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렁거리는 계절입니다.
바람이 시도때도 없이 헐렁거려
나뭇잎도 덩달아 헐렁거리며 떨어집니다.
매장앞에 플라타너스 나무 한그루가 살고 있습니다.
작년 겨울부터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고 나를 내려다 보길래
나도 틈만나면 발가벗은 플라타너스 다리를
힐끔헬끔 쳐다보며 무료한 하루를 보내곤 했드랬습니다.
그러더니 봄이라는 것이 은근슬쩍 플라타너스 나무에 달라붙더니
여름엔 사랑의 절정에 다다르기도 했드랬는데......
10월 하고도 중순이 지나서는 사랑이라는 것이 원래 후끈달아 올랐다 바짝 말아버리는 경우가 있듯이
우째그리 헐렁거리며 나뭇잎이 떨어지는지......
오늘은 아예 끝내기로 작정을 했나봅니다.
바람이 사정없이 불더니 그 넓쩍하고 색깔도 지져분하고 우중충하고 유치하고......
여하튼 그런 플라타너스 잎이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다 망쳐 찢어버린 도화지처럼 매장앞에 떨어져
바람에 쓸리고 인간들의 바쁜 발에 밟혀 쓰레기가 되어가고 있었드랬는데......
움직이기 싫어하는 게으른 나를 일으켜 세우더라 이말입니다.
나무 밑둥에 서서 위를 바라보며
끝내려면 오늘 안으로 끝내셔~~~
한꺼번에 쓸어버리게 말이여~~~
여름엔 그늘이 좋다했더랬어요.
그보다도 전엔 새싹이 연두색인 것이 귀여운 것이 앙증맞은 것이 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드랬는데요.
변덕스런 내 마음 나도 몰라요.
안녕하세요.
제 고향은 강원도 두메 산골이구요.
나이는 흔히 말하는 중년이구요.
하는일은 장사를 하구요.
취미는 글보기 들꽃보기 글쓰기구요.
제가 여기 이 방에 온 건 제 스스로 글 쓰는 방에 들어와 살고 싶어서랍니다.
또 하나는 시련당한 상처를 고자질하기 위해 뻔스럽게 온거기도 하구요.
전세집도 아니고 월셋방도 아닌 공짜라서 들어 와 살게된 이유도 크답니다.
한 발 디뎌보니 누가 뭐라지 않고 엉덩이 디밀고 앉으니 따뜻하고
그래서 낡은 책상 하나 갔다 놓고,물 한 컵 떠 놓고,
과일이나 과자를 먹으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이 방에 온 느낌은 같은 시절을 겪고 있는 아줌마라서 만만했구요.
다시 말해 편했다는 게 더 맞겠네요.
글들도 정말 잘 쓰시구요.
제가 주눅들어 헐렁거려 떨어지는 나뭇잎만큼 걱정이 되었드랬어요.
헐렁거리는 바람 앞에서면 단단히 눌러버렸던 방랑끼가 자꾸자꾸 삐질삐질 빠져나옵니다.
하아나 두우울 세에엣~~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
추억 하나, 추억 둘, 추억 셋...만들어야하는데 한답니다.
어떤님 말씀처럼 글이 쓰고 싶어 그냥 쓴답니다.
안 쓰면 허전하고, 안 쓰면 사는 재미가 없어 글을 쓰는겁니다.
혹? 시인이냐고 묻더군요.
아니라 했습니다.
제가 되물었습니다.
시인인 것 같다고
아니라고 대답을 하더군요.
맞아요,전 시인도 더더군다나 작가도 아닙니다.
운전으로 따지자면 왕초보에서 겨우 벗어난 초보입니다.
또 제가 정말 좋아하는 건 들꽃이랍니다.
여름내내 강아지풀을 잘 길렀고,
봄엔 별꽃을 길려 밤이면 꺼내보고,
이 가을엔 귀여운 괭이밥(풀이름)에게 차 끓여먹는 주전자에 물을 받아 매일 부어줍니다.
단풍이 제일 예쁠때는 완전히 물이 들었을 때가 아니고
반은 물이들고 반의 반은 물이 슬쩍 들고 또 남은 반은 빛이 막 바래가고 있는 초록잎이 보일 때가
제 눈으로 봐선 제일 예쁘다고 생각합니다.
장사하려고 버스타러 가는 길 공원에 그런 나무가 한그루 있습니다.
그 나무를 십미터 쯤에서 보기 시작해 그 앞에선 잠시 멈춰섰다가
뒤돌아 한번 더 보고 부리나케 달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갑니다.
바람은 초겨울처럼 차지만 눈시린 가을 아침입니다.
오늘도 가을의 하루를 잘 엮어내려고 합니다.
들꽃을 엄청 좋아하는 헐렁거리는 아줌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