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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75

수능..


BY 초록정원 2003-11-04

 

 

정말 긴 하루였다.

오후 6시10분 시험이 끝나자마자부터 계속 통화시도..
도대체 누가 먼저 선수를 친 건지 녀석의 전화기는 계속 통화중이다.
011e스테이션을 열고 들어가 문자로 격려의 말을 넣어주고서야
어렵사리 통화가 되었는데..
친구들과 함께 있다며 영어과목을 망쳤다며 예상점수가 얼마인지도 말 안해주고는 황급히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녀석은 8시가 넘어도 돌아오지않고,
혹시나 시험을 망쳐 어딘가를 방황하고있는지 걱정되어
전화를 걸어보니 깸방이라고 했다.
종일 마음 졸이며 서성인 어른들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해방감에 우르르 겨우 몰려간 곳이 그곳인가..서운한 마음까지.

9시 넘어서야 아침에 말한대로 친구들 네명까지 거느리고 집에 돌아왔다.
인터넷검색으로 정답체점을 하기위해서 깸방에 몰려간 거였다고했다.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해주지.. 짜슥.. ㅡ.ㅡ

평소 자신있던 언어영역도 시간이 모자랐고,
영어듣기평가에서 천장에 달린 스피커가 웡웡 울려서 무슨 소리인지 도대체 잡아낼 수가 없었다고..
시험장을 잘못 배정받았다며 투덜거리지만 이미 강 건너간 현실..

평소의 모의고사 성적보다도 덜나온 점수앞에 좀 당황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한 녀석의 등을 두드려줄 수밖에.
수험 당사자인 녀석 또한 시험이 끝났다는 안도감만으로도 오히려 후련한지
그렇게 괴로운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잠든 오늘 첫새벽에 깨어나 신문을 가지고 들어왔다.
다른 건 몰라도 매년 언어영역은 대강 훑어보는데..
어렵긴 어려운 듯도..
변변한 시집 한권 가까이 한 적이 없는 녀석에게
기형도의 엄마생각이 지문으로 나왔다.

기형도 시인의 독특한 시세계와 참담한 의식과는 상관없이
그저 변형의 도구로 멋지게(?) 사용되었다.
도대체 시가 무엇이란 말인가.
경험과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영혼에서 우러나는 말이 아닌 문자의 조립이란 말인가.

아침에 녀석에게 물어보았다.
열무 삼십단이고 시장에 간 우리엄마.. 라는 시
누가 쓴 건지 알아??
당연히 모른다고 하며 씩 웃는다.

하긴..
누가 쓴 시인지.. 그시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않다.
그저 요점파악에만 능하면 된다.
그리고 녀석은 그 지문이 나온 15번 문제를 잘도 알아맞췄다.

참담하다.
내가 오늘아침에 느끼는 참담함은 이런 것이다.
녀석의 수능점수가 생각보다 훨씬 벼랑에 쳐박힌 것이 이유가 아니다.
내 귀한 아들의 두뇌가 지금
플라스틱이나 금속으로된 컴퓨터의 하드처럼
인간의 교감이나 정서, 사람의 미미한 표정이나 눈물이 배제된채로
마치 컴퓨터 오락프로그램같은
예스와 노만 입력되어있는 것 같다는 섬뜩한 느낌을 받는 까닭이다.

가장 아름다운 미소년의 시절에
엄마가 권해주는 전천후 향기가 뿜어져나오는 백미의 책들을
수능유형에 맞지않는다는 이유로 팽게쳐야만 하는 현실.
그리고도 내 아들은,
변변한 시집 한권 읽지 않고도
잘도 이리저리 시의 용도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 참담하지 않으리..

그나마 이 참담한 아침에 작은 위안이 있다면
내 아들이 그 우라질놈의 수학을 지지리도 못해서
인문계, 즉 사람에 대한 학문계열을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밥이 해결 된 다음에는 사람과 사람의 소통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진데,
절반을 넘나들던 우리네 시절의 엥겔지수는 현저히 줄었건만
왜 아직까지도 우린 이런 것들에 쫓겨 우리 아이들을 궁지로 내모는가.

오늘의 우리2세들에게 안겨진 아픈 현실이
엄마인 내게 참담한 악몽일 뿐이다.
이런류의 지속된 반복으로도 우리의 미래가 밝을 것인지.

 

 

炅喜.

 

 

**

 

 

제작년 이맘때.. 큰 녀석(산소학번)의 수능이 끝나고나서 끌적거렸던 글입니다..

맞아요.. 정말 긴 하루였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하루가 긴  날은 없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심정으로 숨도 크게 못쉬고 그 하루를 보냈었습니다.

오늘 저녁.. 작은 녀석의 친구엄마들과 친한 몇 집에

우황청심환을 사서 돌려주고 왔습니다. 

우리 작은 녀석도 물론 고 3이지만

공고생이라 수능 안보고도 이미 전문대 합격증을 받아다 놓은 상태라서

전 다행이 천하태평 여유만만 이거든요..

하지만 내일 수능 보는 수험생을 가진 가족들이 오늘저녁에 모두들 어떤 기분인지는

이미 겪어봐서 알기 때문에 마음의 위로를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잘 찍으라고 포크.. 잘 풀으라고 휴지.. 대학가세 가위.. ^^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수북이 전해져오는 따뜻한 마음의 위로와 그로인한 웃음이

확실히 시험보는데 도움이 되더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별별 상술이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지만..

수험생의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고 사람들의 관심속에 산다는 믿음을 심어 주는 일..

숨가쁘게 돌아가는 우리의 입시경쟁 속에 그나마 존재하는

아름다운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쁠 수록 돌아가라고..

수능 수험생을 두신 아컴님들.. 오늘밤 느긋한 마음으로 일찍 주무시고

내일아침 사랑으로 수험생 등 토닥여주셔요.. 

그저 우리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건

사랑과 믿음과 격려 뿐이니까요..

 

노래 불러 주셔요..

많이 힘들고 외로었지.. 그건 연습일 뿐야아아~~~

넘어지진 않을 거야.. 나는 문제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