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년을 살아오신 친정 어머님의 살림은 한마디로 누른빛이 도는것 같더니
뒤적거릴수록 먼지 내음 풍기며 점점 회색빛으로 바래졌다.
사람이 80여년을 살면 세월 만큼이나 쌓여 있는 살림살이도 정비례로 산을 이룰것 같은데
이삿짐 꾸릴려고 올케랑 같이 어머님의 살림을 정리 하다보니 왈칵 눈물이 솟는다.
우리 6남매를 키워 내시고 아버님 수발 하신 그 부산물이 고작 리어카 한대 정도라니...
그 많은 세월을 훌훌 다 털어서 날려 보내셨는지 챙길게 없다.
버릴것 챙길것 따로 구분 지어 놓는데 왠만하면 다 버릴 요랑으로 엄마를 멀찍이 앉아 계시게 했다.
당신 눈에는 모두가 손때묻고 하나같이 살뜰한 정이 배어 있는 데 쉽게 버리라고 허락을 않으실것 같았기 때문이다
버리는 곳에 무더기가 점점 커지자 어머니는 끝내 눈물을 쏟으셨다.
"얘야...그건 가지고 가자........아깝잖나."
"엄마...이건 요즘 쓰레기통에서도 찾아 볼수 없는 물건이야..내가 다시 사줄께..."
어머님의 투정 비슷한 애원에 어린애 달래듯이 오히려 내가 사정을 해야 했다.
어머님의 심정 같으면 몽땅 다 가지고 가시고 싶겠지만 젊은 우리 눈에는 쓰레기에 불과 했다.
못 마땅하게 쳐다 보시지만 차마 만류는 하지 못하신다.
어머님의 사정을 냉정하게 자를수 없는 올케의 입장을 대변해서 나서다 보니
어머니의 원망은 몽땅 내가 들어야 했지만 혹시라도 생길수 있는 고부간의 골을 나라도 이렇게 메꿀수 있으면 그걸로 다행이다.
구석구석 쏟아져 나오는 케케묵은 살림중에는 자식들의 흔적을 그대로 지니고 계시는게 많았다.
졸업앨범 - 내건 없었다 - 상장,교과서, 내가 가정 시간에 만들었던 수예품,
입다가 놔두고 간 옷 그리고 사진하고 자식들이 틈틈이 와서 드리고 간 선물 포장지....등등...
우리들의 흔적이 긴 세월을 고스란히 어머님의 옆에서 같이 호흡을 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런데 그걸 버릴려고 하니까 어머님은 눈물부터 쏟으셨다.
마치 자식을 두번 떠나 보내시는 아픔을 겪으시는 것 같이......
새로 이사 가는 집에서 우리 자식들의 체온을 느낄수 없어서 얼마나 허전하실까.
남아있는 흔적들은 몽땅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데....
버리는 물건마다 눈길을 한번씩 다 주시면서 아까와 하셨다.
무언들 안 아까울까......
애지중지 손끝에서 차마 놓지 못하던 것들인데........
버린 물건을 한번씩 다시 뒤적여 보시면서........ '차라리 나를 버리고 가지.....'
우스개 삼아 던지시는 말씀이지만 난 가슴이 아팠다.
당신네들 스스로도 쓸모없는 목숨이라고 그렇게 여기고 계신게 너무 나를 아프게 했다.
오래 살아서 자식에게 짐이라고 입버릇 처럼 뇌시는 부모님....
건강 안 좋으신 두분을 위해서 최대한의 조건이 허락하는 곳에다가 보금자리를 만들어서
모시려는 오라버니의 맘을 너무 아프게 하실까봐 난 걱정이 됐다.
"엄마,....효성 깊은 아들 가슴에 못 박는 소리좀 그만 해요."
그랬다,
내 오라버니 그리고 올케......
부모님 다음으로 존경하는 그 두분을 생각하면 한없이 고맙고 미안해서 눈물이 난다.
머지않아서 이 집을 떠나실건데,
그때 쏟으실 그 눈물을 다 어이 감당 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