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메일을 열어보니 뜻밖의 메일이 와 있었다. 대학 선배의 메일. 올해 초 오늘처럼 느닷없이 그의 메일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선배는 졸업하자마자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미모의 늘씬한 아가씨와 결혼하여 아내는 가야금 학원을, 선배는 서예 학원을 차렸었다. 방석 위에 올라가서 신부와 키를 맞춘 그의 결혼 사진이 떠오른다. 우리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금정에서 서예학원을 한다는 소식과 함께 "그냥 살 사람 같지 않았는데 뭘 하고 지내느냐"고 내게 안부를 물어왔었다. 그냥 살 사람이 아니면 도대체 내가 뭘 할 것 같았단 말인가!!
이번엔 추석 잘 보내라는 인사와 함께 또 다른 동창이 내 연락처를 물어서 가르쳐줬다고 한다. 내게도 그 동창의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 동창은 재수를 하여, 직장에 다니다 대학에 들어간 나보다 한 살 어리다.
그 때 우리 과에는 문학부와 어학부가 있었는데 고리타분하게 취급되어 인기없는 문학부에서 논어와 맹자 등의 고전을 함께 공부하느라 친하게 지냈다고 할 수도 있는 그런 사이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내밀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사이는 아니다.
그 친구가 이번에 대만에서 무슨 학위를 받앗다고 한다. 그 때 공부를 열심히 하더니만 졸업한지 십 년이 훌쩍 넘은 지금 결실을 본 모양이다. 그런데 왜 뜬끔없이 내 안부가 궁금했는지 모를 일이다. 내가 매정하고 박정한 걸까. 나는 그의 안부가 궁금하지 않다.
나는 학창 시절을 그리 즐겁게 보내지 못햇다. 이루지 못한 사랑과 학비에 대한 걱정, 그리고 연이어 벌어지는 데모에 참가하지 못하는 자의 비겁한 자괴감 등등으로 우울하게 병적으로 얼룩져 있다.
솔직히 메일을 받고 반갑기 보다는 피할 수 있으며 피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 기분이다. 그것은 아마도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무척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 일 것이다. 내게 심리적 물질적 여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학자와 결혼하고 싶었다. 그런데 활자라는 것과는 거리가 아주 먼 사람과 결혼하였다. 조금만 더 일찍 제 작년에 그 친구와 연락이 닿았더라면 그리고 그 때까지 그 친구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 친구가 이성으로서의 매력이 없더라도 그 친구와의 결혼을 꿈꾸었을지도 모르겠다.
토요일 ,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