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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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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신부..


BY 산,나리 2004-01-27

그래도 코끝이 매콤하게 오는 요즘 날씨가 움직이는데는 싫지만

겨울답다는 생각에 낮지 싶다.

 

요 며칠전에는 한사람을 겁도 없이 따라 나서 삶의 터전을 바꿔 산지

벌써 20년을 채우는 날이었다...결혼 기념일이란 거 말이다.

 

몸이 안좋은탓에 누워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고 있는데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뭔가 안정을 취하지 못하고 방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방으로 왔다 갔다 하던 옆지기는 슬며시 현관 밖으로 나가더니만

한참후 이것 저것 무엇을 사들고 들어왔다.

 

사온 음식들을 식탁에 가득 차려 놓고는

" 엄마 아빠 결혼한지 20년 됐다...제주도나 갈려고 했는데 회사 사정상 시간을

못냈고...작은짜~식이 엄마 모피나 하나 사드리라 했는데...

니엄마가 아파서 못나간다 하고....?$%^#????...."

하면서 얼렁뚱땅 말로만 여행에다 모피 한벌을 생색내고는 의기양양해 하고 있는거였다.

난 어이없다는 웃음도 나고 사실 그 두가지 다에 몸이 아픈탓인지 애착이 없었다.

' 그래..하고 싶으면 내가 하지 뭐...꼭 받아야 맛인가...

나역시 준비한 선물도 이벤트도 없고...' 

 

강산이 두번 변한다는 이만큼의 세월을 같이 하다 보니 크게 섭할것도...

아쉬울것도 없다 싶었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없고.. 희석되어져 무덤덤 하지 않나..

이러면 안되지..하는 웃기는 걱정까지 하게 된다.

하여간 긴~세월...아득한 20년전...

 
1월의 그런 어느날.

난 시집을 갔었다.
그래서 난생 처음 깊숙한 산골 한적한 과수 마을에서 몇달을 살았었다.
 
신혼여행을 제주로 다녀오던 날
광주공항에 내리니 지금의 친정 부모님 두분이 마중을 나와 계셨다.
피곤에 졸리운 모습으로 내 생활의 변화가 왔는지 안왔는지도 실감하지 못하고

택시에 몸을 싣고서 편안한 맘으로 집에까지 왔었다.
 
도착한 집은 이미 왠만한 내짐은 다챙겨져 있었고
고모님.이모님,동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별 다른 특별한 생각없이 난 엄마와 동생들과 금방 다시 올것처럼 인사를 나누고

불러온 두대의 택시에 아버지,고모,이모,여동생이 나누어 타고 집을 떠났다..
 
어디를(?) 향해.....시내를 벋어나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낮설디 낮선
생소한 풍경들이 창밖에는 보이면서 묘한 기분이었다.
빨강빛이 도는 황토흙...비스듬한 언덕이 많은 그래서 길 양옆으로 과수원이

쭉 이어지는 그런~~곳 어디...


그때만해도 덜컹대는 신작로였고 차가 달리면 뒤꼬리는 먼지가 뿌~연 그런곳이었다.
달리는 차속에서 난 슬슬 겁이 났다.
정말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깊은 산골마을
솔직히 말해 무서분 생각도 들었다.
 
동네 입구쯤 오자 양옆 담벼락엔 대나무들이 펄럭이고....
난 한마디로 굳어져 갔다. 그리고 겁이 나기 시작했다.
 
양가 아버님이 만난 자리에서
"못해도 6개월 정도는 본가에서 데리고 있으십시요.
그래야 식구가 되지 그렇잖으면 항상 손님 같고 거리감이
있어....그렇지 않겠습니까....?"
지금의 친정 아버지께서 이렇게 간곡한 제의를 하셔서 나는 혼자 6개월의

연수를 해야 하는 연수원을 가는 겪이었죠.
낄낄 거리며 연수 잘보내라 했던 신랑도 못내 결국은 안타까워 했었다.
 
잔치 분위기에서 (내가  어릴적 구경했던 동네 언니 결혼식 그런 분위기)
시간은 흘러 해가 뉘엇 뉘엇 질 무렵......
친정 식구들과 작별의 시간이 되었다.
아버지,고모,이모,동생....!
난 엉엉 울고 말았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화장이 엉망이 되거나 말거나...

빨강 치마에 색동저고리를 입고서
색동 저고리 양팔에 눈물을 씩씩 닦으면서 펑펑 울었지
정말로 다시 따라 가고 싶었고....
이리 저리 둘러 봐도 너무나 으시시 했고 집 뒤 언덕에는 대나무들이

너울 거리고 있었고 한쪽 옆에는 넓은 텃밭에 각종 큰나무들...
화장실은 집 본채하고는 멀~리 떨어져 있었고  너른 마당 아랫쪽 집칸에는

소들이 음~메 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얼굴을 벌겋게(울음을 참으신 느낌이었지..) 하시고는
겁쟁이인 큰딸을 낮설은 마당에 남겨 두고 뒤도 안돌아 보시고 차에 올라

같이 온 식구들을 데리고 떠나 버리셨다.
 
그맘~~~~
님들 중에도 아는 분들이 있겠지요?
얼마나 울었던 난 지쳤다.
재미도 하나도 없고 .....자기네들끼리는 깔깔 거리고 웃고 난리고
신랑 발을 때린다고 사촌들이 난리법석이고 즐거워 했다.
난 삐졌고....정말 슬펐었다.
 
어느정도 시간이 흘러 친척들은 가고....
잠자리가 정해진 방에 색동 저고리를 그대로 입고서 쭈그리고 앉아
풀이 죽은 듯 있을수 밖에 없었다.


싱글싱글 얼마나 재미가 나는지 신랑이 들어 오더니만
"아까 너 왜 그리 울었냐?....내가 싫으냐?  앙?
속~~이 상해서시리.......??!?! "
난 풀이 더 죽었다. 그리고 더 슬펐다.
'이렇게 무섭고 으시시 한댄줄 누가 알았나.....?? 난 지금 후회 된단말야...'
 
.
내평생에 그날의 놀램은 잊지 못할 것이다.
고즈ㅡ넉하고 왠지 쾡~한 1월!!
난 이런 추억을 갖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