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녀석이 '라식수술' 노래를 불러댄 지 오륙 개월...
군 입대 후 안경 때문에 고생을 몹시도 했던 모양인지
휴가 올 적마다 '엄마, 라식 수술하면 돈 많이 들어요?'라는 물음이 단골 멘트였다.
운동을 좋아하는 녀석이라 군에서도 축구 선수 주전멤버였던 모양이다.
자기네 내무반이 축구 경기에 우승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으로
포상 휴가를 나올 정도였으니...
반면에 안경을 세 개나 마춰서 보내주어야만 했다.
축구 하다 넘어져 깨뜨리고 또 운동하다 깨뜨리고...
화생방 훈련 때가 가장 불편했다며
눈 나쁜 것에 대한 애환을 수시로 담담히 털어놓곤 했었다.
처음엔 라식수술이 부작용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도 자주 들어서
아들이 푸념을 하건 말건 귓전으로 흘리고 말았다.
저러다 말겠지하는 계산도 있었지만...
녀석은 내 성격을 닮아서 부모에게 무작정 해 달라고 조르는 성격이 못 된다.
조심스럽게 뱅뱅 돌려 자신의 의사를 알리는 타입인지라
나를 볼 때 마다 빼질 않고 얘길하는 '라식'이라 결국 나중에는 새겨 듣게 되었다.
녀석이 그렇게도 하고 싶다는 것을 끝까지 반대할 수도 없어
병원이나 매스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자문을 구하기로 하기에 이르렀다.
반반의 의견들이 모아졌다.
아직은 정확하게 검증 결과가 입증되지도 않았고
우리나라에서는 고작 십여년 밖에 안된 시술이니 하지 말라는 의견과
하고 나서 몇 시간 후면 정말로 '밝은 세상'을 보게 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며
하루빨리 해 주라는 찬성파...
그러니 나 역시도 적잖은 갈등이 생겼다.
'눈'이란 것이 원래 얼마나 미세하고 소중한 것인가.
한 번 망가지면 도저히 회복 불가능한 것일텐데 대체 어쩌면 좋단 말인가...
아들놈을 설득하기로 했다.
먼 후일, 십여 년이 지나
만에 하나라도 수술하는 게 아니었다는 후회가 생기면 어쩌냐고
그 때 가선 발등 찍고 후회해도 이미 늦은 것을 ...하게 되면 어찌 하느냐고 물었다.
그럼에도 녀석은 후회해도 좋으니 꼭 해 주셨으면 한다고 강하게 나온다.
자신이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비용을 해 주시면 좋겠다는 의사까지 덧붙여...
칠월부터 아르바이트를 하여 정확하게 육개월 반을 하였으니
그 돈이면 라식을 몇 번 하고도 남겠지만
부모님께 경제적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다는 녀석의 뿌리 깊은 독립심은
마음까지 시릴 정도이다.
여러 경로를 거쳐 수술을 해 줘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병원에 문의를 하니 검사를 받은 사일 후에 수술을 해야 하고
수술 뒷 날 또 가서 검사를 하며 그 후 삼을 후 또 병원엘 방문해야 하고...
눈 수술하는 녀석을 혼자 보낼 순 없고,
나나 남편이나 지금이 가장 바쁜 시기이니 그 때마다 동행하는 것도 어려울 듯하고
그렇다고 별로 경험도 없을 소도시 의사에게 그 귀중한 눈수술을 맡기자니 내키질 않는다.
서울로 보내자니 왕래하는 데 경비도 경비려니와
거리에 뿌리는 시간이 너무 많을 것이고...
고민 끝에 결국 광주 여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네가 전화로 문의를 해 보고 병원에 같이 가 주면 안될까..."
이제 다섯 살인 조카와 초등생 조카를 가진 그녀라
겨울방학인 지금의 낮 시간이 한가할 리가 없겠지만 염치불구하고 부탁을 했다.
주렁주렁 둘 데리고 동행을 할텐데 추운 날씨에 미안하기도 했지만
설 전에 교통사고를 내어 연휴 끝나고서야 공업사에서 차를 찾아 온 직후이고
게다가 설 전후 내린 폭설로 도저히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동생은 흔쾌히 승락을 해 준다.
내친 김에 수술 비용도 좀 잘 깎아보라고 덧붙였다.
목소리가 아주 상냥스럽고 예쁜 그녀는 전화 상담에서도 아마 플러스요인이 될 터.
수술하는 날에도 나는 길눈이 어두운 지라 또 그녀와 함께 동행을 해야만 했다.
'어느 분이 저와 상담을 하셨나요? 목소리가 하도 예쁘셔서...'라며
나와 그녀를 번갈아 보는 의사의 얼굴이 무척이나 동안이다.
'나도 목소리 이쁜데...'라고 하고픈 걸 간신히 참았다.
그렇게도 원했던 수술이라선지 아들넘은 눈 한 번도 깜박거리지 않고 잘도 견뎌냈다.
'수술 중 환자가 워낙 협조를-눈 똑바로 크게 뜨고 있기-잘 해 줘서 수술이 잘 되었네요'
라며 담당 의사가 밝은 미소로 결과를 알려 준다.
병원 가는 길이 차가 좀 밀리는 바람에
도착 시간에서 부터 수술 시간까지 꽤 많은 시간이 지체 되어버렸다.
이미 제부도 퇴근하여 집에 와 있을 시각인데
저녁이 되어 어두워지자 괜히 동생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항상 내게 바쁜 일이 있으면 늘 내 대신 바쁘게 움직여 주는 그녀.
아주 어릴 적부터 그녀는 늘 나로 인해 많은 수고를 했었다.
여고시절 야자시간에 따뜻한 저녁밥 담은 도시락 배달 담당이었고
내게 연수나 세미나가 있으면 조카를 책임져야 하는 보모 역할,
화급한 경우엔 내 대신 인터넷을 뒤져 알아내줘야 하는 정보우먼 역할...
특별히 무슨 대가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생색을 내는 것도 없이
그저 묵묵히 어린 조카 들쳐 업고 나서 주는 그녀였다.
내일은 아침 아홉시 경에 병원에 나오라는 간호사의 설명을 듣고 또 난감해진다.
나는 아들녀석을 데리고 내려 갔다가 내일 오후에나 올라 올 계산이었는데
아침 그 시각이라면 내가 움직이기엔 무리가 될 터이니...
'우리 집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이서방에게 태워다 달라하면 되겠네'
시원스럽게 단순간에 고민거리를 털어내 줘 버리는 그녀.
동생네 가족들과 함께 저녁식사 로 외식을 하고
홀로 내려 오는 동안 내내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에 코끝이 시큰거렸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내 청이라면
싫어하는 기색조차없이 무조건 '예스'라고 답하는 그녀.
내 핏줄이니깐...내 형제간이니깐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누구나 다들 그러는 건 아니란 걸
주변 사람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들만으로도 충분히 알고 있는 터에
여러모로 나를 도와주는 내 아우가 언제나 너무나 고맙고 이쁠 뿐이다.
또한 이 하늘 아래에 그런 아우를 남겨 주신 친정부모님이 얼마나 고마운지...
거의 십 년 터울인 우리 아들놈들도
이 다음에 우리 자매처럼 그렇게 우애가 깊었으면 좋으련만,
서로 아픔을 나눠 갖고
슬픔을 서로 달래주며 격려해 주는 형제로 살아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낌없이 자신의 것을 나눠줄 수 있는 그런 형제가 되어야 할텐데...
나는 우리 자매의 두터운 정을 우리 아이들에게 꼭 가르쳐주고 싶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을
그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 가를 자식들에게 꼭 알려 주고 싶다.
2년 후 쯤엔 눈 나쁜 내 아우에게도 아들놈처럼 밝은 세상을 안겨 주고 싶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적금이라도 들어 두어야할까 보다.
사랑한다...내 하나 뿐인 여동생...승희야...
그리고
정말 고맙다...늘...그 말 뿐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