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녀석네 학교가 축제를 치렀다.
녀석은 올해도 롹벤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했다.
고3이면서도 대부분의 고3짜리들이 지옥을 넘나드는
수능걱정을 않고 롹벤드 연습을 할 수 있었던 건
실업계이기 때문에 이미 수능없이 대학진로가 결정된 때문이다.
덕분에 녀석.. 라면 끓여먹는다고 냄비를 가져가질 않나..
일회용 커피다 찻잔이다.. 열심히 나르더니
한동안 수업까지도 안들어가며 연습에 몰두한 모양이다.
나도 어머니회 일원이라 바자회에서 팔 김밥 500줄을 쌀
시금치와 당근을 전날 밤 늦게까지 준비해 가야 했다.
밤 늦게까지 귀에 헤드폰을 끼고는 따각따각 당근을 써는데
단단한 당근 5킬로그램이 장난이 아니다.
나중엔 손바닥에 물집이 잡힐 것처럼 아파왔다.
그래도 이게 마지막인데.. 올 지나면 이젠
아이들 다 자랐으니 학교에 들락거릴 일 없겠지.. 싶어서 기쁘게 했다.
아침 9시30분까지 콩튀게 바쁘게 서둘러 학교 도착..
도착하자마자 열심히 김밥을 말았다.
떡볶이랑 오뎅은 1학년.. 커피랑 부친게는 2학년..
3학년은 김밥과 순대를 매년 하는 것처럼 맡았는데
엄마들끼리의 유대관계가 좋아서인지 우리 학년은
매년 할 때마다 다른 학년에 비해 매상 실적이 좋다.
아침을 먹지않고 온 아이들이 많은지 한줄에 천원씩 하는 김밥이
엄마들 여럿이서 쉬지도 않고 싸기 무섭게 팔려나갔다.
난 돈 받고 거슬러주고 기타 이것저것 신경쓰고싶지 않아
그냥 한자리잡고 김밥만 열심히 말았다.
덕분에 일하다보니 매일 듣는 음악방송이 이미 시작한 시간이길래
후다닥 이어폰까지 귀에 꼽고서.
자모회장님이 소녀같은 영각이 엄마.. 귀에 그게 뭐예요..
하며 웃으셨다.. ^^
어쩌다보니 약속들이나 한 듯,
오나가나 소녀같다는 말들을 내게 한다.
삑싸리가 한번 나는 통에 애들 환호성으로 겨우 인기상만 먹은(^^)
엄마들 노래자랑이 끝나고 내려오자 교감선생님도 그러신다.
소녀처럼 부르시는 노래 잘 들었습니다.. ^^
교장선생님 오셨길래 공손하게 안녕하세요.. 하며 허리굽히고 인사 드렸더니
옆에 있던 엄마들이 또 놀린다.
영각이 엄마 인사할 때 얼굴 빨개지는 것 좀 봐..
조금만 맘 아픈 이야기하면 금새 눈물 글썽거리고.. 정말 여고생이라니깐..
에휴.. 머리를 짜갈짜갈 볶으면 여늬 아짐마들이랑 똑같다고 할랑가..
이젠 어쩔 수 없이 화장이나 패션으로 카바를 해도 나이 다 드러나보일텐데..
마흔네살 아짐마한테 소녀같다는 말..
징그럽다는 소린지 덜 떨어져보인다는 소린지.. 당췌 햇깔리..ㅋㅋ..
저만큼 보이는 무대위에선 오후가 되면서부터 조명에다 음향에다
부쩍 몸놀림들이 빨라진다.
그 중에 뒤섞여 이리저리 바쁜 작은녀석도 참 보기좋은 모습이다.
본격적인 공연 시그널을 장식하는 롹벤드 공연을 위해
완벽한 세팅과 악기음이 먼저 준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딴따라 공연들.. 놀기 좋아하는 베짱이들이 하는 건 줄 알았더니
개인기도 개인기지만 완벽한 협동심과 솔선수범 없으면 안되는 거다.
녀석은 시그널이었던 자기네 공연이 다 끝난 다음에도
파이널 공연을 하는 다른 롹벤드그룹이 다 끝나고 무대가 완전 철수될 때까지
종횡무진으로 설치고(?) 돌아다니며 그 크~은 몸을 아끼지 않았다.
녀석.. 저만큼 잘 자랐구나.. 싶어서 마음이 얼마나 뿌듯하던지.
녀석은 내가 지 연주하는 모습만 멋지다고 생각하는 줄 알겠지만.
선생님 몇분이 오셔서 순대를 팔아주시는 중인데
녀석이 마침 들렀었다.
그 중 한 선생님을 보더니..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고는
선생님 저희 어머니세요..
이미 선생님과 녀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는데
서로 소개를 시켜준다.
엄마.. 제가 늘 말씀 드리던 선생님이세요.. 제가 제일 존경하는
우리학교 최고 선생님..
억양 하나하나에 흡사 북한주민들이 김정일을 말할 때처럼 감동이 묻어있다. 쿠쿠..
녀석이 한날 좋아라 하며 떠들었었다.
엄마.. 어제는 내가 제일 존경하는 선생님이 우리 연습방카엘 다 오셨었어요..
그래서 커피 한잔 타드렸더니 무척 흐뭇해하시는데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그 선생님은 화를 거의 안내시고
아이들에게 늘 깍듯한 신뢰로 인격적인 대우를 해주시는 분이라고 말했었다.
내가 존경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미지도 그러한데..
짜식.. 사람 보는 눈은 있어서.. ^^
기뻤다.
녀석이 제일 존경한다고 말할 수 있는 선생님을 가졌다는 것이.
집에서보다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더 많은데
닮아가고픈 존경하는 선생님이 계시지 않은 학교라면
학교생활과 배움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이야기일테니 말이다.
하늘 푸른 결실의 계절이다.
무엇무엇해도 자식농사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물론, 그저 엄마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건
퍼줘도 퍼줘도 아깝지 않은 고슴도치 사랑 뿐이겠지만.. ^^*
炅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