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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보내며


BY 흰구름 2003-12-16

 맑은 하늘이 오늘따라 무척이나 높고 푸르다.
가을이려니 하면서도 산에 한 번 오르지 못하고 제 몸 살라 고운 빛을 내는
단풍 하나 쓸어주지 못했는데 이제 가을도 서서히 시간 접기를 하려한다.

 

무엇이 그리 바빠 계절조차 잊은 채 내달리기만 했는지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을이 오면 온갖 과실과 열매가 익어 내마음까지도 풍요로워져 나는 가끔 과용을 하기도 한다. 포도 한 상자, 감 한 접, 밤 한 말씩 들여놓으면 내가 부자가 된 느낌에 고개 숙인 벼를 들여다보는 농부의 마음이 이럴까 싶다.

 

 이맘때 장에 나가 떫은감을 사다가 볕에 내어놓으면 차례차례 붉게 변하면서 맛있는 홍시가 된다.

말랑이는 홍시를 찾아내는 수고로움은 가족들의 입맛을
돋우는 청량제가 되기에 겨울 내내 나의 즐기는 일상이 된다.

 

알알이 박힌 포도송이채 흰 자루를 덮어쓴 포도를 김치 냉장고 야채 칸에
넣어두고 한 봉지씩 내어 겨울 간식거리를 한다.
요즈음이야 하우스가 있어 사계절 내 과일을 먹을 수 있다지만 그래도
제 철에 나는 과일 맛에 비길 수 있으랴.

밤 또한 한 알 한 알 닦아서 밤 한 켠 신문 한 켠 차례차례 집어 놓고
저장해 놓으면 겨울 내내 싱싱한 밤을 먹을 수 있다.

이렇게 풍성한 과일들로 겨울 채비를 마친 뒤라 더욱 가을이 끝자락에 왔나 싶다.

 

 계절의 순환을 인생이라 여기면 봄은 새로움에 대한 설렘과 희망이 있는 유아기이고 여름은 배움과 부대낌으로 행복이 있는 청년기,

가을은 삶의 여유를 가지고 뒤돌아보며 그동안 살면서 뿌린 열매를 거둬들이는 중년기이고  겨울은 하얀 눈처럼 세어버린 머리카락을 아쉬워하며 허무함을 느끼는 노년기가 아닐까.

내 인생도 이제는 가을로 접어든 삶이라 생각하니 새삼 올 가을은 아쉽기만 하다.
지나간 나날을 뒤돌아보고 반추하며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길섶에 늘어진 벚나무의 붉은 단풍 색깔처럼 정열적 이였을까.
가을 하늘처럼 파스텔색 은은한 고요함이었을까.

 

내가 나를 돌아다본다.
가을들판의 적막한 아름다움과 곡식이 다 떠난 서리 낀 들녘의 고요함이
내 중년에도 담겨져 있는가.
가을다운 서정을 가지고 지나온 세월을 품안고 다가오는 미래까지도
고요히 받아들일 넓은 가슴을 가졌는가

누군가 인생의 40대는 知의 중성화, 50대는 美의 중성화, 60대는 性의 중성화가 된다고 했다.

그냥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보면 많이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 미모가 뛰어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 남자냐 여자냐가 모두 별다른 차이가 없어져 두루뭉실해 진다는 말이 현실적으로다가 오는 것을 보면
내 중년도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가을에 다가올 겨울채비를 하는 것도
내 인생의 황혼기에 대한 준비일 것이다.
좀 더 정답게 달콤하게 평화롭게 여유롭게 겨울을 보내고자 하는 마음으로
노년기를 맞이하고픈 소망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제 인생의 가을인 중년의 나이, 두루뭉실해진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황혼기를 위해 노력하는 마음을 소중하게 여기리라.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한 이 지상의 삶에서 내가 누리고 있는
행복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앞으로의 삶에 조금이라도 기쁨을 남기고 가기 위해  이 가을에 겨울을 지내기 위한 채비를 하고 있는 마음을 흐믓하게 여기리라. .

 

베란다에 놓아둔 감들의 행렬에서 말간 홍시를 찾아내는 기쁨으로
입술에 미소가 번지는 가을의 끝자락은 행복하기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