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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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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후회는 없어 (미용실 이야기 33)


BY 명자나무 200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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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이 열렸다고도 하고 학교가 입학식을 한다고도 한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어보니 큰 건물 이층, 언제나 매장이 열리는 자리에 어제부터 다시 들어왔다고 하면서 동네가 술렁술렁 하다 , 어머니나 할머니들을 모아놓고 노래도 하고 게임도 하고 재미나고도 야한 이야기도 해주면서 1반 2반 나누어서 서로 경쟁심을 부추키면서 아주 비싼 값으로 물건을 파는데 대한민국에 없는것 빼 놓고는 다 있다고 한다.

오늘도 아침부터 아줌마들이 바쁜 걸음으로 매장을 향해서 가고 있다.
어디서 저렇게 많은 분 들이 사시나 싶게 아침 열시가 가까워지자 수많은 발 걸음 들이 종종 걸음으로 바삐 걸어간다

오전반 오후반 아줌마들 손에는 18롤이나 24롤 화장지 뭉치가 들려있을때도 있고 커다란 주방 세제나 가루비누를 가지고 가는데 부지런히 다니시는 분들은 집에다 휴지를 쌓아놓기도 하고 더러는 며늘네나 딸네집까지 나눠 주기도 하지만 종이 질이 좋지가 않아서 젊은 사람들한테 주고도 타박만 받는다고 한다


커피언니는 한달은 족히 넘게 그곳으로 출근을 하는데 곱게 화장하고 옷도 예쁘고 깨끗한 옷으로 늘 신경써서 입는다.
어떤 날은 머리 드라이도 하시러 오는데"거기 재밌어요"하고 물어보면 너무 재밌고 많이 웃어서 엔돌핀이 팍팍 나와 젊어지신다며 생각만해도 즐거운지 입가에 연신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우리집 터주대감인 향이엄마와, 향이이모 그리고 지금은 암에 걸려 투병치료중인 설아엄마 .. 이 언니들이 지난번 매장 멤버이다.
매장에 자주 다니면 집안 들어먹는건 시간 문제라면서 초기에 선물만 나누어 줄때 그 때만 가서 휴지랑 주방 세제만 받고 빠지자고 굳게굳게 손가락까지 걸고 맹세하며 들락거렸다.

그런데 가서 듣다보니 세상 천지 좋은 물건은 다 거기에 있더란다.
먹으면 몸에 좋다고 해서 약 하나 사고 깔고 자면 몸이 개운하다고 해서 옥매트하나사고 은 이불 인지 금 이불 인지 깔고 덮으면 오래 산다고 해서 사고..살때마다 이쁘고 귀여운 젊은 오빠들이 어머님 누님 하면서 같이 눈 마주쳐주고 웃고하니 하루라도 가지 않으면 맘이 둥둥 떠서 손에 일이 잡히지도 않았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니 꼭 마약 먹은거 같다고 하면서 있는 카드 돌려가며 다 긁고 돈 없으면 아는 사람한테 꿔다가 사고 그렇게 쓴 돈이 몇 천만원씩이라니 듣고도 믿을수가 없어서 그저 입만 벌어질 뿐이다

이 매장 선배님들은 지금도 긁은 카드값 갚느라고 남의 집일을 다니기도 하면서 아직도 곤궁한 삶에서 빠져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 좋다던 물건들이 지금은 웬수처럼 보인다며 눈에 뭐가 씌였다며 탄식을 길게길게 한숨처럼 내 뱉는다.

설아 엄마는 얼마나 돈을 많이 퍼다 줬는지 쫒겨나기 직전에 암에 걸리자 차마 아저씨가 이혼하자 말을 못한다며 아마 자기는 병에 안 걸렸으면 이 동네서 살고 있지 않을거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고 웃는다.


매장이 열리면 미장원이나 목욕탕 . 아줌마들이 이용하는 곳이 사람이 없어 한가해진다.오후 시간에 설아 엄마랑 녹차 한잔 타 놓고 말없이 앉아 있는데 요즘 부지런히 매장 다니는 커피 어니가 들어와 드라이 해달라며 의자에 앉는다.
듣기 좋게 부르느라 언니지 사실은 손자손녀 둔 할머니다.
커피언니는 화투치는 하우스에서 커피도 팔고 청소도 해주고 돈도 꿔주면서 이자 받는 언니다.요즘 매장 다니느라 하우스에도 안 나간다면서 예쁘게 해달라고 한다.

녹차 한잔 들고 심심해 있던 설아 언니는 매장 소리가 들리자마자 귀가 번쩍 뜨였는지 벌떡 일어나 "매장 다니세요?" 하며 허스키한 소리로 묻는다.


처음에는 설아 엄마가 매장 다니면 신세 망치고 집안 들어 먹는다며 다니지 말라고 간곡히 충고하더니만 커피 언니가 좀더 향긋하고 한 옥타브 올라간 높은 목소리로 매장에 가면 얼마나 즐겁고 재미있는지 시간 가는줄 모른다면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시작하니 설아 엄마 옛 기억이 나는지 금방 그 말 속으로 빠져서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웃음이 입가에 헤프게 퍼진다.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얘기 소리에도 설아엄마와 커피 언니는 한 마음이 되어서 자지러지게 웃는다.
설아엄마는 자기 매장 다닐때 일어난 일을 얘기 하면서 지금도 그런일이 있느냐고 묻기도하고 많이 사면 상품도 주느냐고 ..자기는 이등해서 삼백만원자리 이태리제 육인용 식탁을 탔는데 일등한 사람은 커다란 침대를주고 삼등한사람은 지펠 냉장고를 탔다면서 조금 덜 사서 냉장고를 타야 제대로 써먹는건데 하면서 아쉬운듯 말꼬리를 흘린다.

흘러가는 얘기 소리를 듣고 있자니 매장 다니다 신세 망친다며 말리려던 설아엄마는
어느새 커피언니가 들려주는 매장 얘기에 옛 기억이 난듯 더 신이나서 자기의 경험담을 얘기하느라 바쁘다.

그러는사이 젊은 손님이 들어와서 파마를 말고 있었다.
딴나라 세상에서 벌어지는듯한 얘기 소리에 감히 끼어들지는 못하니 눈만 커다래져서 껌뻑껌뻑 한다. 한 참을 매장 얘기로 소란 스럽던 두 언니가 놀래서 입 벌어진 젊은 새댁을 보더니 민망한지 "매장 물건이 비싸서 그렇지 좋기는 엄청 좋아" 한다.
"시중에서 십만원이면 매장에선 삼십만원이나 그 이상 하기도 할껄?"
하는데 내가 생각하니 세배가 아니라 열배도 더 하는것 같다.

커피언니 호기 있게 "돈이 문제야? 누가 우리같은 늙은이한테 누가 그렇게 재밌게 해주겠어? 자식이 해주겠어 영감이 해주겠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설아 엄마는 손뼉까지 짝 치면서 "맞아 맞아 그 돈 갖다 버렸어도 후회는 없어 후회는 없어..."
큰 소리를 치지만 어딘지 김빠진 목소리다.


커피언니가 다니던 학교가 문을 닫고 며칠지나서 다른 학교가 문을 열었는지 다시 동네가 술렁 하면서 화장지나 라면 박스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마침 커피 언니가 와서 "언니 학교 안가요?"하니 한숨을 들이쉬고 내 쉬면서 학교 다니다 영감한테 쫒겨나고 자식들한테 눈치보여서 지금 죽을 맛이라며"내가 미쳣지 미쳤어. 눈에 뭐가 홀랑 씌워가지고.. "

커피언니의 탄식 소리를 들으며 이번에는 누가 낚시바늘에 걸려서 천당과 지옥을 오갈라나 햇빛 쨍한 사이를 부지런히 다니는 아줌마들을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