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갈 것을 생각하니 지루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책을 읽으며 가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쁘게 서둘렀다.
되도록이면 먼곳을 혼자 갈때 앉을 자리만 한칸 내어진다면
호젓하고 지루하지 않고 책 내용에 푹 빠질 수 있어 좋다.
여중시절 친구들 모임이라 아들 녀석들의 점심을 챙겨 주고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상당히 늦을거 같다는 생각땜에 조바심이 났다.
며칠전 서점에 들러 다섯권의 책을 사왔다.
피천득의 ‘인연’,이문열의 ‘신들메를 고쳐매며’,홍정욱의 ‘7막7장 그리고 그후’
정채봉의 ‘그대 뒷모습’, 그리고...안효숙의..‘나는 자꾸만 살고 싶다’
‘그대 뒷모습’은 얼마전 생일이었던 내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 샀고
나머지는 내가 번갈아 가며 읽을책이다.
난 여러권의 책을 놓고 읽는 습관이 있다.
시책 한권, 수필 한권, 소설이나 철학이 담긴 내용의 논리적인 책 한권 정도..
이책을 몇제목 읽다가..시를 몇편 읽다가.. 하면서 지루함을 넘기며 꾸역 꾸역
읽기도 하고 꼭 되새기고 싶은 문장이 있으면 책장 귀퉁이를 쬐금 꼬부려 놓는다.
몇권의 책이 항상 거실 상위에 너부러져 있으면서 한두달에 걸쳐 겨우 섭렵한다.
큼직한 핸드백을 골라 친구에게 줄 책, 내가 읽을 책으로 ‘나는 자꾸만 살고
싶다‘를 가방속에 챙겨 넣었다.
서울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가야 할 판이었다.
토요일 오후라 지하철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서너구간쯤 갔을때 고맙게도 앉을 좌석을 얻을 수가 있었다.
잽싸게 앉아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왜냐면 책 사다 놓은지 이틀쯤 지났는데
뭐가 그리 바쁜지 틈이 안나 화장실 가 앉아 추천글 정도 읽어 놓고 읽지 못한
상태라 책 내용의 궁금증과 샀으면 어느정도 빨리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였다.
내가 이곳에서 알았던 분(손풍금님)의 책이라 그런지 복잡한 차안이었지만
책장이 술술 잘 넘어 갔다.
중간쯤 갔을때 저 아래 전라돈지 충청돈지..사투리를 무진장 쓰는 할머니들이
내 옆자리에 바꿔 앉아 얼마나 왕수다를 떠시는지 주옥같은 문장이 집중이
안되어서 고개를 돌려 쳐다 봤더니 입술도 빨갛게 칠하고 꽤 멋을 부리신
젊은 할머니들이셨다. 그할머니들에게서 나는 파,마늘 양념냄새와 내 귀에
들리는 억양들로, 짐작 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부르조아 적으로 보이셨다.
한 분은 세아들 세며느리 손주들을 불러 모아 새우를 한상자 사서 삶아 놓으며
애들에게 먹도록 해주면 각자 자기 자식들에게 하나라도 더 먹일려고
아주 손놀림이 바삐 돌아 가는게 참 우스우면서 흐뭇하다고 하셨고
옛날 항상 부족하던 시절 자기 자식들에게 먹고 싶은 것 실컷 못해주고
풍족하게 못 먹여 줘서 안쓰러웠다고 하셨다.
책갈피를 차라리 천천히 넘기면서 그분들의 얘기를 경청하고 그분들의
표정을 보며 서민의 행복감이 나에게까지 젖어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하마터면 바꿔 타야 하는 잠실역을 그냥 지나칠뻔 햇었다.
책을 움켜쥐고 허둥지둥 겨우 내리고서 부끄러워 쑥스러웠다.
그리고 내고향 친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왕수다를 떨고 있을
그곳으로 총총히 걸어 갔다.
*
*
난 내친구가 음악에 푹 빠져서 흥얼거리면 멋져 기뻤고,
별일 아닌 일로 슬픔에 빠져 있다고 투덜 거리면 슬펐다.
성당에서 성가를 부를때 무슨 이윤지 모르지만 눈물이 났다고
했을때 기뻤고 슬픈 영화를 보는데 눈물이 안나왔다고 했을때 슬펐다.
지금도 시를 읊으며 좋아라 할때가 기뻤고
부동산이 어떻코 하며 투기에 혈안이 되어 있으면 슬펐다.
건강들 잘 지켜 오래오래 함께 잘살자고 할때 기뻤고
드라마 주인공이 징징 짠다고 체널을 바꿨다고 했을때 슬펐다.
...............하지만,
아롱이 다롱이 친구들은 너두 나두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모두
소중한 친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