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새로 오셨습니다.
정 들면 가시고, 정들면 가시고, 물론 단지 안에서 이동 하는 거니까 오다 가다 만날 수는 있지만 그래도 들락 날락 하며 수 인사 나누는 정이 보통 정이 아닌데 한 아파트에 오래 살다 보니 그렇게 반갑게 만나고 서운하게 헤어지는 경비 아저씨가 꽤 많아졌습니다.
나가 면서 웃고, 들어 오면서 웃고, 하루에 몇 번이거나, 며칠에 한 번이거나, 얼굴만 마주 치면 반가이 인사 나누고, 과일 봉지 들고 오면서 한 알 내어 드리고, 과자 봉지 사 오면서 한 주먹 넣어 드리고, 시원 한 음료수 뜨거운 음료수 사 들고 다닐 때마다 한 캔이라도...그렇게 건네 드리며 훈훈하게 지내는 것은 어차피 연세가 높으신 양반들이라 자칫 어른 몰라 보는 버릇 없는 애들에겐 그나마 어른 공경의 기본 예절이라도 일러 주기에 맞춤이기도 한 일입니다.
오시는 분마다 한 울타리 가족인 듯 그렇게 지내다 보면 얼굴 붉힐 일은 없고 정이 들어 헤어짐이 오히려 섭섭한 거지요.
그런데 이번에 새로 오신 경비 어른은 오시는 날부터 불만이 많으십니다.
열쇠를 맡겨도 정신 사납다고 불만, 차를 빼 달라 해도 왠 핸들이 이리 무거우냐고 불만, 낙엽을 쓸면서도 힘들다고 불만, 쓰레기 치우면서도 먼저 근무 하던 동 보다 훨씬 일이 많다고 불만...이렇게 사사건건 불만이 많으니 얼굴에 웃음기 있을 리 만무합니다.
처음 며칠은 웃으며 받아 드렸는데 이젠 내 얼굴에서도 그 양반 향한 웃음은 띄어 지질 않습니다.
장바구니 냉랭하게 흔들며 올라오는데 미안한 맘도 안 들더군요.
이렇게 금방 손이 조막손이 되고 속이 오그라지는 걸 보니 덜 익기는 그 양반이나 나나 피차 일반인 거 같고, 그렇다면 세상을 살만큼 산 그 어른이나 나나 아직 터득 못 한 게 뭘까 이 밤에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옛날 어느 가난한 사람이 살았는데 이 사람 생각하기를 남들은 가진 것이 많아서 이웃에게 베풀며 인심 얻으니 그것이 부럽기도 하거니와 베풀며 살 수 있어 복을 받는다 생각 하고,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 베풀고 싶어도 베풀지를 못하니 복을 받을래야 받을 길이 없겠구나 하며 늘 한탄을 했더랍니다.
그래 어느 날 한 선지식에게 물었지요. 내가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 무엇으로 복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그랬더니 그 선지식 말씀 하기를 남에게 웃어 보이는 얼굴 보다 더 좋은 복전은 없다 하셨답니다.
남에게 보이는 밝은 미소, 환한 표정 하나가 얼마나 큰 공덕이 되는가를 이르는 교훈이라 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웃고 칭찬 하는 일에 돈 들고 힘 드는 일도 아니 건만, 그 쉬운 일이나마 습관이 되어 있지 않으면 번번이 어려운 일인 듯 익숙하지 못합니다.
우리 나라 모 기업에서는 계열 회사 직원들에게 이르기를 자기 책상 앞에 거울 하나씩 갖다 놓으라 했답니다.
물론 일은 제쳐 두고 거울만 보며 멋 내란 뜻은 아니고, 수시로 거울 보며 환하게 웃어 보라는 주문이라 들었습니다.
나도 살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나를 향해 생글생글 웃어 주는 사람이지 인상 쓰며 찡그린 사람은 아니더란 말이지요.
빈 말인 줄 알면서도 나를 띄워 주고 칭찬해 주는 사람과 가까워 지고 싶지 나오는 말마다 꼬인 사람과는 사귀기 싫더라는 겁니다.
상대가 나를 향해 한 번 환하게 웃어 줄 때 그 순간 만큼은 천하에 없는 근심도 사라지고 나아가 더없는 행복도 느끼게 됩니다.
웃어 주는 사람도 웃음을 받는 사람도 한 순간 그렇게 행복해 질 수 있는데 그거 어려워 그 행복 포기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바보겠지요.
내가 요 며칠 우리 아파트에 새로 오신 경비 어른을 보면서 이렇게 단순 명료한 진리를 새삼 맘에 각인 시킬 기회를 맞았으니 그 분 역시 내게는 한 스승의 몫을 하신 셈입니다.
게다가 어차피 주어진 일이고 맡은 일인데 웃으며 하신다면 본인도 훨씬 힘이 덜 들려만 싫고 귀찮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그 머리와 맘은 얼마나 복잡하고 무거울까 하는 생각에 미치니, 돌이켜 나 또한 주어진 내 몫의 일을 하면서 이와 같은 맘이 전혀 없지는 않았음을 그도 또한 반성할 부분이 됩니다.
그러더군요,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 행복한 거라구. 맞는 말 같습니다.
뉴스에 보니 외국에서는 웃음 요법이라는 것이 있다지요. 첨엔 나이든 분들이 주로 참여 했는데 요즘은 나이에 상관없이 이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많아 졌다 들었습니다. 웃음이 만병 통치라네요.
우리 속담에는 소문만복래라 했고, 一怒一老 一笑一少라 했으니 결국 웃음 하나 잘 웃으면 몸도 건강, 맘도 건강, 복도 절로 듬뿍 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평소 느끼기에 우리 나라 사람들이 흥은 참 많은데 웃음이 적은 듯 싶어요.
이리 된 이유야 어쨌거나 나부터도 잘 안 되는 이 부드러운 미소, 환한 웃음, 목젖까지 보이는 박장대소 이거 몸에 밸 때까지 오늘부터라도 부단히 연습해 볼 생각입니다.
그야말로 나 좋고 너 좋고 우리모두 좋은 일 그러면서 아무 지불도 대가도 필요 없는 일 이 보다 더 좋은 일 있을까 싶지 않아요.
오늘은 나도 덩달아 샐쭉해서 아저씨 얼굴 외면 했으나 다시 맘 이렇게 고쳐 먹었으니 낼부터는 더 환한 웃음으로 그 투덜이 아저씨를 녹여 봐야겠습니다.
그러니 그 아저씨 떠나는 날 까지 이걸 내 과제로 삼아 보면 잃어 버린 그 어른의 웃음을 되찾아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내가 생각 하고도 내가 우습습니다.
자, 오늘도 내일도 많이 웃으렵니다. 함께 웃어 보시지 않겠는지요.
우리들 한 바탕 웃음에 아마도 모든 불행의 기운은 혼비백산하여 삼십육계 줄행랑 칠 것이라 봅니다.
계미년 한해가 아직은 한 달 남짓 남았습니다.
이제 겨우가 아니고, 아직 이만큼이나 라고 생각 하니 갑자기 하고 싶은 일이 희망으로 다가 옵니다.
그래서 또 한 번 웃을 여유가 생겨 납니다.
오늘은 이렇게 생각을 마무리 하려 합니다.
가고 오는 세월을 웃음으로 보내고 웃음으로 맞이하는 아량은 삶에 대한 보답이요 예의라고 말입니다.
가다 오다 눈길 스치는 사람에게 환한 미소 한 번 짓는 일이야 말로 나 복 받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여기 함박 웃음 한 바닥 흘려 놓고 갑니다.
모두 모두 행복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