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해운대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아주 정갈하게 차려진 한식을 먹었다.
다들 먹고 나서는 대접 잘 받은 느낌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했다.
후식으로는 홍시가 나왔다.
참 오랜만에 먹어본다면서 다들 어린애처럼 입에 넣고는
오물오물 녹여 먹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만사 제쳐놓고 홍시이야기나 하련다.
어릴 적, 서리가 내리면 발그레하게 잘 익은 감을 따서는 장독이나 뒤주에다 저장을 해 두었다.
한겨울 제사 때나 손님이 오시면 쓸 요량으로,
긴 대나무의 끝을 반으로 쪼개어 그 사이에 나무막대기를 끼워 감을 땄다.
더러는 떨어져 금이 가고 더러는 아예 으깨어져 감식초를 담기도 했다.
서리가 내린 후의 감따기를 할 땐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양말을 벗고 나무에 올랐다.
그러다 보니, 말간 햇살이 따사롭게 내릴지라도 발끝이 시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온 식구가 하루 종일 딴 감으로 곶감도 깎고 겨우내 먹을 간식용으로
항아리에 저장을 하기도 했다. 울 엄마는 그 중에서도 최상품은 안 쓰는 벌통에다 신문지를 깔고 아주 은밀한 곳에 보관을 했다.
이 작업은 자식이 하도 많아 어느 놈이 몰래 훔쳐보고 있다가 빼먹을지 모르기에
아주 비밀리에 행해졌다.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참고로 울 엄마 제주도 여행 갔다가 사 온 그 귀한-당시에는- 귤 한 박스를 너무 꽁꽁 숨겨 두었다가 말장 흐물흐물 녹아 못 먹게 된 적도 있음.)
하지만 뛰는 놈 위도 나는 놈이 있다고 하질 않나. 종일 주전부리를 찾아다니던 내 눈엔
아무리 꼭꼭 숨겨둔 것일지라도 금방 눈에 띄게 마련.
엄마는 정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외양간 시렁 위에다 벌통을 숨겨두었다.
소똥을 밟고 마굿간 구석으로 가는 것은 꺼림칙했지만 홍시의 달콤한 유혹은
떨칠 수가 없었다. 나는 정말 쥐 풀방구리 드나들 듯, 곶감꼬치 빼먹듯 야금야금 홍시를 훔쳐먹었다.
거의 벌통을 반쯤 비운 한겨울날 아침밥을 일찍 먹고 방문을 나섰다.
그 날도 외양간에서 홍시를 하나 몰래 빼 내오는데 방문이 벌컥 열리며
울 엄마가 뛰쳐나오시는 것이었다.
"어이구, 우째 감이 자꾸 없어진다 했더니, 니구나. 이 노무 자슥."
"옴마야,"
비명을 지르며 다리야 날 살려라 하고 냅다 동네를 향해 마구 달음질쳤다.
설마 남세스럽게 쫓아올까 싶어서,
그러나 그건 순진한 생각.
다리도 짧고 똥똥한 울 엄마, 그렇게 달리기를 잘하는 줄 미처 몰랐네.
동네 한 바퀴를 돌다가 들판으로 냅다 달렸는데도 울 엄마의 추격은 멈추질 않았고
결국 나는 붙잡혀 부지깽이에 실컷 얻어맞았다.
"문디 가시나, 지사(제사)때 씰려고(쓸려고) 애낀건데(아낀건데)……."
또 하나, 돌감 홍시에 얽힌 추억.
우리 옆집 섭이네는 까막눈이었다. 자식들이 다 도회지로 나가고, 혼자 계시던 아지매.
한 달에 한 두 번 자식들의 안부편지가 오면 꼭 내게 들고 오셨다.
"야야, 뭐라고 썼노. 좀 읽어다오."
"예, 아지매."
처음엔 단조롭게 읽다가 그것도 질이 나니, 구성진 가락이 나오는 거라.
"옴마, 보세요." 어쩌구 저쩌구 읽어 내리면 아지매는 한숨 반, 웃음 반,
몇 번이나 희로애락의 감정의 능선을 넘었다. 그리고 나서는 답장을 구술하시면 나는 받아쓰기를 했다.
"꼭지, 보아라."
로 시작하다가 이것 역시 몇 번 쓰다보니 질이 나니, 아지매가 하지도 않은 말까지 넣어서 나 나름대로 구성지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마지막엔 꼭 한 번 아지매가 점검 낭독을 시키면 나는 도회지에 딸을 보낸 어미의 심정을 내가 생각해도 너무 가슴 저리게 잘도 읽어내렸다.
읽기를 마치면 아지매는 장독대로 가서 바가지에다 돌감 홍시를 한 바가지나 담아 오셨다.
"아가, 고맙다. 줄 것이라곤 이것밖에 없구나.
집에 가서 갈라(나눠) 무래이."
"예"
대답은 찰떡같이 하고 집에 와서는 의기양양하게 바가지를 무릎에 놓고 대청마루에 앉아 엄마에게 시위하듯이 그 많은 홍시를 야금야금 먹은 기억이 새롭다.
오늘은 잘 생긴 대봉감 하나 사 먹어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