리를 험 험하고 두어번 가다듬더니
"애기야~~빨리 일어 나 준비해라~응~?!!!"하며
그 말투를 금방 흉내 내어 나를 일으키려 애를 쓴다.
"우리 애기 착하지이???"
"자,자 ...애기야~~성당 가게 빨리 일어 나라~~"
내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코맹맹이 소리로 계속해서 "애기야~~"를 불러 대는 그의 면전에다 대고
도저히 낯 붉히며 더 이상 화를 낼 수는 없었다.
결국 더 이상 고집 부리는 걸 포기하고
할 수 없이 터덜터덜 따라 나서는데
방금 전의 남편의 말투와 행동이 떠올라 나도 쿡~ 웃음이 터져 나온다.
미사가 끝나고
성가대 지휘자인 선배 언니의 요청에 점심을 함께 하기로 하였다.
예비 성가대 자격으로 벌써 몇 번째 어울리는 점심 자리이다.
울산에서 공수해 온 고래 고기를 안주 삼아
찜닭과 함께 점심을 마련해 놓은 자리였다.
성가대 단원들끼리이니 모두들 오죽 친한 사이이겠는가.
주마다 두세 번은 만나 목소리를 맞춰 보고
때로는 아카펠라로 즉석에서 멋진 화음을 만들어 내는 분들이니
그들의 절친함이야 겉으로 금방 드러 날 정도인데
우리 부부는 후배 입장으로 그 사이에 끼이게 된 것이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에 약간 서먹한 분위기로 앉아 있는 내게
건너편 한 남자분이 잔을 권했다.
당황하여 머뭇거리는 내게 남편이 대뜸 좀 큰 소리로
"애기야~한 잔 받아!!'하는 게 아닌가.
좌중의 시선이 모두 내게로 쏠리고 난 웃음이 터져 버렸다.
"애기야~고래고기도 먹어 봐~
이거 한 접시에 십만원짜리래~"
이어지는 '애기' 타령에 모두들 한마디씩 한다.
"애기??허허허허..."
"우리도 애기라고 해 볼까...하하하하..."
"애기야!! 고래고기는 부추를 얹어서 먹어, 자, 아~해 봐"
그넘의 드라마는 누가 썼는진 몰라도
그 날 종일토록 '애기야~"를 불러대는 통에
가는 곳마다 웃음보따리가 터지고 재미 붙인 그는 귀가 해서까지
"애기야~이젠 자자~"로 막을 내렸다.
하도 자주 듣다 보니 그 어감이 과히 나쁘지만은 않은 거 같다.
화를 낼 수도 없고 웃음은 터져 나오고...
앞으로 남편과 다툴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아마도 남편은 틀림없이 내가 부어 터질 때마다
"애기야~~'를 외칠 것임으로...
그넘의 "애기야~~"가 사라지지 않는 한 어찌 웃는 낯에 침 뱉으랴...
여러분도 한 번 써 보실래여~~^^;;
저절로 웃음이 나오더라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