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그가 오랜 칩거에서 벗어나 외출하더니 밤이 깊었는데도 돌아오지 않는다.
모처럼 집을 비우는 것이 반가웠으나, 막상 책을 읽으려 해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TV프로도 재미가 없다.
그는 지난 봄, 개인적으로 파산선고를 한 셈이다. 오랫동안 적자만 내던 사업체를 정리하면서 얼마간의 부채를 안아야 했다. 그런 연후에 일거리를 찾아보았으나 마땅한 일터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넌지시 그에게 청소부를 해 보라고 했다. 나는 이미 그 일을 해 본 터라 그 나름의 보람이나 미덕을 알고 있었다. 지금 그의 정서에 충분한 정화의 시간이 되어 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월60만원밖에 되지 않는 보수가 그를 망설이게 했다. 그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져 버릴 수 없는지 몸은 좀 고달프더라도 더 나은 돈벌이를 찾아보고자 했다. 구직신문인 가로수 한 귀퉁이에서 가락시장 야채가게의 종업원을 구한다는 기사를 찾아냈다.
나이가 너무 많아서 곤란하다는 주인에게 통사정을 하여 그 곳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오후 5시에 출근하여 밤새 무거운 짐을 나르고 이튿날 오전 10시가 되어서야 퇴근을 하는 고된 일자리였다.
나는 또 아침에 출근하여 저녁에 퇴근을 하다보니 한 집에 산다해도 우리는 만날 수가 없었다. 다만 그가 벗어놓은 옷가지이나, 설거지통에 담겨진 빈 그릇들을 통해 그를 느낄 뿐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그가 아침 일찍 들어왔다. 그 곳에서 일하기를 그만 두었다고 했다. 손발이 짓무르고 터져 피가 밴 곳도 있고 몸무게가 무려 12㎏이 줄었다. 얼굴은 긴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처럼 지치고 검푸른 빛깔을 띄었다. 18ℓ짜리 생수통을 들다가 떨어뜨릴 정도로 기력이 쇠약해져 있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연자실하였다. 우리는 서로 눈치만 보면서 집안에는 냉기가 돌았다.
그리고 얼마 후 외출을 한 그가 건삼을 홍삼으로 만들어 중탕으로 달이는 기계를 들고 왔다. 그의 후배 한 사람이 옛날 왕들이 홍삼액을 복용할 때 황토 가마에 약한 불로 중탕을 해 달여 먹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도자기로 그 기계를 만들어서 특허까지 냈다고 한다. 후배가 그에게 기계를 팔아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날 밤 그의 말에 고무되어 새로운 희망으로 잠이 오질 않았다. 우선 나의 지인들 중에 기계를 살 만한 사람들을 손꼽아 보았다. 기계에 효용성을 안 사람들이 또 소개를 하여 꼬리에 꼬리를 문다면, 금방 빚을 갚을 것 같았다. 그러나 세상은 생각보다 냉정했다. 여기저기 전화를 했지만 그걸 사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겨우 내가 일하는 가게 옆의 커튼집 주인으로부터 먹어보고 살 테니 우선 삼 한 채를 달여 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그녀는 성품이 무척 친절하고 자상하여 내가 새 직장에 적응하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나는 거의 실비에 가까운 돈만 받고 그것을 달여 주었다.
그러면서 점차 우리는 차라리 홍삼액을 만들어 팔아 보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는 집안에 기계 몇 대를 들여놓고 홍삼을 달이며 밤낮 기도를 한다. 집안 청소며 설거지도 도와주고 가끔씩 밥도 지어 놓는다. 그렇게 그가 모든 지인들과 연락을 끊고 집안에 칩거를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났다.
그런데 오늘 문득 그가 외출을 한 것이다. 자정이 가까워 오자, 그의 빈자리가 허전해 지면서 마중이라도 나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잠이 들지 않은 작은아이를 데리고 큰길가로 나갔다.
거리는 한산하고 상가의 문은 닫혀 있다.
내가 길가 음식점의 현관 대리석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자 아이도 곁에 기대어 앉는다. 그리고 거리를 지켜본다. 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청량하다. 술에 취한 남자가 아이를 안은 여자와 말다툼을 하다가 도로 한 가운데로 뛰어든다. 아이를 안은 여인은 택시를 타고 사라져 버린다. 전봇대 옆에 중년 여인이 허리를 굽히고 토악질을 하다가 주저앉는다. 남자 둘이 여인을 일으켜 세우려 안간힘을 쓰고 여인은 발버둥을 치며 울부짖는다. 골목길 어귀에는 10대 소년소녀들이 낄낄거리며 담배를 피우다가 바닥에 던지고 발로 비빈다. 한 노인이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나타나 길 저쪽을 고개를 빼고 바라본다. 모든 풍경이 낯설다. 100m도 안 되는 집 근처의 풍경이 이렇게 낯설다는 사실 또한 생소하다. 다시는 집밖으로 나갈 것 같지 않던 그의 돌연한 외출과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사연도 짐작하기 어렵다.
한 때 나는 여행을 즐겨했었다. 떠나고 또 떠나고 그저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한 집안의 주부가 되어 발목이 묶이면서 간간이 나는 열병처럼 그런 여행을 동경해 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딘 가로 혼자 떠나고 싶어 안달을 했다.
그런데 오늘 문득 나는 이 길 위에서 내가 지금도 여행 중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청량한 바람 속에 낯선 풍경들. 그 사람의 심리를 다 알 것 같고 이해하고 있는 듯 하다가도 문득 낯설어지는 순간이 있다. 하기야 우리에게 아무리 익숙한 것들이라 해도 모든 것은 일회적일진대 어제의 그 바람이거나, 어제의 그 하늘일 수 없으며, 어제의 그 사람이거나 어제의 그 마음일 수 없으니 우리는 끝없이 미지의 세계로 떠나가고 있는 중이 아닌가.
우리 모두가 그저 여행자인 것이다. 여행자는 머무르지 않는다. 안락과 풍요를 꿈꾸지도 않는다. 너와 나의 모습에 구별함이 없이 구경하면서 함께 느끼고 걸어가는 사람. 그가 진정한 여행자이다.
기다리는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아이는 자꾸 하품을 하더니 졸고 있다.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치 여행에서 돌아오듯이. 내일 또 길을 떠나기 위해 오늘은 조금 쉬어야 하니까. 자리를 펴고 누웠으나 나는 또 다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집이 그립다. 저 피안의 언덕너머 영원한 안식의 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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