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산화탄소 포집 공장 메머드 가동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82

그 해 첫눈 내리던날...


BY 미금호 2003-11-28

그해 첫눈이 휘날리던날(97년도)


둘째가 고등학교 일학년겨울 이었다
옆집 상희엄마가 시장갔다오는길에 할머니네 구멍가계앞에
꽤 괜찮은 책상이 버려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둘째가 책상이 없어서
언니책상을 자기것처럼 차지하고 앉으면  새벽 2-----3시까지
공부하느라 일어나지 않는통에  언니가(고2) 개다리 밥상을 다리에 끼고 앉아 쭈그리고 하던가 방바닥에 툴툴거리며
가끔 싸웠는데  잘 됬다 싶어서 둘째를 대리고 할머니 가계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책상도 깨끗하고 책꽂이도 멀쩡했다
알고 보니 바로 가계옆집의 딸들이 이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나니
어릴 때 쓰던 책상이 필요없어서 누가 쓸사람 있으면 가져가라고 내 놓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맙게 잘 쓰겠다며 둘째에게 책꽂이를 들리고
내가 책상다리를 하늘을 보게 하고 머리에 이고 오는데
첫눈이 함박꽃처럼 날리기 시작한다
알싸한 바람과 흩날리는 눈을 맞으며 집에 와서 마당에 내려놓고 걸레로 닦으니  정말 새 책상 같았다
그래서 의미를 부여하자면 첫 눈오는 날에 둘째의 책상을
돈 한푼도 들이지 않고 장만하는 행운을 잡았다
둘째는 "이젠 내 착상이 들어오니까 공부방 분위기가 팍팍나네...
아무도 내 책상 쓰지마~~`아..."그동안의 설움을 해명이라도 하듯이
 곱게 웃는다


사실 우리집은 6평 남짓한 좁은 집에 방이 세 개나 됨과 동시에
엄청나게 좁다
따라서 방 하나에 책상 두 개 들여놓으면 방의 반을 차지한다
그러니 책상 하나가 더 들어오니 완전 독서실 분위기다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한없이 미안한 일이다
남편의 부도로 아이들의 뒷바라지는커녕 세 아이들의 등록금도 제대로 낼 수 없는 형편에 책상을 다 사준다는 것은 아예 계산에도 없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우리 세 아이들은 착하고 밝게 커 주었고
학원 한번 안 다녀도 공부를 잘해 주었다


특히 둘째는 중학 3년내내 장학금을 타와서 동생의
등록금까지 해결해 주다시피  했다
물론 문제집 사는 것도 아깝다면서 둘짼 지 언니가 쓰던 문제집을
연필로 풀으라고 해서 1년뒤 그 문제집을 지우개를 수북히 쌓아놓고
며칠씩 손가락이 휘어지도록 지워서 다시 1년을 더 쓰곤 했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서 새벽 2-3시까지  다리가 저리도록
공부만 했다


그해 겨울에는 기름도 넣지 못한 냉방에서
이엄마의 버선을 신고 담요를 다리에 두르고 앉아서 간식도 없이
늦도록 공부하다가 배고프면 보리차에 식은 밥 한덩이 말아서
후루룩 마셔가며 허기를 달래기도 했다
과일 한쪽도 못먹이는 이 엄마가 낮엔 일하고 피곤하다고 안 깨우면서 말이다  그저 이에미의 가슴은 찢어질 듯이 아팠다


남편은 남편대로 바깥일이 안되니까 가끔 술을 마시고
집에 와서는 "여보 미안해.. 얘들아 미안하다..우리집에서
다들 열심히 사는데 나만 문제구나  미안하다....."
그러면서 둘째에게 "너무 늦게 공부하면 몸버린다 그만 하고 자거라."  그러면 둘째는 맨 구석방 장롱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아빠에게 들킬 까봐 조그만 스텐드 켜놓고 공부를 하곤 했다
오죽했으면 이웃아줌마들이 집에 놀러오면
"얘 얼굴 좀 보자 어쩌면 뒤통수만 보이냐??!!"
할 정도였다


그렇게 잠과 모든 유혹을 뿌리치며 공부한 결과
고등학교 들어 갈 때는 수석으로 입학을 했고
졸업은 차석으로 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장학금10만원을 갖다주며
이 돈으로 아빠 옷 사드리라며 봉투를 내민다
그 돈을 어떻게 받을 수가 있단 말인가,...하지만 그 돈을 받아들고
너무 속상하고 미안해서 하늘을 보며 눈물을 삼켜야 했다


사실 남편과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깨가 휘도록 일만 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사람의 일이란 항상 빗나갔다
따라서 우리부부는 요행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노력한 만큼만 살수 있다면 하는 바램뿐이다
그리고 나쁜 마음을 먹을래도  우리 세아이들의 너무나 영롱한
눈빛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노력하며 살 것이다
어차피 껍데기만 남았는데 무엇이 아까우랴......
어째 오늘도 찌뿌둥한 하늘에서 흰 눈이라도 뿌릴 듯이
스산한 바람이 뻥 뚤린 내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1997년 초겨울의 어느 날 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