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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여자의 일생...- ( 1 편 )


BY 박 라일락 2001-03-25

그 지난 어느 봄날.
너무나 나 자신의 서러움에 끝내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입은 옷 위에 바바리 코드하나를 걸치고 길을 나섰다.
너무나 정신없이 허둥지둥 길 나섬에 휴대폰 충전기조차 잊어버렸으니...

이젠 길 떠나는 이 순간.
지금부터 나의 모던 마음을 비우고 백지가 되리라...

나 자신 가는 곳의 목적지 방향을 잡지 못했는데
어느새 나의 愛車는 그 사람이 묻혀 있는 경산 백합공원 쪽으로 가고 있구나.

봄이라고 하지만 언제나 새벽 바람은 너무 차가워서
일 하는 여인의 마음을 안스럽게 하였고..
여러 사람들과 부디 침에 힘겨운 시간 흐름이였고
한꺼번에 입항한 대게 어선의 입찰이 늦은 관계로
늦도록 아침밥을 먹지 못한 배고픔이 이 여인을 짜증나게 하는 그런 날이었다.
그 날 하루의 가게에 사용 할 장꺼리를 대충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새벽일에 지쳐서 피로에 짜들고 있는 모습으로.
더욱이 주방의 주방장이 비어있는 그 공간은 나의 자리가 되었고,
피로는 산더미처럼 쌓여서 누가 옆구리라도 찔렀다면
금방 무슨 사고라도 치고 싶었던 그 어느 날.

하나 밖에 없는 아들 현이하고 아주 심한 말다툼이 있었다.
인력관계로 이 어미가 밀고 나가는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강한 항의를 하였다.

이유인 즉 .
주방장의 남편이 담석으로 서울 큰 병원에 입원을 했기에
주방장이 장기간 자리 비움에
부족한 인력을 채우지 않는 주인에 대한 불만을
왜 모르는 척 하는가 하는 토론에서 시작되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평일엔 별 손님도 없고,
또 주말과 휴일에는 대처 인력이 보충되는데
구태여 이외 황금을 낭비할 필요성이 없다는 나의 절약하고 싶은 마음이 였으니...

이제껏 데리고 있었던 주방장이 한 달 정도 그 자리를 비운다고
비정하게 월급을 삭제 할 용의가 주인의 입장으로 도저히 없기에
선불로 서울로 다 송금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이 더 이해를 하지 못하고
아들 넘에게 인력 보충하지 안는다고 충동질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들에게 알아듣도록 누누이 설명하고 협조해 줄 것을 당부하였거늘..
그건 분명 종업원들에게 배반 당한 기분이었다.
언젠가 모두들 자기들의 입장 아닌가!
그렇다고 하루 종일 지칠 정도로 일하지 않음인데..
무심한 사람들..
왠지 종업원 보다 이해 못하는 자식 놈이 더 괘심하고 나의 뒤통수를 친다..


경산에 도착하니 해는 벌써 산 중턱을 힘들게 넘고 있었다.
그 산소에는 바로 밑의 친 시동생과 사촌 시동생이
모두 젊음을 다 누리지 못하고 이 곳에 형과 함께 누워 있는 곳이다.
미리 포항에서 장거리를 보았고 그 들 앞에 놓여 질 꽃은
공원묘지 입구에서 6섯 묶음을 샀다.
양 옆에 새로이 꽂아 주리라...
아마 지난 추석 때 교환한 조화는 벌써 퇴색했으리라..
산중턱에 차를 새워 두고 힘겹게 높은 산등성을 타고 그 사람 곁으로 다가갔다.
산 속 봄바람이 솔솔 불면서 입고 있는 바바리 깃을 휘날리게 하는구나.

가지고 온 과일과 오징어포 한 마리 그리고 한잔의 술잔을
그 사람 앞 석상에 차렸다.
나의 두 눈에는 어떤 이유의 눈물인가,
나도 모르게 자꾸만 흘러 내리고..
이 자리에 말없이 무심하게 누워 있는 님이 미워서인가?
아니면 지아비 없이 평생의 젊음을 바쳐서 키워 준
이 여인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아들 넘을 저주함인가..

저 멀리 열차가 어디에서 오는지는 몰라도
13년이 지난 이 여인의 과거를 싣고 서서히 다가오고 있구나....

그 사람을 1988년도 코스모스 힘 없이 고개 숙이던 늦은 가을에
이 곳에 묻고 우리 가족이 힘들게 홀로 서기를 했었지...

이 봄 많은 가슴앓이 한 라일락이
여인이 혼자서 힘들게 홀로 서기를 한 글을
님들에게 드리고 싶음입니다.
끝까지 읽어 주시기를 바라면서.

-다시 2편으로 연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