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는 쥔 아줌마가 오시더니
뒷산 자락의 밭에 심어 논 알타리 와 무를 뽑으시며
걷 대가 싱싱하고 부드러우니 갖다가
시래기로 말리라고 해서 두 말 않고 핸들카를 끌고 나섰다
(참고로 난 농사를 안 지음)
동네 길을 돌아서 한참을 가서 밭에 도착
아줌마는 벌써 무청을 가지런히 골라서 밭 고랑이에 수북히 쌓아 놓으셨다
그런데 세상에 산밑에서 자란 무가 얼마나 잘 됬는지
새파란 잎과 통통한 줄기가 조금만 세게 잡아도 똑똑 부러진다
하나라도 흘릴세라 가득 싣고 와서 마당에 풀어놓고
속대는 김치 담그려고 빼고 걷대는 시래기로 엮기로 했다
그래서 요 앞 길 건너 논에서 가져온 볏짚을 새끼 꼬기의 분량으로 집어서
세 갈래로 묵은 후 무청을 한 움큼씩 놓고 볏짚 가닥을 앞으로 당기고
손에 쥔 두 가닥을 뒤로 젖혀 당기고
또 무청을 놓고 당기고 뒤로 젖히고 ....
그렇게 길다랗게 세 줄이나 만들어 통풍 잘되는 처마 밑에 달아 놓으니
얼마나 뿌듯한지....
이것을 본 옆집 할머니께서 "아니 젊은 사람이 잘도 엮네!! 언제 배웠나...엉??"
하시 길래 "할머니 저는요 새끼도 꼴 줄 알아요,, 어릴 때 할아버지 하시는 것
보고 어깨 너머로 익혔지요" 난 무슨 대단한 칭찬이라도 들은 아이처럼
어깨를 으쓱거리며 시래기를 자랑스럽게 어루만졌다
이젠 겨울 눈오고 추울 때 몇 가닥씩 빼내어 삶아서 된장 시라국을 끓이고
된장에 버무려 멸치 넣고 지져도 먹고 새우젓으로 볶아도 먹고
그러다 보면 정월 대 보름날 나물까지 걱정 끝이다
그것은 몸에도 좋은 무청의 부드럽고 담백한 맛을 어디에다 비하랴...
이 좋은 것을 이 가을 이 아니면 맛 볼 수도 없는 겨울동안의
또 다른 양식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남은 속대는 절여서 밀가루 풀을 쑤어서 자박자박하게
김치를 담 갔 더니 사흘이 지나자 그 특유의 젖산의 맛이
얼마나 맛있는지 ....긴 무청을 손가락으로 집어서
김 솔솔 나는 밥 위에 척척 걸쳐서 먹으면 정말 둘이 먹다가
셋이 없어져도 모를 지경이다
그러면 커다란 소래기 대접에 가득 퍼서 쥔집으로 배달
영감마님 맛있게 드시라면 아줌마께선 그저 웃으시며
고맙다며 좋아하시면서 "이젠 나도 늙어서 손맛이 안나..정말 맛들었네..."
이 또한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랴
끝으로 우리 집의 가을 식단의 특별 메뉴
통통한 무청을 푹 삶아서 긴 상태로 된장에(약간의)버무려서 밑에 깔고
그 위에 생 고등어토막을 올리고 간장에 청양 고추와 갖은 양념을 해서
뿌려얹어서 바글바글 끓이다가 중 불로 서서히 졸이면
근사한 무청 고등어 조림이 된다
그러면 먹성 좋은 우리 식구들 무청을 서로 먹겠다고
수저 부딫치면서 싸우다 보면 어느새 냄비엔 고등어만 남는다
오늘 저녁엔 무청 고등어 조림을 해서 식구들을 빨리 불러 들여볼까
생각하니 행복한 미소가 저절로 나온다
이렇게 해마다 초겨울 김장철이 오면 연례행사로
엄청스레 바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