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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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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떠오르는 얼굴


BY 옛 이야기 2004-02-07

어느해 겨울이었다.

몇날 몇일동안 눈이 쏟아져서 온 세상이 눈으로 덮혀 버렸다.

음력 설을 바로 코 앞에 두고 내린 눈이었다.

사람들이 우리집에 마실을 와서는 단대목에 눈이 이렇게 내려서 큰일이라며

걱정들을 하였다.  그당시 우리집 몇집 건너에 민희 언니네가 살고 있었다.

날아갈듯한 기와집에 사는 언니는 언제나 새초롬한 표정으로 길에서

마주쳐도 아는체를 안하고 눈을 내리깔고 지나가곤 하였다.

 

나는 그런 언니가 부러워서 그 집앞을 지날때면 고개를 빼고 담너머로 집안을

구경 하느라 기웃 거리곤 하였다. 우리집 배는 될 정도로 너른 마당가에는

온갖 꽃들이 눈이 부시게 피어났으며 무엇보다 부러웠던건 우물이었다.

그집 우물가는 아주 장식을 멋지게 해 놓아서 다들 어려워서 물 길러 가지를

못했다. 날렵한 처마를 달아서 비가와도 걱정이 없게 하였으며 주위에는

자잘한 꽃들을 심어서 테두리를 돌들로 쌓아 놓았다.

 

아버지가 일하러 가신 날은 내가 물을 길어 와야 했다.

어른 물지게를 지고  비틀거리며 물을 길어 오다가 그 언니네 집앞에서

물통을 내려 놓고 가쁜 숨 을 몰아쉬며 우물을 바라보면 한없이 부러운 생각

뿐이었다. 아 저런 우물이 우리집 마당가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왜 우리집에는 우물이 없을까 그런 생각을 수도 없이 하였었다.

 

나보다 몇살이 더 많았던 언니는 내가 국민학교 다닐때 교복을 입고 중학교를

다녔다. 어떤 날은 물지게를 지고 오다가 학교 갔다오는 언니와 마주칠때가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창피한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숙이고 바삐 걷느라 물이 마구 철렁대며 넘쳐 흘렀다.

 

마치 나와는 다른 세상을 사는 것처럼 우러러 보이고 남달라 보였다.

늘 보리밥을 먹고사는 우리와는 피부색깔부터 달랐다.

뽀얀 얼굴에 귀티가 자르르 흘렀다. 언니네는 식구가 무척 많았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도 계셨고, 시집 안간 고모도 함께 살고 있었다.

고모도 인물이 아주 고왔다. 언제나 하이힐을 신고  양장을 하고 다녔다.

 

그런데 이웃동네 사는 총각이 고모를 좋아 해서 쫓아 다녔는데 건달 비슷해서

무시하고 아예 상종도 안해 준 모양이었다.

눈이 많이 왔어도 집집마다 눈을 치우고 설 준비로 바쁜 그믐날밤 이었다.

그날 우리는 작은방에서 강정을 만드는 엄마 곁에 턱을 바치고 모여 있었다.

모처럼 온 집안에 불 을 밝혀 놓아서 대낮처럼 환한 밤이었다.

 

갑자기 여자의 비명이 들려오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집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엄마가 우리더러"무슨 일인가 나가봐라 그라고 추운데 얼릉 온나!" 하길래

안그래도 심심하던 우리는 자리를 박차고 어른들을 따라 뛰어갔다.

비명소리가 들린곳은 민희 언니네 집이었다. 그 총각이 술 힘을 빌어 찾아 왔다가

대문도 안 열어주자  홧김에 칼로 죽는다며 자해를 한것이었다.

 

이웃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부잣집에서 벌어진 희한한 일을 구경 하고 있엇다.

평소에 그렇게 새침데기인 민희 언니가 옷도 제대로 못입고 나와서 벌벌 떨며

울고 있었다. 다행이 크게 안다쳐서 누군가가 총각을 데려가고 우리들도 추워서

집으로 달려와서 엄마한테 본것을 전하느라 마구 떠둘어댔다.

 

엄마는"그러게 여자가 인물이 너무 반반해도 안좋은기라 그 집이야 누구나 사위되고

싶어 안하겠나. 그래도 자기 분수를 알아야지 벱새가 황새 쫓아가면 안되는기라."

지금쯤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되어 있을 그 고모는 어떻게 사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민희 언니는 여전히 이쁘고 잘 사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