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를 키운적이 있었습니다.
몇년전에 강원도 어느 산사에 갔다 돌아오는 산길엔
그늘진 산자락 사이 얕트게 흐르던 계곡 틈사이로 푸르무리한 돌들이 많았습니다.
푸르무리한 정체는 돌위에 둥지를 틀고 있던 이끼였습니다.
그 중에서 두주먹만하고 귀염성 있게 생긴 돌멩이를 골라 까만 비닐봉지에 넣고
초등학교때 구멍가게에서 심부름으로 산 날달걀을 안아서 좁은 왕십리골목을 걸어오듯
돌멩이가 깨질까 이끼가 상처날까 조심조심 들고 차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옆자리에 놓고 굴러가지 못하게 꼭 잡고 먼길을 오느라
손에 쥐가 나고 한쪽팔이 뻗정팔이 되었지만
집으로 와서는 베란다 창안 유리깔아 논 항아리 위에 올려 놓고 매일 매일 물을 주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내 목이 먼저 물을 달라해도 참아라 기집애야하고 이끼부터 물을 먹였고
점심 커피를 마신 뒤에 커피 마시는 걸 잊지 않듯이 또 한번 주고,
잠자기전에 개운하라고 분무기로 샤워를 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무릎을 세우고 앉아 이끼와 마주 보며 한참씩 공상을 하곤 했습니다.
혼자있어도 혼자가 아닌 듯,이끼와 마주보며 뒤돌아보며 옆으로 헬끔보며 살았습니다.
몇달을 같이 일어나 물을 마시고 커피도 마시고 샤워도 하고
편해하지 않고 잘 보살펴 주었는데 이끼는 산사가는 길에 놓여있던
생그럽고 발랄한 모습을 잃어가고 말았습니다.
힘이 하나도 없이 누렇게 바짝 마른다 했더니
늦가을 가랑잎처럼 퍼석거리더니 결국엔 원래의 모습 돌멩이만 남아버렸습니다.
겨울 산자락에 누워있던 이름모를 무덤과 닮아있었습니다.
고즈넉한 산사가는 길에 늙어 저승 갈때까지 살고 싶어하던 이끼였을텐데...
내 눈에 띠고 내 손에 들려졌을 때 이끼는 얼마나 가슴이 졸아들었을까?
후회를 했을땐 이미 늦어버린 시간입니다.
세상일이 다 그러합니다. 늦어버린 시간에 눈물을 흘리며 후회를 합니다.
다시는 도리킬 수 없는 줄 알면서도 책임감 없는 후회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끼가 죽어서 무덤을 연상하게 되는 돌멩이를 보면서 지난 세월을 두리번거려 봅니다.
누구를 탓하며 누구를 그리워하며 누구를 미워하며 누구를 기다리는지....
아무상념도 할 수 없는 공허한 상태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을 때가 마음 편했을지도 모릅니다.
힐끗 멀끗 기웃거리고 이것저것 가지다 보니 너무 많은 것을 끌어앉게 되었고
끝나지 않을 욕심의 한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내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데...
이끼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을겁니다.
그늘진 응달에서 평생을 살면서도 햇볕을 원망하지 않았고
자신을 키워야할 물이 부족했어도 하늘을 미워하지 않았고
겨우 떨어지는 자잘한 흙에서 양분을 걸러 먹고
이따금 씻어주는 빗물에게 고마워하며 살아가고 있었을겁니다.
나중에 이끼를 키우던 돌멩이는 오이지 담글때 쓰게 되었습니다.
오이가 물위로 뜨지 않게 눌러 놓는 역활을 톡톡히 하게 되었지만
돌멩이는 속으로 그랬을겁니다.
'짜거워 죽을 것 같으니 날 내 고향으로 돌려 놔!'
그리고...또 몇년이 흘러간 뒤...
내 직업과 생활은 완전히 다른 길로 걷게 되었습니다.
가게를 얻어 주로 파는 것이 과일이면서 야채와 간식거리가 있는 동네 수퍼입니다.
수퍼일이란 참으로 삭막하고 재미없고 사람만 들락거리는 정신없는 일이랍니다.
그래서 짜투리 시간에 시작한 취미가 들꽃을 기르는거였습니다.
내가 직접 씨를 뿌려 가꾼것이 아니고 나무밑둥에 지네들이 와서 살겠다길래
가만히 놔 두고 매일 물을 주고 쳐다만 본 것이 다지만....
그러면서 밥도 먹고 잠시 신문도 볼 수 있는 공간에 난을 한 분 갖다 놓았습니다.
이것도 누군가 버린 한라산 현무암 속에 싸구려 난을 하나 사다 심었는데
집에서 기르다가 삭막하지 말라고 가게에 갔다 놓은 것입니다.
항아리 뚜껑에 난이 심겨진 현무암을 놓고 습기가 마르지 않게 물을 충분히 주었더니
이끼가 저절고 찾아와 뿌리를 톡톡하게 박고 이사갈 줄을 몰라라 했습니다.
초록 카페트 같이 까실하면서 부드러운 이끼.
산사가는 길에 쟁취해 온 이끼는 금방 내 곁을 떠나가 버렸지만
저절로 찾아 온 이끼는 내 곁에 남아 가느다란 꽃대에 씨앗같은 꽃을 피웠습니다.
차를 마시며 이끼의 피부를 자세히 봅니다.
매여있는 가게일로 답답증을 느낄 때 이끼의 살갗을 쓸어 봅니다.
그리고 나를 다시 내려다봅니다.
쟁취했던 이는 나를 배신했고
스스로 찾아 온 일은 나를 먹여살렸습니다.
오늘도 가게 문을 닫기 전에 이끼에게 물을 한 컵 먹여 놓고 왔습니다.
이끼를 먹여 살리는 일이 참 재미있고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