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5살, 6살짜리 딸아이를 가진 딸딸이 엄마다.
결혼 6년밖에 안되었는데 이리 할말이 많으면 결혼 20년이상 된 부부들은 천문학적인 사연들이 생길것이다.
남편은 시모한테는 유일한 외아들이다. 시부한테는 호적상으로 올려진 아들만 셋에다가 시집간 딸까지 있지만 그들과 어릴때부터 인연을 끊은지는 오래전이고 제일 큰아들한테 시부가 가끔씩 전화통화를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시부는 호적파가라 장남은 제가 왜 팝니까 아버지가 파세요. 하면서 옥신각신 다툰다.
우리 남편은 총각때 시부모가 이혼위기까지 갔을때도 소주댓병 먹고 부엌칼 방바닦에 꽂으며 다 같이 죽자고 하면서 절대 헤어지지 못하도록 말렸던 사람이다.
그 시절 시아버지들은 대부분 다른 여자를 보는 것은 아내한테 미안한 일이 아니었나보다.
시모도 모진 세월 남편 시집살이 하면서 울 신랑만 바라보며 인고의 세월을 견뎌 왔건만 지금은 병든 몸만 남았다.
경비일을 그만두신지 5년이 다되어가는 시부는 평생 경제권을 쥐고 사셨어도 지금까지도 큰소리치고 시모는 화병으로 안 아픈곳이 없다.
심장도 약하고 젊을때 유산을 너무 많이 해서 자궁적출수술도 했고 신경도 예민하고 자식에 대한 집착도 강하고 너무 여러가지 약을 먹다보니 간이 견디질 못해서 결국 만성 간경화로 점점 간이 굳어가고 있다.
자기를 안아끼고 혹사하며 인내하며 산 결과는 허무함과 병들고 쇠약해진 육체만 남았고 하나뿐인 아들 결혼시키면 호강하고 며느리한테 대접받을 줄 알았는데 고부갈등도 심했던 터라 심하게 다투었을땐 자기분을 못이겨 병원에 실려간적도 있었다.
며느리인 나도 본의 아니게 시모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더구나 아들 욕심많은 시모는 딸딸이 며느리가 곱게 보일리 없었을 것이고 어제는 지하수 물뜨러 와서는 한 10년만 더 살면 아들손주 덩실덩실 거리는 거 보고 죽을텐데 그때까지 살겠나하면서 아들못낳은 며느리 한숨나오게 한다.
정말 사람이 죽을때가 되면 변한다던데 얼마전에는 난데없이 130,000원짜리 손목시계를 며느리한테 선물할려고 샀다며 남편을 통해 전해주었다.
일단은 고맙다고 표시했지만 기쁘기 보다 왜 그런 쓸데없는 돈을 쓰는지를 생각했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라 시모한테 매달 용돈 100,000원만 드리는데 그돈의 절반이상이 별필요하지 않는 물건값 할부로 나가는 돈이다.
애초부터 시부모님의 경제력이 없는 걸 알고 각오하고 시집왔었고 자식한테 경제적으로 보탬이 안되어도 원망할 생각도 없고 바라지도 않았다.
평소에 외모꾸미는데 관심이 없는 성격이라 예물 목걸이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다른 시계도 하도 안차서 가지고 있는 시계는 전부 멈춰진 상태였다.
이번에 정기검진을 받았는데 서서히 간이 굳어가고 있다고 했고 병원약으로 진전속도를 늦추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그리 야속하고 밉기만했던 시모가 요즘들어 불쌍해보이면서도 시모만 보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얼굴이 굳어지는 건 왜일까 또 시모가 먼저 돌아가시고 시부만 남으면 정말 앞날이 더 캄캄한 생각만 들었다. 도저히 까다로운 시부를 맞추어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걸핏하면 시부는 시모한테 나는 너보다 오래 살거라는 말을 했었다.
정작 시모가 건강이 악화되는 걸 지켜보면 걱정이 되면서도 뭘믿고 그러는지 시모한테 모질게 하셨다. 빚갚을려고 돈버느라 날밤새는 며느리한테 삼시세끼 뜨신밥에 푹푹삶아 뽀얀 속옷 기대하고 있는 거라면 큰일인데 말이다. 조상제사를 아주 중요시하는 분들인데 제사음식도 내가 하게되면 뭐라고 할지 걱정이다.
해마다 아들아들 노래를 하지만 그져 낳기만 하면 저 먹을 거는 다 갖고 나온다며 일하지말고 애키울 생각이나 하라시는 시부모님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나도 아들 낳고 싶다. 하지만 두 딸아이 한테도 잘하다가 어떨땐 심할정도로 매몰찬 내 자신을 느낄때는 셋째까지는 자신이 없었다.
철학은 생년월일시로 보는 학문이자 통계학이고 점은 귀신을 부려 점괘를 맞추는 것이라서 믿지 않는터라 철학관을 선호하는 나는 팔자에 아들이 있는건지 언제쯤 낳아야 할건지 부부간 사주도 보았다.
일년에 한번이상 시모따라 점쟁이한테도 갔었지만 그들은 이상한 푸닥거리나 시키려들고 비싼 돈을 들여 부적을 쓰라하고 앉아서 천리를 본다며 묻지도 않은 가정사를 맞추는걸 자랑스러워해서 신뢰가 가지 않는다.
철학관에 가서도 내 사주가 안좋다는 말은 여러번 들었지만 부처님의 가피를 입은 탓인지 자상한 남편에 그럭저럭 잘자라준 딸아이들과 한 몇년후에는 아들도 생긴다는 말을 하였다. 내 사주는 시어머니가 오면 절대로 아들과 결혼을 안시킬 사주라고 했다.
또 친정어머니가 오면 사위잘본다고 고마워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부처님의 가피를 힘입어 의지대로 살아온 결과 시댁과의 갈등도 많이 유순해졌고 남편과 크게 다투는 일도 거의 줄었고 한 5년후에는 아들을 얻기위해 노력하려고 마음먹고 있었고 내가 생각하는 현재의 심정그대로 감정이 나왔다.
인간의 기본적인 운명은 안바뀌겠지만 그 운명을 개척하고자 노력하면 힘든일을 잘 대처해 나갈 수 있다는 걸 살면서 많이 배워왔고 경험해왔다.
주변의 아들가진 친구들이 딸아이들은 너무 잘울고 앙칼지고 짜증을 내서 싫다며 아들은 거칠긴 해도 그런건 없다며 은근히 자랑할때 너무 속상하고 서운했었다.
그래서 맘에도 없는 말도 많이 했다. 더이상 애 안낳을 거라며 고생안할거라며 딸들도 잘키우면 아들못지 않다며 스스로 위로했었다.
하지만 남편의 직장동료들이 딸둘 낳고 뒤늦게 늦둥이 아들을 낳아서 돌잔치를 한다고 하면 우리 부부는 생각이 많아졌다.
얼마전에도 친정엄마가 용하다는 집에서 아들낳는 한약을 지어주었던 적이 있었지만 우리 가정경제의 현실을 너무나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하면서 포기를 했었고 빚갚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일찍낳아서 키우는 것이 더 좋겠지만 또 내 인생이 앞으로도 아이들로 인해 행복함보다는 고달픈일이 더 많을 것도 예상되지만 당장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매달 적자가 나는 살림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에 아이낳는 걸 당분간 미루고 있다.
처음엔 내편이 되어주질 않고 친정부모도 신경안쓰고 가끔씩 자기 부모한테만 잘하라하고 항상 중립만 지키는 남편이 미웠지만 시댁에 가면 남편은 내 허물을 절대로 시부모에게 드러내는 일이 없었고 오히려 덮어주려고 하고 가끔씩 칭찬도 하며 지금도 어른들이 걱정할 일은 가급적 이야기 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때문에 시부모님이 우리부부의 경제적인 면을 이해못하고 가끔씩 답답한 소리를 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흥분하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말은 안하시지만 생활력 강한 며느리로 생각하고 있다.
천만원짜리 단칸셋방으로 시작해서 두칸짜리 전셋방 그리고 11평짜리 임대아파트 지금은 시댁하고 가까운 20평남짓의 주공아파트를 내집으로 장만하면서 주택자금대출에 모자란 생활비로 늘어난 빚까지 하면 꽤 부담이 큰 빚을 안고 있지만 맞벌이하면서 힘겹게 값아나가고 있다.
좀더 알뜰하지 못한탓에 다단계판매에 넘어가기도 하고 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의 유혹에 못이겨 충동구매한 적도 있었지만 조금씩 살림이 늘어갔다. 하지만 꼭 필요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몇년씩 벼루어서 산 것이 대부분이지만 후회되서 경매사이트에 되팔아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 교육비와 우리가족의 식비도 좀 많았다.
남의돈 버는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기에 아껴야 한다고 노래를 부르지만 사실상 그다지 아끼고 살지 못했다.
남편의 나이가 40이라 뒤늦게 종신보험도 들게 되었고 그만큼의 돈을 식비에서 줄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잘 될까 걱정이다.
카드 때문에 가정파탄되는 사람들 수도 없이 많지만 나는 카드 없었으면 돈을 융통할 길이 없었다. 한동안 현금써비스로 돌려쓰다가 더이상 감당할 수 없어서 그마져도 모두 싼이자 대출로 돌리고 맞벌이하기 시작하면서 빚도 안늘고 현금서비스는 쓰지 않지만 좀 무리해서 빚을 갚으면서 현상유지만 하고 있다.
시부모님은 젊어서 인생의 진정한 즐거움을 제대로 즐길 여가가 없었던 탓인지 우리 부부가 등산하는 것도 달가워 하지 않고 친구만나러 외출하는 것도 별로이고 정작 휴가를 맞아 같이 가는 건 좋아하면서 목적지에 도착하면 음식맛을 모르겠다며 잘 먹지도 않고 피곤하다며 경치를 구경하거나 즐길줄을 모른다.
나이들면서 자식에게 짐이되고 약으로 사는 어른이 될 수 있을 지 모를일이다.