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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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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끄는 써래 타러오세요..


BY 아침이슬 2004-06-18

 

  

소가 끄는 써래 타 보실래요..

잠이 덜깬 아침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이른 시간에
길고 어스럼한 그림자 하나 등진 아부진 손도 발도 바쁩니다

작대기에 떡하니 공겨 있는 지게 위엔 논에서 쓰일 것들이 바리 바리 얹혀 집니다.
써래, 소입가리개, 괭이, 삽,낫...섬뜰위에 탁탁 고무신에 묻은 흙을 털며 마루 위로 올라서시는 아부지가
큰소리로 꼬맹일 깨웁니다.

아침을 깨우는 그소리에 밥을 채근하시는 소리도 함께 묻어 있어
엄만 뜸들이는 무쇠솥 밥을 나무주걱으로 한번 휘 저어 봅니다...

문에 달린 쇠고리 달랑 거리는 소리가 멎을 즈음..
일나라...퍼뜩일나라...
논 써리로 간다..
뜨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벌떡 일어나 앉는 꼬맹이와 두살터울의 동생은
입이 함지박만해 집니다.

스텐으로 된 기다란 공기에 수북이 담긴 밥을 다 비우신 아부진 소마구에
 소를 풀어  지게를 지고 논을 향해 나섭니다.
송아지한마리.열살의 꼬맹이,여덟살의 동생이 뒤를 졸랑졸랑 따라가는
모습이 한장의 그림속에 담겨서 농촌의 아침풍경이란 제목을 달아도 좋을듯합니다.

엎어지고 넘어지고 빠지면서 지나는 꼬불꼬불 가느다란 논두렁논두렁에
처음으로 소풍나온 암송아진 천방지축 영락없이 고삐풀린 망아지꼴입니다.

물이 적당히 담겨진 논바닥에 둥근 나무 토막 엮어 만든 써래자리를 잡고,
멀찍이 소를 세우곤 얼기설기 얽은 입가리개로 입을 가립니다.
아무래도 먹음직스럽게 싱싱한 풀 한올 입에 넣어보긴 다 글렀나 봅니다.

아부진 꼬맹이 동생을 써래앞에 앉히고 소목에서부터 써래로 연결된 줄을
두손에 꼭 쥐어 줍니다.
꼬맹인 동생 등에 딱 붙여 두고 그줄을 꼬맹이 손에도 잡아 줍니다.
 커다랗고 넙적한 돌하나를 마지막으로 꼬맹이 등뒤에 얹습니다.

등을 보이고 앞에 서신 아부지가 코뚜레에 연결된 고삐를 움켜쥐고
힘껏 한번 후려치면서.
어랴.어랴..어랴.하면 천천히 소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송아지가 어미 발에 채이고 채이면서 졸졸 따라 다닙니다.
갑자기 뒷다리를 하늘로 치켜들며 훌쩍 훌쩍 뛰어다니느라 흙탕물이
꼬맹이와  동생에게 다 튕겨져 옵니다.

모자란 잠에 눈을 비비면서도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질만큼 타고 싶었던
써래를 타는데 꼬맹이에겐 흙탕물이 대수가 아닙니다.
가끔씩 애미소가 탁탁 꼬리로 눈을치면 아픔에 눈물이 찔끔하지만
써래타는 즐거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꾀가 난 어미소가 자꾸만 길을 어긋나려 합니다.
어랴랴랴..랴랴랴 어랴랴랴.랴랴랴..어랴랴랴.랴랴랴...
아부지의 소 얼르는 소리가 더욱 커집니다.
천방지축 날뛰던 송아지가 애미소의 퉁퉁불은 젖을 쿡쿡 치받으며
주린 배를 채우려 졸졸 따르며 젖을 빱니다.

엄마 모습이 눈에 들어올땐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요동을 칩니다.
한손에 쥐어진 노란 주전자에선 덜식은 숭늉이 김을 모락모락 피웁니다.
따바리(또아리)위에 얹힌 넓적한 대소쿠리가 논두렁가 커다란 바위위에 내려집니다.
얼룩덜룩한 상추에.가죽자반 튀김에.고추밭고랑에서 자란 배추겉절이에.
뻑뻑한 된장에 보리밥에...

이참에 소입가리개도 시원하게 풀어주어 논두렁에 자란 풀을 열심히 뜯어먹습니다.
바위옆 돌틈사이에 수도없이 자란 나리가 통통하게 꽃몽오리를 맺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자리를 차지한 산머루도 잔디씨만한 열매를 달고  허리 잘록하고 까만 개미하고 동무하며 놉니다.

 

울퉁불퉁하던 논이 제대로 골라진 물 찰랑찰랑한 위에 말망새이(땅강아지)

발을 쉴새없이 움직이며 달아납니다.

물이 톡톡 떨어지는 아부지 장딴지에 빨간 피가 같이 흐릅니다...

아악....아부지 꺼머리..꺼머리요.

물에 퉁퉁불어 쪼글쪼글 흙묻은 아부지 손이 살 파고든 거머리를 꼭 찝어내서 물위로 홱 던져 버립니다..

 

달빛으스럼한 외양간엔 애미소와 새끼소가 살부비며 곤한 잠에 빠졌습니다.

아주 가끔씩 입으로 내뱉어지는 거친 숨소리가 낮동안의 피로를 다 달고 날아갈것입니다.

밥상앞에 숟가락든 꼬맹이와 동생은 입가에 밥풀을 묻혀가며 꾸벅꾸벅 상모서리에

머리를 받습니다.

꿈속에서 송아지와 만나 신나게 노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