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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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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BY 낸시 2004-04-18

"오늘 미역국 끓여 먹었냐?"

언니가 묻는다.

"아니? 그런데 무슨 말인지  알았어.  언니, 이제 그런 일에 그만 신경 써. 내가 그런 것 잊고 사는 것이 더 좋데."

남편의 생일 날 언니랑 전화로 하는 대화다.

울 남편의 생일은 친정 어머니랑  같은 날이라서 나는 잊어도 언니는 잊지 않고 전화를 한다.

물론 언니는 나랑 달라서 그런 날에 의미를 두고 선물하는 것을 잘 하는 사람이니 친정 어머니하고 다른 날이었어도 잊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언니는 전 날 미리 전화해서 남편의 생일을 잊지 말고 미역국이라도 끓여주라고 내게 당부하기도 한다.

언니의 당부가 미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잊어버릴 때도 있고, 잊지 않았어도 미역국 끓이고 선물 준비하는 일은 안하기도 한다.

남편의 생일에 아무것도 안하고 넘어가거나 잊고 넘어간 것이 멋적을 때는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때운다.

"여보, 당신 생일 잊고 가니까 섭섭하지? 그러니까 내 생일은 잊지 말고 맛있는 것도 사 주고 선물도 사주고 그래..."

물론 말꼬리에 애교를 잔뜩 섞는다.

그것도 부족하다 싶으면 남편의 팔을 끌어다 내 어깨에 두르고 애교를 떤다.

남편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지만 생일을 잊고 간 죄를 묻지는 않는다.

남편의 생일만 잊는 것은 아니다.

내 생일도 잊고 살기는 마찬가지다.

남편이 이제는 이런 내가 편해서 좋단다.

내 생일을 기억하고 선물하는 번거로움에서 자기를 벗어나게 해 주어서 좋다고 한다.

시부모님 생일도 슬금슬금 잊어버리다 요즈음은 아예 알고도 모른 척 한다.

지난 해는 아이들에게도 말했다.

이제 스무 살이 넘었으니 생일 날 엄마가 선물 안해도 섭섭해 하지 말라고...

 

간혹 이런 자신에 대해 정말 잘하는 짓일까 의문을 갖기도 한다.

산다는 게 뭘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누구 말대로 나 처럼 살면 사는 재미가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그리고 결론은 나랑 사는 남편이  굳이 불평하지 않는 일에 나를 들볶을 일이 무어랴...

생일을 잊었다고, 제삿날을 잊었다고, 맞며느리에게 섭섭함을 표하지 않는 시부모를 갖었는데 굳이 나를 들볶을 일이 무어랴로 굳어진다.

나답지 않은 짓을 억지로 하면서 불편해 하는 것보다는 그런 나를 받아주는 그들을 고마워하며 사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을 한다.

속세와 인연을 끊고 산 속으로 가지 않아도 나 처럼 살면 세상살이 번뇌에서 많이 해방될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